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근로계약서

by 노준성

계약서명: 시인 근로계약서

갑(甲): 독자— 세상의 취향과 반응을 관장하는 자

을(乙): 시인 — 감정과 단어의 노동자


제1조 (근로의 목적)

을은 갑의 심금을 울리기 위하여

감정의 야근과 단어의 초과근무를 수행한다


제2조 (근무 장소)

을의 사무실은 시의 여백이며

책상은 가슴, 잉크는 피로 대신한다

단, 카페 한 구석 또는 새벽의 창가도 무급 인정된다


제3조 (근로시간 및 휴식)

을은 영감이 출근하는 순간부터 퇴근할 수 없다

퇴근은 시 한 줄 완성으로 간주되며

감정의 초과근로는 ‘감동’으로 보상한다


제4조 (보수)

갑은 을에게 다음과 같은 보수를 지급한다

외움 : 1회당 기본급 인정

공감 : 인센티브

무반응 : 정당한 해고 사유로 간주 가능


제5조 (저작권 및 소유권)

을의 시는 을의 영혼에서 작성되나

갑의 마음속에 저장될 경우 그 소유권은 공유로 본다

단, 복제·배포·무시 시에는

을의 자존심이 자동 파산한다


제6조 (계약의 종료)

이 계약은 독자가 눈길을 거둘 때 자동 종료된다

단, 시 한 줄이라도 기억된다면

을은 해고 후에도 영혼의 프리랜서로 잔류한다


제7조 (기타 조항)

갑은 비평을 할 권리를 가지며

을은 상처받을 의무를 가진다

모든 시적 분쟁은 ‘감성’ 법정에서 조정한다


서명란

갑(독자): ____________ (도장 대신 하트 가능)

을(시인): ____________ (눈물로 서명함)


서명 할까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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