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

by 노준성

땅속 깊은 어둠 속에서
고운 뿌리가 서로를 스치는 소리
차마 닿지 못할 인연을 예감하듯
줄기가 뒤틀리며 그리움을 애달프게 바라본다

메마른 흙의 봉인을 뚫고
붉은 혼 하나가 세상 밖으로 숨 쉴 때
먼저 지던 잎의 빈자리는 몰라도
떨리는 꽃술은 이별을 알고 있었다

모든 바람이 멈춘 고요한 자리
보고픔의 눈물만이 하릴없이 흩날리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기다림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면

스친 줄도 모른 채 영영 엇갈린 너와 나
지독한 애절만이 뿌리 깊이 스며든다
밤의 장막이 짙게 내려앉아
세상의 빛은 사라지고

이 붉은 몸짓은
끝내 아무도 모를 걸어온 길가에
주저앉아 숨겨온 서러운 눈물만 훔치고
고왔던 향기마저 적막 속에 사라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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