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어스름에
밭고랑은 삽날에 깊게 갈라지고
논두렁엔 여전히 잡초가 기어오른다
피사리하는 손끝은 허리보다 먼저 굽고
땀방울이 떨어진 자리는
햇볕보다 뜨겁게 반짝인다
여름의 논은 파도처럼 출렁이고
장맛비는 흙길을 집어삼킨다
젖은 신발 속 발가락은 곪아도
내일 모내기는 미룰 수 없다
가을이 오면 황금 들녘에
콤바인 소리가 울려 퍼진다
벼이삭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농부의 마음엔 주름이 새겨지고
창고에 쌓인 낱알만큼
세월의 무게도 쌓여 간다
겨울이 오면, 텅 빈 들판 위로
매서운 바람이 뼈까지 스민다
장작불 피운 사랑방에 둘러앉아
묵은 김치 한 그릇 나누는 저녁
소박한 웃음 속에서
농부은 허리를 펴본다
삶이란 거창하지 않아
흙에 손을 대고 두발로 걸어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