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517 신유진 에세이 <사랑을 연습한 시간 : 엄마의 책장으로부터 2024 오후의소묘
에르노 번역가 그 신유진, 이젠 작가님. 각주로 좋은 책을 많이 인용해 줘서 논문 쓰던 실력으로 참고문헌 줄타기하게 하는 분. 전혜린과 버지니아 울프가 많이 나오네. 마릴린 멀로, 신유진을 알게 한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여성의 글과 삶. 여성을 강조하는 말이나 글, 행동을 달가워하지 않는 내가 이 작가의 책만큼은 아무리 여성 여성 여자 여자해도 좋다니.. 난 늘 편애인에게 편파적이다
1974년 프랑스 낙태 합법화 표결 이끈 보건부 장관 시몬 베유(Simone Weil) 국회 연설 “낙태수술을 즐겁게 받는 여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문제는 그저 여성의 말을 듣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여성에게 낙태는 비극이고 언제나 그러할 것입니다.”+ 1971년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대표 집필 "나도 낙태했음을 선언한다" 임신중지 사실을 고백한 여성 343명의 공동 투쟁 선언문
몰랐는데 엄마 이야기였군. 딸이 읽고 보낸 책이라 나도 읽고 톡을 보냈다. 너 기억 안 나지? 니가 자란 외할머니집 2층 엄마 처녀 때 쓰던 2층 방을 정말 한가득 채웠던 엄마 책들 기억나니? 딸의 답은 ‘거기 먼지 많다고 할머니가 올라가지 말랬는데 심심하면 기어올라 갔어요’ 그립다. 그 니스칠한 나무계단. 지금은 재개발로 다 밀어버려 잡초만 나있는 그 땅, 그곳, 내 고향집. 그러잖아도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이면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데 말이다. 더구나 2025년 올해는 어린이날이 엄마 기일이자 초파일, 날 좋고 꽃 좋은 2009년 봄날 엄마를 보냈다. 서울이 없어서 성남까지 갔던 그 화장장의 꽃들과 그 온도의 기억이 눈과 몸에 선명하다.
서재를 만들고 출입구 빼고 4면을 가득 책으로 채우리란 꿈이 있었던 시절.
(그 꿈은 대학교 1학년때 만들어진 거다. 철학과 변ㄱㅇ교수님의 강의에서 그런 서재를 자랑하신 적 있다. 딱 프랑스철학자 같은 교수님 외모도 외모지만 강조하셨던 “생의 약동”을 아직도 난 기억한다. Henri Bergson(앙리 베르그송)의 élan vital(생의 약동)) 발음, 교양학관 강의실, 교단 밑을 거닐며 수업하시던 모습. 정말 멋지게 보였었다. 사실은 그 교수님 자체보다 그 분위기, 그 서재가 그리 우아한 꿈의 한 장면으로 박제되었다.)
그래서 돈을 벌고 기껏 백만 원도 안되던 봉급이었는데도 매달 빠지지 않고 최저 10% 이상의 돈으로 무조건 책을 샀다.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한 지분이다. 진해 ‘학애서점’, 지금도 있나? 문제지를 10여 년 샀었고 해양극장 바로 옆에 있던 유명서점^^ 당시는 자기개발서는 별로 없던 때였고 그야말로 많은 종류의 많은 양의 책을 샀었다. 나의 부모님은 자주색 양장본 계몽사 백과사전은 물론 크고 까만 표지 두꺼운 양장본에 상하 2단짜리 세로형 작은 글씨 동서문화사 세계문학전집 등등 몇몇 중요한 전집을 아주 비싼데도 불구하고 사주셨었다. 그러다 지적 허영을 보이기 시작한 난 창비 전집을 샀고 돈 벌고 나서는 매달 매달 큰돈을 들이다가 대학원을 들어가면서 시간도 돈도 중단하게 되었다. TMI로 그 시절의 내게 대표 작가는 이문열과 박완서 님. 두 분의 모든 책을 다 사고 다 읽었다고 자신한다. 졸업하고 나서는 풍부한 물량의 대학 도서관을 다시 드나들면서 이제 거의 개인적으로 사지는 않는다. 내 자식이 자라서 입사를 하고 자기 회사에서 지원하는 복지비로 사는 것을 보고 그 점은 부러워하고 있는 2025년 현재이다. 두 딸들에게 책은 야말로 무지무지 읽혔다. 그림책부터 시작해서 진짜 만권은 되지 않을까. 다행히 좋아해 주고 잘 따라주어 바라던 대로 언어 과목 잘하고 둘 다 수시논술로 대학을 갔지만 미디어 문화시대인 요즘 다 커서는 책을 별로 안 읽네.
아, 그 많던 책이 행방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중학교 제자에게는 어려운 책이 많아 제자들의 생일날 (당시는 개인정보보호 이런 거 없던 때라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의 많은 신상 정보를 교무수첩에 기록했었다. 아이들의 생일을 꼭 챙겨주었었는데 내가 가진 것들은 아이들에게 또는 책은 널 낳느라 고생하신 엄마께 고맙다 말씀드리고 갔다드려 하며 주었었다. 중고가 전혀 대접받지 못하던 걸 넘어 무례라고 느낄 수도 있는 시절이었지만 지갑선물은 돈을 넣어줘야 하고 책(또는 물건)을 공짜로 그냥 이유 없이 주면 버려짐이 많음을 너무 잘 알기에 생일날 의미 부여하고 주변에 많이 또 많이 주었다. 그러다 2011년에 교보문고 중고장터를 알게 되어 아낌없이 편의점택배로 염가로 팔았다. 기억 남는 사건 1, 법정스님 가시고 ‘무소유’가 수십 배 오르더라. 난 30년 전 산 3천 원의 반값에 팔았지만. 사건 2, 근대 단편문학의 대가인 어떤 분의 책을 팔았는데 거의 초판본이었나 보더라. 그의 아드님이 샀고 개인연락 끝에 내 직장 앞까지 찾아오셔서 점심을 고급스럽게 대접한 적이 있다. 아주 유명한 소설가이고 그분의 인척까지 유명해서 더 이상 여기에 쓰지는 못한다. 사건일기 보다 중고장터가 문을 닫기까지 10여 년 잘 이용하면서 기분이 나빠진 사람은 1-2번 만났다. 불평이 심하길래 모조리 환불해 주고 책은 버리든지 가지든지 하라고 했던 것과 배송 늦는다고 내 탓도 아닌데 짜증 내는 정도? 그나저나 왜 교보 중고장터는 문을 닫았는지 너무너무 아쉽다. 연구실의 책장을 정리하면서 더더더 안타깝다. 예스24에 팔아도 봤지만 수수료 아니라지만 수수료 비슷한 걸 너무 물고 그나마 포인트로만 지급돼서 아쉽다. 아직도 A4지 10박스도 넘게 연구실 입구에 있고 책장에도 수백, 수천 권인데 알라딘에 가볼까 한다. 물론 여기도 돈도 안되고 보람도ㅠㅠ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책을 보고 싶어 하고 갖고 싶어 하는 이에게 파는 게 좋아서 교보 중고장터가 좋았었다. 학생들이 필요한 게 혹시 있을까 해서 연구실 앞 작은 로비에 무료 기증 테이블을 두고 여러 소품들과 내놨더니 책은 거의 없어지지 않는다ㅎㅎ MZ들은 책을 잘 안 읽는다. 구입은 더더 하지 않는다. 그래도 공짜인데 좀 가져가서 보지 헌 거라 그런지 들춰보고만 간다.
책 하면 말하고 싶은 거?
1.‘고전읽기 운동’이라고 70년대 중반 초등학교 때 무늬 없이 단색 초록색 표지로 통일된 지정 책들이 무지 많이 있었는데 그거 읽고 학교대표로 대회 나간 기억이 있다.
2.‘국어순화 운동’이라고 80년대 초반 고등학교 때 국어사전을 아예 통째로 외우고 학교대표로 대회 나간 기억이 있다. 이성자 선생님 울 엄마랑 동갑이고 마산 합성도 그땐 너무 귀하고 우아해 보였던 주상복합에 사셨었는데 뵙고 싶지만 지금은 안 계시겠지? 30살 이전까지는 간간히 연락드리고 찾아뵀었는데.. 40살까지도 매년 연하카드나 스승의 날 편지 보내드렸었는데. 좋은 의미로 무섭게도 의미로 그분 전화번호가 생각난다. 그분은 늘 시를 낭독해 주셨었는데 특히 소월의 진달래꽃 낭송 음성은 아직도 뚜렷하다.
단어 뜻은 물론 숙어, 맞춤법, 속담까지 좔좔 거의 다 외웠는데 세상에나 세상에나 88년인가 맞춤법이 바뀌면서 에고에고 너무 아깝다. 살며 살며 느끼는 거지만 난 국어과 영어과가 적성에 맞는 이였다. (근데 이 고치려 해도 안 되는 단어 반복과 괄호나 부가설명 자주 쓰는 버릇 때문에 국어과는 아니지?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성격이 급해서 주절주절 비문도 많고 ㅎㅎ)
**지금 검색해 보니 ‘1933년의 한글맞춤법통일안이 1988년 한글맞춤법으로 바뀌면서 달라진 표기는 그리 많지 않다.’라고 되어 있는데 무슨 말씀, 엄청 바뀌었네요. 내 지식의 사장(死藏)인데.
3. 이젠 집에도 거의 책은 두지 않고 년 3-400권 대출해서 본다. (예전에는 정독이었는데 요즘은 별로거나 싫으면 완전 다 읽지 않아도 반납하기도 한다. 반납 기한 연장은 해도 연체는 절대 안 한다. 그보다 요즘 가장 큰 문제는 눈이 잘 안 보인다ㅠㅠ 노후의 희망이었던 전자책 듣기는 운전할 때 외에는 거의 안 해서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사실 이것(도서관 대출환경) 때문에 명퇴를 못하겠다. 대학 동창들의 50% 정도가 이미 했는데 말이다. 새 책 구입도 잘되고 대출도 잘되는 우리 학교 이것만은 최고 중의 최고.
250420 천쓰홍 장편소설, 김태성 <귀신들의 땅 鬼地方 2023/24 민음사
Kevin Chen(陳思宏) Ghost Town(鬼地方) 2019 Mirror Fiction Inc.
76생 타이완 융징향(永靖鄕) 농가의 9번째 아들, 소설가, 영화배우, 번역가 독일 거주 동성애
산 사람과 죽은 사람, 귀신들의 이야기, 챕터마다 읽기 난이도(?)가 너무 다르다.
제사와 음식, 자기 집 개고기, 닭잡기, 뱀탕, 족발국수, 스트립쇼 3 자매 아니 3대녀
우리랑 비슷하다는데 난 잘 모르겠는 대만사람, 대만생활, 대만생각,
이 책에서 안 건 아니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모르겠고 지배했던 일본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것이 제일 이상하고.. 일본책과 중국책을 볼 때 내게 있어 공통점은 지명은 괜찮은데 전혀 다른 글자와 발음임에도 이상하게 인명은 집중이 안되고 안 외워지고 그래서 끝까지 헷갈리고 스토리까지 엉켜서 왠지 모를 거부감까지ㅠㅠ. 서양책과 서양이름은 더 이질적이라 잘 외워지는 건가? 읽는 동양책이 10%, 아니 2%, 5%도 안 되는 것 같다.
(하긴 스페인의 종교와 생활, 언어 등 대부분의 일상을 이어가고 축제도 크게 지속하는 남미는 더 이상하고 불쌍한 거 아닌가, 울 아빠는 사람에게 불쌍하다는 표현을 쓰면 아주 심하게 역정을 내시고 크게 야단치셨더랬다
250415 노지양, 홍한별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 언어생활자들이 사랑한 말들의 세계 2022 동녘
출판사 맞불 시리즈 이건 번역가 두 친구의 교환편지
일본 프랑스 독일 번역가 외에는 채식주의자 역자, 데버라 스미스(Deborah Smith 영국조차 낮은 수입
난 ‘왜 때문에’ 노지양 님을 남자로 평생 생각해 왔을까 ㅎㅎ
욕설을 맛깔스럽게 번역하기 위해 청소년 자식들을 쓰는 법이 아주아주 재밌었다.
“그런데V나는V아이들에 대해서는V아무 것도V몰랐다.” 이 네 위치에서 ‘×발’이 들어갈 가장 적절한 위치를 네이티브 스피커가 잡아줬다는 이야기.
책 보다가 소리 내서 한참 깔깔거린 나! 이거야말로 ‘찰진’ 예와 찰진 번역이라고 본다^^ㅎㅎ
250417 김금희 산문 <나의 폴라일지 2025 한겨레엔
79생 신문기사 취재 자격으로 남극서 한달살기가 가능? 작가의 특혜{구나, 부럽기도 하고 펭귄*냄새(작가의 자기 뇌는 젓갈냄새) 생각하면 줘도 안 간다 싶기도 하고 그렇네. 근데 부록인 남극사진 보니 또 많이 부럽네. 남극 관광은 수천만 원이라니 ㅎ
일지나 일기 하면 할 말 많은데
간단히만 쓰다가 점점 남기고 싶고 메모해두고 싶은 게 많다. 그래 이게 내 스타일이지.
73년 그림일기 시절부터 30년 훨씬 넘게 꾸준히 써온 일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던 날들.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고 생각하고 되돌아보면 죽고 싶다는 결론밖에 안 나고 쓸수록 불행하고 슬퍼져서 자의로 멈추었다(2005년). 그래도 수첩공주마냥 늘늘 필기하고 메모하고 수집하던 내 버릇은 남아있어 일관되게 모으지는 못하고 길고 짧은 많은 기록들은 이제 마구마구 흩어져있다. 이젠 컴퓨터에 폰에.
수첩도 30년 정도 1년수첩 주로 양지사 것을 써오다 멈추었다. 매년 12월의 가장 중요한 일은 2개였다. 하나는 카드 사서 좋아하는 사람(+모시는 분들)에게 보내기와 1년수첩 사서 옮겨적고 정리하기였다. 일정뿐 아니라 비밀번호와 대화 등등까지 다 적어왔던 내가 수첩을 포기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병 때문이었다. 펜을 들 힘조차 없이 ‘아프고 있는 일’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못하던 때 딱 멈춰지고 말았다.
*카드 부치기도 40년 넘게 이어왔구나. 요즘은 자주 다니는 병원(결코 한 두 곳이 아니게 만든 내 몸뚱이) 의사샘이나 심지어 단골식당에도 보내기도 한다. 다만 이조차 많이 줄어든 것은 메일, 전화보다는 카톡과 이모티콘의 발전 때문인 것 같다. 아직 딱 멈추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