그 애들만큼 되고 싶었던 작은 아이

내가 공부를 잘했던 이유

by 나는난

그 애들만큼 되고 싶었던 작은 아이. 정말 너무나도 작았던 아이.

'아이'라는 말은 재밌다.

난 왜 이런 앨까, 애가 왜 이 모양일까, 나 자신을 '아이'로 표현하는 걸 깨닫고 살펴보니 40대 초반까지 쓰고 있더라. 깨닫고는 서서히 멈추고 이젠 안 쓴다. 학교동창들 만날 때 빼고 ^^


나름 공부를 꽤 잘했었다.


지금은 누가 봐도 비만인데 어릴 땐 본명에 '난'이 들어있어서 더더욱 별명은 난쟁이, 까만콩, 돌콩, 꼬맹이, 작은고추(난 여자지만 작은고추가 더 맵다에서 나온 어른들 호칭이었다. 날 야무딱지다고들 하셨다)였다. 키도 작고 몸무게도 너무 작아 중학교 1학년때 건강기록부(생활기록부 말고 건강기록부를 기억하는 사람? 가슴둘레 숨기고 몸무게 숨기고 난리 치지만 전 학년 것이 심지어 꺾은선 그래프로 나와있던 그 얄팍한 책자)에 키 128cm, 몸무게 19kg. 평균에 못 미쳐도 한참 못 미치는 몸, 초등학교 1학년 몸이다. 맞춰 입는 교복 시절이었지만 무조건 크게 크게 맞추던 시절이었고 코트나 여학생 책가방은 기성품인데 꼬마아이가 종이가방 든 것처럼 바닥에 닿아 사물함도 없던 시절 그 많은 책들을 매일 들고 등하교했었는데 부모님의 도움을 중학교 때까지 받은 내 몸이었다.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고무줄놀이도 친구들에겐 무릎, 허리, 가슴 단계가 내겐 허리, 가슴, 머리나 만세였고 잡기놀이도 닭싸움도 이것도 저것도 다 무리라 난 늘 아짜고치(깍두기의 우리 동네말, 경상도말인지 일본말인지 모르겠다) 당연히 손발도 작아 오래(발로 돌을 차며 공간에 넣는 사방치기 팔방 치기의 경상도말)도 짜세(공기받기 놀이의 공기 경상도말)도 능력이 모자랐다. 겨우 다마치기(이건 확실히 일본말이겠지 구슬치기)만 가능해서 손이 다 터서 피가 날 정도로 가세(가장자리), 복판, 임금자리를 왔다갔다하며 연습했었다.

난 눈도 많이 나빠서 압축 코팅렌즈도 없던 시절, 안경이 비쌌던 시절. 앞에서 보면 뱅뱅 도는 무늬가 보이던 두껍디 두꺼운 렌즈에다가 다양한 테가 없던 시절, 까맣고 두꺼운 플라스틱 안경을 썼다.


그래서 공부를 잘했었다.


달리기도 어려웠다. 당시는 체력장이 있고 100m 달리기가 있던 시절이었다(지금의 학교 운동장은 가로는 커녕 대각선 길이도 100이 안 나와 60, 50으로 한다는 소리가 맞는 건진 모르겠다). 매년 전교생이 날 잡고 '체격' 검사를 한날은 가슴둘레, 키, 몸무게, X-ray 검사, 기생충 검사(채변봉투)를 했고 '체력' 검사를 하는 이른바 체력장날은 100m 달리기, 오래달리기(운동장 4바퀴=800m), 제자리멀리뛰기, 오래매달리기(남자는 턱걸이),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작은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건 욕심만큼 매달려 만점 1분을 채울 수 있었던 오래매달리기였다.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당시는 사진도 귀해서 소풍날 단체사진만 있거나 개인사진은 부모님이 오시는 가을운동회때 달리기나 마스게임(단체무용)에서나 겨우 한두 장 아빠가 찍어주신 것뿐인데 분명 한 조에 8명은 뛰는 달리기 사진인데 나를 찍으면 앞에 다리는 아이가 안 보였다. 바로 앞 7등보다 수십 발짝 이상 뒤처져 있으면서도 온갖 인상 다 쓴 채 작디작았던 가슴만 앞으로 잔뜩 내밀고 죽어라 뛰지만 엄청 느린 애처로운 아주 작은 아이였다.

그러다 몸 차원에서 인생이 바뀐 시기는 국민학교(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 내가 나온 진해중앙국민학교에는 육상부가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면 선이 하나 좌악 옆으로 그려져 있었고 등교할 때마다 딱 그 선에 서서 커다란 운동장 건너편 3층짜리 기다랗고 거대한 교사 건물 앞 큰 국기봉에 걸려있던 태극기에 가슴 경례를 하면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소리내어 외고 나서야 선도부원이나 주임샘의 제지를 받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매일 5시 정각 국기 하강식 시간에는 전 국민이 차렷 자세로 일어서서 묵념 아닌 묵념을 하던 시절이었다.

교문 들어서 오른쪽에는 씨름 모래판과 멀리뛰기 모래판이 있었고 키가 높고 낮은 철봉이 아주 많이 많이 늘어서 있었다. 늑목과 시소, 뱅뱅 돌리는 놀이기구들도 있었고 평균대도 있었다.

난 운동을 잘하고 싶었다. 아주 작은 몸이라 해도 혼자 하는 운동이라도 잘하고 싶었다. 목표는 체력장 종목인 달리기와 제자리멀리뛰기로 정했다. 그래서 육상부가 훈련 때 하던 운동을 눈여겨보아 두었다가 매일 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가서 혼자 연습하기 시작했다. 무릎을 가슴까지 차올리면 제자리뛰는 피치를 수백 번, 자전거 속타이어를 몸에 끼워 철봉에 묶고 모래판 위에서 뛰기 수백 번 했다. 타이어를 묶고 달리는 건 힘과 몸이 작아 불가능했다. 그러기를 3개월쯤 했던 것 같다. 제자리멀리뛰기 160cm였던 내가 240cm 만점을 해냈고 100미터 34초 기록이 18초에 뛰게 되었다.

이렇게 공부에 이어 운동능력마저 자수성가로 해낸 나, 욕심 많은 깡다구 악바리인 나는 공부도 운동도 노력으로 잘하게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난 원래 운동 못해, 우리 집은 모두 운동신경이 없어라고 하는 학생들에게 이마저 노력부족 불성실이라고 '매도'하는 독한 선생님이 된 것이다.


지-나-고-보-니

받춰져야 하는 배경이나 환경 등 절대 무시 못할, 무시해서는 안 되는 조건들이 있다는 것도 모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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