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펼수 없는 이유

by 노준성

아주 옛날 젊은 날에

손등에 굳은살을 새겼다
논밭, 시장, 공장, 집안일
어디서나 불평 없이

나의 몸을 내어주었다

허리를 곧게 세운 날보다
구부린 날이 많았다
그때마다 세상은

가볍게 지나갔고
나만 무겁게 남았다

아이들 밥상, 남편의 한숨
주인댁의 험상까지
내 몸은 늘 흔들렸지만
손과 발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나는

허리를 펴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서 있으면
삶이 나를 다시

밀어낼 것 같아서
그저 앉아, 누워, 지탱하며
오늘을 또 살아낸다

때로는 욕심없이
때로는 참을 수 없이
하루를 견디고 나면
밤이 와서 숨을 놓는다

세상은 나를 보지 않아도
나는 나를 안다
곧지 않은 허리로도
살아낸 날들이

굽은 늙은이로 남겼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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