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밤은 천년 묵은 먹물처럼 짙고
나는 낡은 시계의 멈춘 태엽처럼 고요히 잠듭니다
세상과 나를 잇던 모든 가느다란 실들이 끊어진 후
귀 기울여도 메아리 없는 깊은 고독만이
천장 없는 방을 가득 채웁니다
가슴을 누르던 중력은 사라지고
이제 뼛속 깊이 스며든 냉기만이
다가오는 무(無)의 온도를 예감하게 합니다
회한은 밤새도록 지지 않는 별처럼 선명하여
세월의 주름마다 꿰매놓았던 과거의 실밥을 풀어헤칩니다
지키려 했던 명분과 놓쳐버린 진심 사이
나는 평생 잘못된 문만 두드렸지요
왜 그때, 가장 빛나던 순간을 움켜쥐지 못하고
남의 시선이라는 단단한 껍질 속에 숨었을까요
모든 서툰 망설임이 쌓여 이 거대한 벽을 이루었음을
이 삶의 황혼 앞에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 가물거리는 생명의 불빛이 꺼지기 전
나의 잔해가 바람이 되기 전, 속삭입니다
단 한 번뿐인 너의 호흡을 아끼지 마세요
후회는 결국 미처 피워내지 못한 것들의 이름이니
두려워 말고 너의 가장 뜨거운 쪽을 내보이세요
사랑한다는 말은 천금보다 무거운 축복입니다
망설임의 가시밭길을 걷지 마세요
모든 짐의 무게를 이제 내려놓습니다
긴 꿈에서 깨어난 듯, 육신은 가볍게 이완되고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 속으로 조용히 섞여듭니다
나는 이제 고요히 흐르는 강물이 되어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바다를 향해 나아갑니다
세상의 모든 아픔이 잦아드는 자리
편안합니다, 나의 모든 시간들이여
고맙습니다, 이 아름다운 침묵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