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난장

by 노준성

디카시가 먼저 말한다

“나는 한 컷이면 충분하지,

너희는 왜 그리 길게 떠드니?”

하이컷이 코웃음 친다

“네 짧음이 예술이라면

내 짧음은 절제의 미학이지”


서사시는 천천히 일어나며

“이봐, 이야기는 길어야 맛이지

인생도 한 장면으로 끝나지 않아”

그 옆에서 서정시는

“하지만 마음은 순간에 피고 지잖아

길게 쓰면 감정이 바람 빠져버려”


풍류시는 술잔을 돌리며

“다들 좀 부드럽게 살아보게

시는 결국 멋 한 모금 아니던가?”

그 말에 디카시는 툭 쏜다

“그 멋 때문에 독자들이

끝까지 안 읽는 거야”


그 순간 모두 잠시 침묵

각자 자기가 최고라 믿으면서

서로의 결함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창밖엔 낙엽이 한 장 떨어지고

그걸 본 자연이 웃는다.

“시들아, 시기 좀 그만해라

나는 한 줄로도

너희 전부를 쓴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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