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윅의 반쪽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영화 '헤드윅' 리뷰

초반 헤드윅의 모습은 너무나 난해하고,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노래를 계속 들으면서 이는 헤드윅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꼈다. 진정성 있는 노래들은 헤드윅과 관객 사이 벽을 허물었고, 몰입하게 만들었다.


movie_image.jpg 충격적이였던 오프닝 씬


헤드윅이 계속해서 언급하는 자신의 '반 쪽'.

영원한 사랑을 믿으며, 진정한 사랑을 할 때 반 쪽을 찾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헤드윅의 믿음에 배신하고, 진정한 사랑은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럴수록 짙은 화장과 독특한 분장 속에 자신을 숨긴다. 겉모습은 강해 보일 지라도 속은 여리고 여전히 남을 의식하는 헤드윅이다.


헤드윅이 정말 멋진 이유는 어떠한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처가 깊어지지만, 자신을 찾아가는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위플래쉬 플레쳐 교수의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고 가치 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라는 대사가 떠오른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헤드윅의 도전을 응원하고 있다.


결국 헤드윅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반 쪽을 찾는다. 더 이상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길 필요가 없기에 맨 몸으로 거리에 나선다. 뒷모습만 등장하였으나 전혀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아픈 만큼 성숙해졌고, 그 누구보다 행복할 것이니까. 이제는 완전한 자신의 삶을 사는 헤드윅이니.



movie_image1W0B6IVM.jpg 짙은 화장으로도 우수에 찬 눈빛을 가리기는 힘들다


나는 영화에서 말하는 '반 쪽'이 단순히 성 정체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나의 모습 (반 쪽)'이 있다면 이를 벗어난 '진짜 나의 모습 (나머지 반 쪽)'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자를 '이미지'라고 부르는 이유기도 하다.

사람들 대부분은 사회 속 자신의 모습이 진짜라 생각한다. 아니, 자신의 반 쪽을 찾는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걸 알기에 혹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찾지 않는 것 일수도 있다.

자유에 희생이 따르듯 깊은 시련 끝에 진짜 내 모습을 마주했을 때 또 다른 행복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아니, 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수도 있다.


나 역시 진짜 내 모습이 무엇인지 모른다. 아직 반 쪽을 찾지 못하였으니.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행복이 나타날 거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나도 그저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었을 뿐.


그럼에도 나는 내 반 쪽을 찾아가고 싶다. 여러 무리 속 나의 모습들의 공통점이 내 모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다. 현실 속 헤드윅을 만나 맥주 한 잔 하는 그 날이 온다면 알 지도.



올해 6월 28일 재개봉한 헤드윅. 아직 상영하는 영화관이 많으니 사운드 빵빵한 영화관에서 보기를 추천!



작가의 이전글욕심을 버리고 광주까지 안전 운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