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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주 NJ Namju Lee Apr 15. 2021

이남주 소장 인터뷰 (전체 버전)

NJSTUDIO

<641호 인터뷰 질문지>

1편 기사 링크 - https://times.seoultech.ac.kr/reports/?idx=20486&category=34 

2편 기사 링크 - https://times.seoultech.ac.kr/reports/?category=34&idx=20513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남주 소장입니다. 99 학번으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해서, 현재 미국에서,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어요. 문과와 이과의 조합처럼 디자인과 코딩을 융합하는 영역이라 보면 무리가 없을 거예요. 쉽게 말해, 코딩을 통해서 디자인을 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20년 전 즈음에 춤이 좋아서 프로 B-Boy 댄서로 KBS 가요대상과 한중가요제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했었고, 그 후 NJSTUDIO를 창업해서, 건축 시뮬레이션, 3D 디자인 시각화 서비스를 했었어요. 런던과 호주를 거쳐,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데이터와 코딩을, 디자인 재료와 도구로 사용하는 디자인 엔지니어입니다.



Q 현재 하시는 일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세 가지 큰 줄기가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지리정보(GIS) 데이터를 다루는 ESRI회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어요. 데이터 시각화 그리고 2D, 3D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어요. 두 번째로는, NJSTUDIO에서, 데이터와 컴퓨테이션을 활용한 디자인 방법론과, 솔루션 컨설팅 및 디자인 알고리즘을 연구, 개발하고 있어요. 세 번째로, NJCHANNEL에서, 전문 지식과 경험들을 공유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비디오 혹은 글 콘텐츠를 만들고 교육하며, 디자인과 코딩에 대한 지식 생태계를 만드는 일도 집중하고 있어요.



Q. 우리 대학 졸업 후 MIT에서 연구원 생활부터 시작해, 하버드와 UC버클리를 졸업한 이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미국으로의 유학을 결심하신 계기 혹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요즘 젊은 친구들이 느끼는 비슷한 좌절감이 있었어요. 일 이 힘든 건 참을 수 있어요. 그러나 유리천장같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변화가 없음을 느꼈을 때, 그곳에서 오는 무력감이, 해외 취직에 눈을 돌리게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 유학도 한 것이죠. 다른 말로, 해외경력과 학위가 있을 때, 한 번 사는 나의 인생에, 어떤 미래가 열릴지 너무 궁금했어요.


군대 제대 후, 대학 3학년 때 스타트업을 했는데, 그게 좀 잘됐었어요. 그때 당시 경쟁자가 많지 않은 시장 이어서 비교적 빨리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상대적으로 빠른 성공과 그에 따른 한계를 빨리 마주 한 것 같아요. 가령, 일하고 돈을 못 받는다던가, 열정 페이, 그리고 좌향기성과 같은 지점들에서 오는 무력감이 주원인이었어요. 당시, 한국사회에서, 제가 느낀 점은, 일과 삶이 힘든 것보다, 열심히 해도 희망이 없는 뻔한 미래를 받아 드리는 것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두 마음이 있었어요. 하나는, 현실과 타협해서 합리화해서, 모른 척 그냥 살 것인가? 아니면 넓은 해외 시장에 나가서, 다시 한번 도전해볼 것인가?


스스로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한 마음이 컸어요. 테스트하고, 확인하고 싶었죠.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해외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위가 있으면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고, 특별히 제가 관심 있는 분야, 즉 디자인, 데이터 그리고 코딩을 활용하는 영역에서는 유학을 통해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 때였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 한국에서는 충분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어요.


마지막 이유로는, 제가 경험한 한국은, 이미 자리 잡은 기성의 영역에서 바라볼 때, 신진의 인력과 산업에 대해 굉장히 배타적이죠. 밥그릇 문제겠죠. 이해돼요. 절이 떠날 수 없는 만큼, 중이 떠나는 것이죠. 내가 경험한 해외는, 기회를 주고 실력이 발휘되면 대가를 챙겨주는, 상대적으로 좀 더 합리이고 예측 가능한 시스템이죠. 요즘은 상황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그때 당시 제가 관심이 있던 분야들은, 주류가 아니었어요. 비주류로서, 지식과 실무 경험을 쌓기는 한국은 좋은 환경이 아니었어요. 운이 좋게 MIT의 연구원으로 일할 기회를 잡았고, 이 기회가 다른 기회들을 주었고, 미국 명문 대학과 연구소에서 실력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MIT, 하버드, UC 버클리까지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명문대들을 거치기 위해 준비했던 과정과 노력들이 궁금합니다. 혹은 선배님의 어떠한 점이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보전달 편의를 위해, 간략하게 키워드로 나누어 봤어요.


1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게 하자

시대 흐름과 트렌드 변화에 따라, 새로운 것을 찾아서 떠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운이 작동하고, 드라마에서 나올 것 같은 스토리가 펼쳐지길 바라지만, 인생은 실전이고, 현실이죠. 따라서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이미 하고 있었던, 스스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승부를 봐야 성공확률이 높다는 것이죠. 앞서 저의 소개를 드렸듯이, 피상적으로 보면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했구나!”라고 비추어질 수 있는데, 저는 컴퓨터를 활용한 디자인의 관점에서 한 우물을 파왔고, 그 시대 시대가 요구되는 기술과 경험을, 기존에 내가 제일 잘하던 것을 더 잘하기 위해 20년간 꾸준히 증가시킨 것이 저의 일관된 전략이에요.  

   

2 과거의 수많은 나들이 만들어준 현재의 나, 그리고 나만의 방식을 알자

“나는 무엇을 잘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질문을 많이 들어요. 이런 경우에는, 과거를 돌아보기를 권해요. “오늘의 나”는 과거의 수많은 나들이 물려준 “나”라는 유산인 것이죠. 과거의 수많은 나들을 알면, 지금의 내가 어느 부분에 심장이 뛰었는지, 같은 일을 하더라도, 분명 내가 즐기고, 몰입할 수 있는 형식과 방법 그리고 전략들이 있을 거예요. 방송이나, 대기업, 혹은 매스미디어에서 세뇌시키는 트렌드 따라, 새로운 것 찾아가기보다, 나를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한 통찰이에요. 같은 공부를 하더라도, 나에게 맞는 방법이 있고요. 그것을 알아내야 해요. 나의 공부 방법, 나의 작업 스타일, 나의 동기부여, 나의 리스크 관리법 등등, 분명 내 안에 숨겨진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형식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스스로가 독수리로 포착되면, 하늘로 가시면 되고요. 거북이면 물 밖을 나오지 말고, 전략적으로 더 강력한 닌자 거북이가 되도록 미래의 나를 디자인해 가세요. 나만이 할 수 있는 것들과 시대의 흐름이 교차되는 시기가 반드시 오는데, 그때를 기다리면서, 공을 따라가는 축구선수가 되지 말고, 공이 갈 방향을 향해 나만의 방식으로 뛰어가는 선수가 되세요. 나에게 유리한, 이기는 전략을 펼치세요.     


3 주제 파악 하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너무 관대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죠. 요즘 말로 내로남불이라고 하는데, 스스로의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지만, 못하는 부분들, 나의 단점들을 인정하고, 어떻게 하면 개선할까를 고민하고, 심지어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가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유학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걸림돌이 언어였었어요. 나이 먹고 단어 들와 문법도 모르는 것이 창피할 수 있지만, 주제를 파악한다면, 나이를 떠나서, 나보다 잘 아는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해요. 시드니와 미국에서 직장을 구할 때도, 흔히 말하는 계급장을 띄고, 자존심을 절실함으로 바꾸고 될 때까지 해보는 것이죠. 그리고 공부를 할 때, 잘 안 되는 게 당연한 것이죠. 주제 파악 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고, 우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공부가 안될 때, 자책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4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돌파하자 

주변 사람들의 평가와 말들이, 나에게 힘을 주기보다는, 비수로 꽂히는 경우가 더 많죠. 유학을 결정하고, 거의 8년간 영어공부를 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걱정, 조소 등등,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났죠. 그러나 포기할 수도 없었죠. 왜냐면 이미 너무 많이 버리고 왔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돌아간다 하더라도, 과거의 상황이 반복될 것이니, 한국에 쭉 머물 이유도 없었죠. 그때마다 되뇌었던 생각의 흐름이 있었는데, 이러해요. “나는 결국에 영어점수를 만들 것이고”, “원하는 대학에 갈 것이고”, “내가 잘하는 것을 즐기고, 더 잘해져서, 내 분야에서 유의미한 영향을 남길 것이다. “끝!”     

사실 이 방법은 제가 스타트업 할 때도 썼던 방법인데, 일을 받을 때, 너무 많은 걱정과 고민으로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떻게 작업을 완료하고 납품할 것인가, 고민의 꼬리를 물 때, “일 받고”, “작업하고”, “납품하고”, “돈 받자”, “끝!” 복잡할수록 이것만 생각하고, 그 날, 그 시간에 해야 할 것에 집중했었죠.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많은 말들, 환경들, 그리고 생각들이 있는데, 아무 도움 안돼요.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0.1mm 라도 전진하는 거예요. 언제까지?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5 당황하지 말자 

제가 춤을 췄다고 말씀드렸는데, B-boy 기술들을 익힐 때 공통점은, 하나의 기술이 몸 근육에 기억되기까지 최소 필요충분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의 분량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에요. 불문율이죠. 누군가는, 금방 한 것 같이 느껴지면, 뒤에서 남몰래, 혹은 이전에 그 시간을 조금씩 채워놨을 가능성이 높죠. 그게 아니면 정말 재능적 다이아몬드 수저일 수 있고요. 남들과 비교하지 마세요, 어제의 나와 비교하세요. 안 돼도 당연한 것이에요. 그냥 그 분량을 채우고 있는 거예요. 안된다고 당황하지 말고 그냥 반복해서 훈련을 하세요. 공부도, 언어도, 기술 습득도 결국 안 되는 것들이 계속 쌓여서 그 분량이 차면, 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실패라는 사전적 의미가 부정적인 느낌이어서 그렇지, 매우 소중한 요소들이에요. 역설적으로, 할 수 있다면, 스스로를 실패로 몰아가세요. 그리고 분량을 채우면 이루어지는 소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이 전략을 항상 썼어요. 안될 때마다, 왜 안 되지?라고 당황하지 말고, 그냥 반복하는 것이죠. 언제까지? 될 때까지요.


6 따라 하지 말자

사람들은 다 다르게 지어졌고, 쌍둥이도 살다 보면 다른 성향이 존재하고, 우리 모두 독창적으로 지어졌고, 유니크한 관점과 생각이 있어요. 후배님들과 상담을 할 때 좋은 환경조건에서 자란 분일 수록 이 주제를 충분히 고민 안 하신 분들이 많이 계세요. 사실 이것은 시도해봐야 아는 것이거든요. 좌충우돌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다른 아웃풋이 나오게 되어있죠. 작금의 교육 시스템은 사실상, 획일화시키고, 모난 돌이 정 맞는 시스템이죠. 물론 상향평준화와 스탠더드 화 시킨다는 사회적 장점도 있지만. 개개인의 개성적인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무시되는 것이죠. 


이런 관점은, 실제 현실과 결을 같이 한다고 보지는 않아요. 왜냐면 1등이 중요하고, 좋은 대학 입학이 더 중요하고, 남들과 비교 우위를 점하는 것이 중요 해지는 것이죠. 그런데 모두가 다 1등 할 수는 없잖아요. 이것이 저의 딜레마였어요. 춤을 출 때도, 회사끼리 경쟁을 할 때도, 미국에서 일을 할 때도, 결국은 차등이 나누어지기 마련이죠. 우등하지 못했던 저는 일등을 하고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고, 할 수 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자리죠. 


그래서 저는 지독하게 저만이 할 수 있는 것들만 연구하고, 연결하고, 개발하고, 남들이 다 하는 부분들은 과감하게 버리고, 그렇게, 20대와 30대 초중반의 전략을 을 잡으면서, 같은 것을 하더라도 항상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어요. 경쟁을 하면 에너지 소모가 크고, 대부분 경쟁에서 뒤처지기 때문에, 경쟁을 피하고, 그냥 존재로서 인정을 받는 전략을 쓰려고 노력했어요. “ 실력이 좋은 잘하는 사람 뽑자” 가 아니라, “어! 여기 이런 사람도 있었네?”, “이 사람 쓰면 좋겠다!”라는 전략인 것이죠. 나로 승부하고, 다름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핵심이에요. 


저는 공고 출신에,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당연히 대학 때도 돈을 벌어야 해서 일을 했고요. 따라서 학점이 좋지 못했어요. 그리고 26살 때부터 영어를 공부했고, 늦은 3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유학을 시작했지만. 높은 연봉으로 취직도 했어요. 강의와 글을 통해서, 학생 그리고 실무자와 지식도 나누고 있고요. 결과적으로 사회에서 규정해주는 스펙의 관점에서는 “성공적이다.”라고 볼 수 있죠. 제가 남들보다 잘해서 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남들과 달라서, 그 다름의 일관성으로 제 개성을 시장에서 인정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렸기 때문에 된 것이라 이해하고 있어요.


7 단순한 전투력, 간절한 노력으로 나를 만들자

저는 실력적, 재능적, 경제적, 관계적 금수저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과 부딪혔을 때, 무엇으로 상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결론적으로 제가 선택하고 키워온 능력은 “간절함이 느껴지는 전투력”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부분들은 몰라도, 적어도 투지와 열정 부분에서는 뒤처지지 말자라는 생각을 항상 했어요. 사실 시간이 흘러, 들은 이야기들은, 저를 도와주신 형님들을 봐도, 저의 전투력을 보시고 저에게 시간과 기회를 투자해주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죠. 일 혹은 공부를 하다가 지칠 때, 그리고 어떤 선택과 집중의 기로에 놓여있을 때, 전투력이 충만한 나로 판단하고, 정말 하얗게 태울 때까지 공부와 작업을 해오고 있어요. 저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 때, 일부러, 코딩을 했어요. 디자이너가 코딩을 잘하기 쉽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저에게 코딩 자체를 취미로, 마음이 불편할 때 하는 명상의 일종으로 바꾸어 버렸죠. 즉, 취미와 일, 그리고 휴식의 시간까지 모아 레이저 포커스를 해서 내가 잘하는 부분을 더 잘하게 강화시켜 왔다고 생각해요.     

내 꿈과 목표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해야 해요, 이게 정말 내 꿈인지, 세뇌된 것은 아닌지, 사회나, 집단에서 정의해 놓은 것을 끌어다가, 나의 꿈인지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고, 피하지 말고, 그에 맞는 수업료를 한걸음, 한걸음 내면서 매일 자라나세요. 꿈과 성공에 대한 간절함과, 집착도 있어야 하고요. 그러려면 충분히 고민해 봐야 해요. 때로는 하기 싫은 것을, 더 하기 싫은 것을 통해서, 하도록 해야 하고요. 무엇보다 즐기고, 몰입할 수 있는 스스로의 방법과 지점을 찾아내야 해요. 너무 뻔 한 이야기지만,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 보면, 집안에 돈이 많은 사람, 타고난 능력이 좋은 사람, 운이 좋은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 등등 여러 캐릭터 보다, 노력을 할 줄 아는 사람 더 실력이 있고, 더 오래가고, 멋있고, 감동이 있고, 마음과 스토리에 울림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것도 또 나의 캐릭터를 더 강화시켜주는 긍정의 사이클이 만들어 지구요.    

 

8 편견과의 싸움 그리고 부정의 에너지

제가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10명 중 8명은 부정적이었어요. 너 공부 잘하니? 어느 학교 나왔니? 영어는 잘하니? 집에 돈은 좀 있고? 춤추던 애가 무슨 갑자기 유학? 네가 할 수 있겠어? 너 같은 애들은 못 할걸? 내 주변에 이런 사람도 못했어! 유학 가면 뭐가 달라져? 등등…….


나의 경쟁자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는 선생님이 되는 것처럼, 이러한 부정적인 말과 시선들은 제가 힘들 때마다, 포기하기 싶을 때마다, 저를 정신 차리게 했던 말들이죠. “왜 안 돼?” 그냥 그 편견을 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마치 장성한 코끼리가, 아기 코끼리 때부터 채워 놓은 쇠사슬을 끊으려고 시도조차 안 하는 그런 모습이 싫었고, 또 “그 사슬에 묶여서 사는 것이 맞는 거야 “라는 주변소리에 수긍해야 하는 현실도 싫었었어요. 물론 해병대를 갓 전역한 혈기 넘치는 20대였기는 했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인생을 끌려가기보다, 주도적으로 끌고 가고, 유리천장을 깨면서, 스스로의 삶을 디자인하고 싶었죠. 후회 없이 말이죠


만약 위의 말을 듣고 수긍하고 따랐다면, 제가 온라인을 통해 공유한 400여 개의 강의와 글들 그리고 저의 인생 경험과 전략들은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한국,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세계 각지에서, 저의 수업과 서바이벌키트 전략을 듣고, 저에게 질문을 주시던 분들, 취직과 진학에 도움을 받고 계신다는 메시지도 받을 수 없었겠죠. 이 모든 사건들은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겠죠. 우리 인생에 완벽한 선택은 없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며, 후회 없는 결정과 도전을 하라는 것이에요. 그 과정에서 편견과 부정적 눈총이 꽂힐 때, 역설적으로 그 부정의 에너지도, 굉장한 연료가 되는 것을 경험했어요. 제가 유학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며, 나누고 싶은 내용이에요. 

   

9 요약하면, 

세상은 정말 넓고, 실력 좋고, 운 좋고, 배경 좋고, 배울 것 많은 사람들과 천재적인 직관을 타고난 사람들도 정말 많아요. 이런 타고난 무한의 연료를 태우며 나가는 사람들과 경쟁하고 비교하면, 한없이 자존감이 떨어져요. 역설적으로, 그들의 장점들을 나의 언어로 바꾸어 해석해보고, 내게 맞는다면, 흡수해서 기존의 나를 더 강화시키는 방법과 전략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가장 아름답고 확실하고 완벽한 연료인, 열정과 자신감, 그리고 몰입과 간절함을 태우며 계속 전진하다 보면, 때와 기회가 오는데 그때, 그 누구보다 자신감 있게, 후회가 남지 않는 도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Q. 유학시절 배웠던 지식이나 경험이 지금의 프로그래밍과 건축 디자인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지식적 측면에서는, 

4차 산업의 쌀인 “데이터”를 디자인에 활용할 수 있는 실력과 안목이 생겼다는 것이죠.    


요즘 4차 산업에 대해서 이야기 많이 나누죠. 인공지능, 초연결, 초저지연, 병렬 컴퓨팅, 클라우드 시스템, 자율주행, 드론 등등 여러 키워드들이 있죠. 사실 다양해 보이지만, 결국 어떻게 (1) 데이터를 모을 것인가? (2) 이렇게 모아진 데이터를 어떻게 프로세스 할 것인가? 데이터로부터 추출된 (3) 통찰을 어디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어요. 이전 산업의 쌀이 철강이었다면, 4차 산업의 쌀은 데이터로 볼 수 있고, 디자이너가 데이터 재료를 적극적으로 디자인 프로세스에 활용하기 위해서 코딩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야 해요. 특별히 건축 디자인의 경우 재료가 중요하죠, 가령 목재, 유리, 철근 콘크리트, 플라스틱 이러한 재료들이 디자인 산업에 소개될 때마다, 도구와 가공기술들이 다양해지고 정밀해지고 있죠. 4차 산업의 재료는 데이터예요, 이러한 재료를 가공하기 위한 도구로 코딩, 즉 프로그래밍이 쓰이는 것이죠. 디자이너로서 코딩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다양한 장점이 있어요.


경험적 측면의 영향은, 

상당한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제가 해외 생활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요. 시드니, 런던, 미국 동, 서부를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이야기 나누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이, 한 시대의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분야의 지도가 그려지고, 그 안의 주요한 지점들과 방향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물론 저의 위치도 그 안에 나타나죠. 내가 무엇을 더 집중하면 그 지도에 어떤 유의미한 표시를 할 수 있을까도 보이기 시작하죠. “해볼 만한데”라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죠. 마치 기성세대 분들이 일본 제품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 “아무리 열심히 해도 우리는 그 품질을 따라가지 못할 거야…….”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얘들은 이렇게 하네, 내가 이렇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겠는데?”라는 자신감이 생기는 거죠. 또한 같이 공부하고, 일했던 친구들이 세계 각지에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때, 과거에는 막연한 동경과, “역시 다르구나!”라고 생각하고 넘겼다면, 지금은, “이 친구, 이번엔 이렇게 했네, 관심이 많이 가지더니, 결국 이런 식으로 풀었구나, 나는 이렇게 한번 해볼까?”와 같이 의식의 흐름과 그에 따른 자신감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Q. 유학생활을 하다 보면 학업비나 생활자금 등의 비용 마련이나 언어 같은 여러 현실적 문제들에 마주하게 됐을 텐데, 선배님은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혹은 이에 관한 좋은 팁들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안타깝지만, 현실은 현실이죠, 제가 유학을 시작한 나이는 35살 때 시작했어요. 언어문제와, 비용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죠.


영어실력을 길러야 했죠. 매우 창피한 이야기지만, 동기부여 차원으로 후배님들과 나누면, 저는 26살 대학교를 졸업하고 런던에 취직을 하러 갔다 왔어요. 참 바보 같지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Important” 가 중요하다는 뜻을 알았죠. 저는 토익점수가 300점도 안 나오는 실력이었어요. 둘째로, 학비를 벌어야 했죠. 하버드의 경우, 미국에서도 학비가 비싼 편에 속해요. 이것을 시간별로 계산하면, 한 시간에 약 13만 원 정도 수업료가 나와요. 일주일 하면 180 - 200만 원 정도 나오고요. 이 사실을 알면 학기 중에, 정신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입학 허가를 받고, 학비 마련이 쉽지 않았어요. 결과적으로 가족과, 친구들 50여 명 그리고 친구의 부모님, 중국 친구들, 한국의 얼굴도 모르는 두 분께서 각각 천만 원씩을 빌려 주셨어요. 휴학을 하더라도, 한 학기라도 시도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떠났었어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결국 졸업 후, 이자까지 포함해서 다 상환을 했어요. 정말 저는 운이 좋았어요.


팁이라고 하면, 상황이 다 달라서 일반화시킬 수 없지만, 정신적인 부분을 나누고 싶어요. 돌이켜 보면, 모든 상황이 유학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저는 하나만 생각했어요. 내가 만약, 좋은 대학교에서 성공적으로 유학을 마치고, 지금 내가 잘하는 부분을 더 잘해서, 다시 한국에 돌아온다면, 좀 더 유리한 환경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찬란한 지점들을 힘들 때마다 상상했던 것 같아요. 힘이 됐어요.


언어의 경우에는, 사람마다 차등이 심할 것 같은데, 저는 늦은 나이에 영어공부를 시작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서울에 안 다녀본 영어 학원이 없었고, 안 풀어본 교제도 없었죠. 저는 특별히 언어 쪽이 참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영어 스터디하는 그룹에서 저는 항상 꼴찌를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유학을 하기 위한 토플 시험도 수십 번 쳤고요, GRE 시험도 수차례 봤어요. 유학 중에는, 수업을 녹음하고, 반복해서 듣고,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스크립트를 적고 외우고, 일반적으로 유학생들이 하는 과정들을 다 겪었죠.


한 가지 공유하고 싶은 팁은, 전공지식과 그에 따른 자신감이에요. 후천적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이상 한계가 분명히 있고, 발음이나, 문법이 틀릴까 봐 걱정하고 주눅 들고 그러면, 악순환이 돌아요. 요즘 말로 멘탈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게 되죠. 저의 예를 들면, 하버드와 MIT는 수업 커리큘럼을 제시하면, 검토를 통해, 수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요. 지원을 했고, 수업을 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 수업의 내용은 이미 제가 너무 잘 알고, 잘하는 것들이죠. 저의 멘탈리티는 이랬어요. “영어는 나의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틀릴 수 있어,” “그러나, 너희들이 내가 힘들게 연구하고 습득한 지식을 배우로 왔잖니?”, “그러니까 너희들이 잘 알아서 들어!”, “자 그럼 나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보여줄게”. 이렇게 마음을 바꾸고 나니까 틀려도 “Okay ” 자신감이 들고, 그 안에서 몰입해서 수업을 하는 저를 발견을 했죠. 그뿐 아니라, 저희 쪽은 프레젠테이션을 매번 하는데, 내가 잘 알고, 자랑하고, 나누고 싶은, 자신감이 있는 내용들은, 영어가 술술술 나오는 경험도 많이 했어요. 즉, 내 일을 잘하고, 자신감이 있고, 확신이 있으면 영어도 따라온다.라는 경험을 공유합니다.



Q. 유학생활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 무엇인가요? 이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보릿고개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드리면, 제가 하버드 총장께 편지를 쓴 적이 있어요. 학기 중에, 과제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생활비의 부족으로 라면만 먹고, 건조한 집 때문에 살다가, 기흉 시술을 받았죠.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학비와 생활비 그리고 학업에 대한 압박이 심했었어요. 다행히 학점은 꾀나 잘 나와서, 총장께 편지를 썼죠. “이렇게 재정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공부를 하다가, 기흉에 걸린 거 같다.”, “그러나 학점은 잘 받았다. 혹시 학교에서는 나 같은 학생들을 학업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알고 싶다.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메일을 보냈죠. 비유를 들면, 회사 생활하다가 힘들어져서, 회장님께 편지를 쓴 것이 되는 거죠. 사실 미국과 한국의 문화의 차이는 커요. 한국처럼 꾹 참고 말 안 하는 것이 덕이 아니라, 말하고 주장해야 더 챙겨 받을 수 있는 문화거든요. 더 많은 디테일이 있는데, 결국, 하버드가 소유하고 있는 은행 대출의 한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었죠.


학교 졸업 후, “노숙” 아니 “학숙”을 한 적이 있어요. 학교에서 연구, 수업 조교 활동을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했는데, 학기가 마무리되니 돈이 들어올 곳이 없었어요. 그리고 방도 계약이 만료되어 빼야 했죠. 졸업과 직장 구하는 그 사이의 계산을 못한 거예요. 하버드의 경우는 학기가 종료되면 학교의 문을 잠그죠. 하지만 MIT의 경우는 학교 건물들이 연결돼있고, 건물을 항상 24시간 오픈시켜 놓죠. 캐리어와 가방들을 들고, 학교 건물들을 오가며, 몇 주 살았었어요. 이전에 연구원으로도 MIT에 몇 년 있었고, 하버드 다닐 때도, 몇몇의 수업과, 졸업논문을 MIT 교수님과도 같이 진행해서, 어떤 의미로 보면 저에게 친정 같은 느낌이죠. 결국 중국 그리고 스페인 친구들이 도움을 주어서, 소정의 돈과, 며칠 지낼 수 있는 방도 공짜로 구해 주었죠.


일반적으로 유학생들은,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뿐 아니라, 언어의 장벽, 문화의 다름, 외로움, 가족들의 그리움, 한국 문화와 음식 등등이 공통적으로 힘든 지점들이 많죠. 이러한 힘듦도, 느낄 수 있는 총량이 있어서 상위 2-3개 정도가 시기마다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재정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부터 시작한 것이라, 다른 힘듦이 무색해진 케이스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픈 것처럼, 힘듦의 형식은 달라도 내용은 다 힘들 것 같아요.



Q. 유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다른 중요한 내용이 많은 만큼, 이 질문은 넘어가도록 할게요.



Q. 유학생활을 앞둔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드라마에 보면, 헤어지는 연인들이, “나 유학가…….” 하고, 비행기 타고 훌쩍 떠나버리는 장면들……. 혹은 유학생들의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브이로그나, 유튜브, 혹은 글을 보면, 유학은, 굉장히 아름다운 줄무늬를 가지고 있는 멀리서 본 목성처럼 새롭고, 낭만적이고, 신기하게 보이는데, 현실은 엄청난 기압과 사람이 살 수 없는 대기로 가득 찬 별인 것이죠. 저에게 유학이란, 총성 없는 전쟁터가, 좀 더 현실적인 묘사 일 것 같아요.      

남들과 전쟁하는 게 아니라, 나의 무능력, 나태함, 멍청함, 한계, 그리고 새로운 환경과 다른 언어로 서바이벌전을 벌이는 것이죠.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공감하는 이야기겠지만, 세상에, 쉽고, 재미있고, 설레고, 유익하고, 편한 군대는 없죠. 유학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들은 경험하지 못한 문화와 언어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다는 것은 매우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에요. 때문에 정신무장이 첫 번째 일 것 같아요. “나는 굉장히 불리한 상황에서 학습을 하지만, 이 학습의 성과 유무는 나의 직장과 연봉으로 연결될 것이고, 결국, 나를 정신적으로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을 좋은 소식을 전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집중력을 유지했던 것 같아요. 특별히, 한 번도 뵌 적이 없으신 두 분이 각각 천만 원을 빌려 주셨는데, 그 믿음과 감사함에 보답하고 싶어서, 정신적으로 힘들 때, 버틸 이유가 됐어요.


두 번째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한, 두 가지만 집중하세요! 다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학위 따는 것 말고, 주변에서 유학하니까 나도 가야지 하는 것 말고, 유학은 정말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 같아요. 물론, 대부분 하다 보면, 현실이 항상 그러하듯, 목적이 살짝 바뀌기도 하고 강화되는 부분들도 있어요. 항상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열고, 어떤 기회와 정보가 있는지, 비싼 돈과 소중한 시간을 태워가며 하는 유학인 만큼, 그것에 가장 근접한 수업들을, 선택과 집중의 전략으로 듣기를 권해요. 버릴 것 과감하게 버리고, 챙길 것 명확하게 챙기는 전략을 썼어요. 저는 석사 유학을 했고요, 학기에 보통, 청강을 제외한, 4가지를 수업을 신청해서 듣는다면, 2가지 수업은, 남들보다 2배 3배 이상의 시간을 할당했어요. “무조건 이 수업만큼은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했죠. 더 자세한 디테일들이 있을 수 있는데요. 요점은, 마치 옛날 주유소 습격사건 영화에 나오는 유호성처럼, 다른 건 몰라도 “난 한 놈만 팬다!”의 멘탈리티인 것이죠. “이 수업에서 최고가 될 거다. “라는 생각으로 하세요. 제가 하버드를 졸업할 때, 디지털 디자인 일등상을 타고, 3과목 우등 졸업을 한 전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이남주 씨가 설립하신 NJ STUDIO은 어떤 활동을 하는 기업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여러 변화들이 있었어요. 군대 제대 후 2004년 겨울에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Business-to-business 쪽을 하다가, 2010 해외로 나오면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어 지금은, 개인적인 작업이나 디자인, 컴퓨테이션, 프로젝트, 교육, 연구, 출판 그리고 뉴스들을 공유하는 용도로 주로 쓰고 있습니다.



Q. 건축 디자이너, 그리고 프로그래머라는 분야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됐나요?


사실 저는 건축을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을 했어요. 요즘 말로 특성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건축공부를 시작했죠. 디자인도 하고, 도면도 작성했었죠, 결국 자격증을 취득을 하면서, CAD(컴퓨터를 이용한 설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설계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아 설계를 하면서, 3D 설계까지 하게 되었죠. 그리고 대학교를 들어갔어요. 때문에 디자인 스튜디오 수업시간에 마찰이 많이 있긴 했어요. 왜냐면, 자칫하면, 설계보다 컴퓨터 기술 쪽으로 저의 설계를 오해할 수 있는 소지도 있었죠. 에피소드지만, 졸업작품에서 교수님의 요청으로, 저만 모든 도면을 손으로 그려서 제출했었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최대한 경쟁을 피하고, “나”여서 혹은 “나”니까 할 수 있는 지점들을 캐릭터화 시키는 것이 전략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디자인을 중심으로 3D 애니메이션이나, 시뮬레이션, 쪽으로 능력을 키워 갔어요. 그 덕에, 20대 중반에 스타트업을 할 수 있었고, 패러다임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 흥미를 확장시켰고, 지금의 관심사인 디자인과 데이터 그리고 코딩의 영역까지 오게 되었죠. 


이 시기에, 저는 굉장히 중요한 체험을 해요. 아무래도, 코딩을 하려면, 수학과 기하학을 이해해야 하고, 수능의 문제 풀이로서의 수학이 아니라, 디자인을 기술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수학, 즉 공간, 디자인 발전단계를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훈련을 많이 했어요. 이전에 사용했던 2D, 3D 소프트웨어들이 왜 그렇게 설계됐는지 이해가 되고, 각각의 명령어 아이콘은 왜 이러한지, 디자인 프로세스가 어떻게 되어야 효율적이고 창조적인 수 있을지, 각각의 서로 다른 영역들과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들이 하나로 화해되고 통합되는 경험을 하죠. 이런 형식의 도약들이 몇 번 있었어요. 결과적으로 디자이너로서 프로세스를 개발할 수 있고, 사용자로서 도구를 이해하게 되고, 엔지니어로서 도구를 개발할 수 있는 시각과 경험 그리고 통찰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요약하면, 디자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컴퓨팅 파워를 활용하는 쪽으로 관심이 확장되었고, 그 결과, 두 다른 지점에서 오는 상호 보완적인 유니크한 시점을 가지게 됐고, 그것이 경쟁력으로 변한 것 같아요. 사실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두 지점을 잘 소화시켜 시너지 효과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만큼, 진입장벽이 있더라도, 극복 후에는 정말 많은 기회가 있어요. 제가 경험한 것이고, 제가 후배님들과 학생분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내용이기도 해요.



Q. 현재 유튜브, 다음 브런치, 글과 강의 등을 통해서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에 관한 여러 정보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짧은 답은,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저변 확대가 주목적이에요. 그것이 저에게 좋고, 산업에도 좋은 방향이죠.      

90년생이 세상을 바꾸는 것을 보고 깨닫게 됐었죠. 회사 조직문화, 회식문화 등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문화가 개선되고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죠. 과거에는, 사회에 자리를 잡으신 분들에게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을 알리려 노력을 많이 했는데, 유의미한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근래에 학생들과 산업의 젊은 인력들을 교육하고,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산업이 실제적이고 근본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경험했어요. 제 생각은,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실력을 상향평준화를 시키면, 산업이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예컨대, 학생들의 실력이 올라가면, 교수와 강사와 연구자의 실력도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학생들이 실무에 나와서 5년, 10년 뒤에, 팀장님도 소장님도 나올 것이고, 정책을 결정하는 공무원도 나오겠죠. 그렇게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의 올바른 이해와 가능성을 체험하고 활용하신 분들이 산업 전반에 편만하게 퍼져 계시면 그만큼 한국의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산업의 경쟁력도 올라가게 되겠죠. 결과적으로, 저도 더 재미있고 좋은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동시에, 제가 학생 때는, 공부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었어요. 사실 요즘도 큰 변화는 없어요. 유학을 가거나, 아니면 비싼 사설 학원비를 주고, 공부를 해야 하는 실정인데, 사실상 툴의 사용법 위주로 익히는 것이 대부분이죠. 유학의 경우는 영어도 공부해야 하고, 투자돼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죠. 그러던 중, 이메일, 친구들의 소개 등등의 여러 채널을 통해서 질문들을 받다가, 반복되는 질문들이 많았고, 질문의 성격에 맞게, 제가 정리하고 있는 전공지식과 경험을, 섭취하기 편하게, 다양한 난이도와 복잡도로, 온라인에 올려놓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죠. 저의 이런 취미활동과 사이드 프로젝트가, 아직 유아기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산업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영광이고, 너무 재미있는 기회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Q.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코딩은 어떠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나요?


여러 가지 버전의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짧은 답은 “꽤나 쓸 만한 최신의 도구가 디자이너의 손 앞에 놓여있다. “입니다.


다른 말로는 “소프트웨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코딩을 사용한다.”인데요. 작금의 디자이너들은 연필과 종이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통해 가상공간에서 디자인을 하는 경우가 많죠. 이것이 시사점이 얼마나 크냐면, 전기가 안 들어오면, 컴퓨터가 없다면, 디자이너들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되죠. 건축, 웹디자인, 앱디자이너, 모션그래픽, 2D, 3D 애니메이션, 영상 디자인 등등 굉장히 많은 디자인 산업이 그 순간 멈출 거예요. 이 정도로 소프트웨어는, 오늘날의 디자이너에게 굉장히 중요한 도구죠. 하지만 이러한 소프트웨어의 장점이자, 단점은 소프트웨어(Generic Software)는 일반 용도라는 것이죠. 특정 업무에, 컴퓨팅 파워를 증강시켜 활용하기 위해서는 커스터마이제이션(Customization)을 해야 해요. 즉 코딩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죠. 지금 스스로 사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파워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코딩이라는 도구로, 소프트웨어를 굉장히 높은 수준의 복잡도와 정밀도로, 디자인 프로세스에 맞게 조작 및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죠. 


사실 예전부터 많이 받은 질문들이라, 실제적인 키워드를 들면, 코딩은 디자이너에게, (1) 창의성의 도구다. (2) 대신 일 할 수 있는 일꾼을 만들게 해 준다. (3) 실험적 작업이 가능하다 (4) 자동화의 도구다 (5) 균일한 품질 유지를 도와준다. (6) 최적화의 도구다 (7) 문제로서의 디자인 인식 (8) 솔루션으로의 디자인 (9) 디자인에 데이터 사용하기 위해서 (10) 디자인 방법론 때문에 (11) 다양한 커리어 패스를 만들 수 있다. (12) 진입장벽을 높여 준다. (13) 경쟁력을 준다.로 키워드들로 요약될 수 있어요.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학생분들과 실무자분들의 일반적인 오해중 하나는 코딩, 즉 프로그래밍을, 기존 도구를 대체하는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가령,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했듯이, 스마트폰이 전화기를 대체했듯이 대결구도로서 이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정확한 예는 육지에서는 자동차, 바다에서는 배, 그리고 하늘에서는 비행기를 타는 것처럼, 코딩은 기존의 도구를 대체시키는 대결구도가 아니라, 우리가 용도에 맞게 이미 쓰고 있는 도구들을 증강해서, “더 높은 난이도와 복잡도를 명시적, 순서적, 수학적 방법으로 다룰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도구다.”라는 시각을 가지고 계시면, 컴퓨테이셔널 디자인과 그에 따른 학습을 할 때, 오해 발생이 적어지고, 이해에 유리한 점이 많을 거예요.



Q. 현재 디자인과 코딩은 분리된 영역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디자인 전공자들이 코딩 공부에 대한 막연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 전공자들, 특히 건축 디자인 전공자의 경우, 코딩 공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많은 디자이너가 물어오는 질문인데요, 여러 가지 답들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추천되는 시작점은 있어요. “내가 가장 잘 사용하는 도구에서부터 시작하자!”인데요. 디자이너라면 왼손과 오른손에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 소프트웨어가 한두 개는 있을 거예요. 예를 들면 포토샵 혹은 일러스트레이터, 라이노, 등등 2D 혹은 3D 프로그램들이죠. 이러한 프로그램은, 스크립트 환경이 지원이 돼요. 그 소프트웨어에 이미 익숙하기 때문에 어떤 명령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알고 있죠. 그 순서를 그냥 컴퓨터의 언어로 작성을 하는 것이죠. 즉, 이행지침서를 만들어 주는 거예요. 이걸 코딩이라고 하죠. 이렇게 하면 재미있고, 좀 더 빨리 배울 수 있어요. 왜냐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직접 적용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코딩을 수정할 때, 그 시각적인 피드백이 바로바로 나타나서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어요. 만약, 컴퓨터 공학에서 프로그래밍을 하는 방식으로 공부하면, 재미도 없고, 너무 어렵고, 디자이너의 경우 시각적인 부분이 중요한데, 그래픽스 코딩을 하기 전에 이미 지쳐 버리는 케이스를 많이 봤어요.


코딩의 문법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때부터 컴퓨테이셔널 사고가 중요해지기 시작해요. 복잡한 문제들을 작은 단위로 쪼개고, 순서를 나누고 논리 분기들을 디자인하는 것이죠. 즉 생각의 흐름을 명시적으로 하는 사고 훈련이에요. 특별히 디자이너의 경우에는, 스스로의 디자인 방법론이 명확하다면, 비교적 컴퓨테이셔널 사고를 쉽게 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상담을 하다 보면, 학생분들의 경우 코딩의 문제보다 스스로의 디자인 방법론의 부재로 코딩을 어려워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이럴 때는, 디자인 공부를 더 하시는 것이 유리해요.



Q. 우리 대학 건축학과 수업 중 현직 실무자로서 가장 도움이 됐던 수업이 있을까요?


많은 수업이 있지만, “설계 스튜디오”와 “건축 컴퓨팅” 수업이 저에게 가장 주요한 수업이었다고 생각해요. 정만영 교수님, 김진욱 교수님, 그리고 김원필 교수님의 수업과 졸업 후에도 꾸준히 주시는 조언은, 수업을 넘어, 인생과 커리어 디자인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설계 디자인 스튜디오는 사실, 건축학에서 가장 중요한 수업으로 여겨져요. 단순히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을 넘어, 생각하는 방법을 기르는 수업이에요. 사실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은, 어떤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디자인 방법론을 좀 더 명시적으로 컴퓨터에게 코드로 적어서 알려 줘야 하거든요. 결국, 컴퓨터의 사용 기술을 넘어, 스스로의 생각과 디자인 랭귀지가 더 중요해지게 되죠. 따라서 4년간의 다양한 스튜디오 수업들을 통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논리를 발전시켜 공간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사유 훈련을 했었어요. 디자인 방법론을 연구하고, 솔루션을 개발하고, 컴퓨테이셔널 사고를 할 때, 설계 스튜디오에서 배운 생각하는 방법은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의 기초 블록들이 됐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 수업은, 건축 컴퓨팅 수업이었어요. 당시 김진욱 교수님께서 CAD(컴퓨터를 이용한 설계) 쪽 연구를 많이 하시고, 학교 커리큘럼에 적용을 하셨던 것 같아요, 다른 학교에 비해서, 우리 학교 수업 환경은, 적극적으로 컴퓨터 도구를 설계에 도입하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제가 대학 3학년 때부터 NJSTUDIO 스타트업을 할 수 있었던 관심과 자신감도 건축 컴퓨팅 수업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어요. 그 수업을 통해서 건축 디자인과 3D 디자인 그리고 다양한 디지털 디자인 프로세스를 배울 수 있었고, 그 흥미가 유학과 미국의 직장까지 확장된 것이죠.



Q. 지금까지 하셨던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사실 매번 단발성의 디자인 프로젝트만 하다가, 지속 가능하고, 지역을 넘어 여러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두 가지 프로젝트를 나누어 봅니다. 첫째는 회사에서 개발하고 있는 프로덕트, 둘째는 엔제이채널 프로젝트입니다.


저의 회사가 세계 GIS(지리 정보 시스템)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큰 회사인데요, 그만큼 여러 상황에 대한 시스템이 잘 되어있죠. 그런 회사에서, 제가 입사 6개월 만에 연봉을 거의 80% 이상 인상한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회사에서는 저의 케이스를 예외 처리해준 것 같아요. 그 이유가 제가 개발하고 있는 디자인 툴 때문이라 생각해요. 큰 회사인 만큼 처음에는 정말 많은 견제구와 회사의 관례, 관습에서 오는 많은 마찰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의 디자이너로서의 경험과 그에 따른 도구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를 화학반응을 내면서, 경쟁적으로 프로덕트를 개발했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운이 좋게 회장님께 발표를 했고, 그 결과 많은 프로모션이 이루어진 프로덕트예요. 회사 통계를 보면 매일, 세계의 몇 만 명의 사람이 제가 만든 프로덕트로 지도 위에 데이터와 정보를 표시하고 공유하는데 쓰고 있어요.


두 번째로, 엔제이채널 프로젝트인데, 저의 경험과 전문 지식을 나누고 있는 프로젝트예요. 유튜브에서 비디오, 다음 브런치에서 글, 그 밖의 다양한 채널로 한국어와 영어 버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요.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이론 수업부터 워크숍까지, 그리고 유학과 취직 그리고 젊은 청년들의 전투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저의 경험을 공유하는 프로젝트예요. 보통 후배님들이 힘들다고 오시면, 제 이야기를 들으시면, 그래도 내가 저 사람보다는 상황이 낫네, 나도 해볼 만하겠네 라는 힘을 얻고 가세요. 약 3년 정도 진행 중인데, 나름의 열매가 나오는 것을 보고 감사하고 있어요. QnA에서 학업, 취직, 유학에 대한 고민과 정보를 여쭈어 보신 분들도 계시고, 그 과정을 통과해서 잘 마무리하신 분도 계시고, 오프라인으로 찾아오시는 후배님들도 계셨어요. 프랑스, 영국, 미국 호주에서도 다양한 피드백을 주시고 계시는데, 너무 감사드리고 있어요.



Q 그렇다면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두 가지 목표가 있어요. 첫 번 재는 콘퍼런스, 두 번째는 협회 설립이에요.

    

콘퍼런스를 추진하려고 하고 있어요. 엔제이채널과 ,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슬렉과 오픈채팅방을 운영하면서 한국의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에 관심 많으신 선배, 후배님들과 소통을 계속해오고 있어요. 그분들과 함께, 첫 콘퍼런스 추진을 목표로 잡고 있는데, 어디까지 실현시킬 수 있을지 저도 궁금해요. 잘 안되더라도, 최선을 대해서 시도해보고, 꾸준히 매해 발전시켜 나가고 싶어요. 아마도, 같이 동참해주시는 분들의 열정과 함께라면, 긍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결과가 나올 것 같아서 기대됩니다.


좀 더 먼 미래로, 협회 설립이에요. 궁극적으로, 산업이 보호와, 발전을 위해서는 협회가 필요하고, 한국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협회를 통해서, 좀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도움과 환경을 구축하고 싶죠. 아직은 저도 많이 어려서 생각만 하고 있는데, 언젠가, 상황이 된다면, 선배로서, 더 좋은 상황과 생태계를 후배님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비주류로 여겨지는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영역을 각각의 산업에서 좀 더 존중받고, 인정받고, 건강한 협업이 일어날 수 있는 선순환을 보장하는 초석으로서 협회를 만들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직업적 비전이나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해주세요. 


첫째,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산업의 확장

디자인과 건축산업의 발전방향은 명확하다고 보고 있어요. 문제는 속도라고 봅니다. 균형 잡힌 속도감과, 어떻게 디자이너들이 4차 산업이라는 파도를 타고 넘어갈 수 있을지, 저의 경험과 지식으로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비주류로 여겨지던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이, 근래에 많은 조명을 받고 있어요. 그 보수적인 건축 산업에서도 궁금해하시고, 업무에 적용하려고, 알아보시고, 공부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어요. 계속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소통하면서, 저의 지식과 경험이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산업 확장의 속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요. 특별히 건축 산업의 경우, 건축가의 역할이 발휘될 수 있는 새로운 영역들이 출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는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온라인을 통해 모이고, 소통하는 일에 익숙해졌고, 기술과 인프라스트럭처 그리고 사용자의 고정관념도 바뀌어 가고 있어요. 예를 들면, 전통적으로, 온라인상에서, UI UX 디자이너들이 2차원적인 화면의 사람들의 소통의 인터페이스를 창조했다면, VR, AR 혹은 MR의 개념과 메타버스의 콘셉트는, 왜 건축가들이 가상의 공간 디자인에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지, 중요성과 필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지요. 이러한 연구와 가상공간에서의 디자인에서,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은 매우 중요한 도구와 통찰과 개념들을 제공하고 있죠. 이처럼, 기술발전과 인식전환은 산업의 확장에 많은 기회를 우리에게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둘째로,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교육의 확대 

제가 건축을 시작한 20여 년 전에는 컴퓨터라는 도구는 선택적인 도구였죠. 오히려 CAD(컴퓨터를 이용한 설계)를 왜 사용해야 하는지 설명이 필요한 시대였죠.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CAD가 없으면 세계의 99% 이상의 디자인 사무실은 업무가 마비가 돼요. 그만큼 산업은 바뀌었죠. 앞으로는 어떨까요?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인공지능과 코딩에 노출된 세대들을 산업에 투입되는 시점을 고려해 본다면, 10년 뒤에는 모든 디자이너가 코딩을, 너무 당연히 지금 우리가 소프트웨어 사용하듯이, 사용하는 시대가 온다고 보고 있어요. 때문에 작금의 많은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위한 코딩과 컴퓨테이셔널 사고를 공부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의 수업과 워크숍 그리고 학습 자료가, 특정 부분에 있어서, 그런 분들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제가 공유할 수 있는 교육들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사실, 산업의 토양인 교육이, 건강하고 풍부한 영양을 품고 있다면, 산업은 긍정의 사이클과 다양한 경쟁력을 가지며 발전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에요.


마지막으로, 상상을 해보면 은퇴 후, NJLAND를 만들고 싶어요. 큰 창고에 여러 작업실을 만들어 놓고, 학생분들과 실무자들 연구자들 교육자들이 모여서 같이 토론하고, 작업하고, 교육도 하고, 강의도하고, 연구도 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NJ STUDIO/ LAB / ACADEME / CHANNEL들을 온라인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이것들의 오프라인 성격인 것이죠. 그때 즈음되면, 산업은 더 발전 해졌을 것이고, 많은 인력들이 있을 것인데,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하신 것처럼, 함께 지식과 기술을 정리하고, 연구하고, 남기는 작업을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좀 더 빠르게 유아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드는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산업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요청 감사드리고요. 

저의 사례가 후배님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이야기였으면 좋겠어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요, 같은 일을 반복한다면, 다른 결과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하죠. 저는 후배님들이 그 에너지들을, 심장이 뛰고 몰입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즐기면서 인생의 다양한 사례와 내용을 만들고, 또 후배들이 그것을 보고 달음박질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길 기대하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남주 / nj.namj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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