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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24. 2020

[DAY111(2)] 해리포터 영화 촬영장 아닌가요?

지수 일상 in Porto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나오니 하늘은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전과 달리 회색빛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유럽의 날씨는 어플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시시각각 변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산도 없는데 갑자기 날씨가 변하는 걸 눈앞에 두고 있자니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오늘은 내가 포르투에 도착해서 제대로 둘러보게 되는 첫날인데 말이다. 맑은 하늘과 쨍쨍한 햇빛은 바라지는 않더라도 오늘 하루 일정이 끝나기 전까지만이라도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간절하게 행운을 빌어 보았다. 제발요.



당장은 이동하기에 이상 없었기 때문에 일정을 진행했다. 사실 일정이라고 말할 것도 없는 일정이지만 그래도 나에게만큼은 포르투를 기억할 수 있는 소소한 시간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 소소함도 소중했다. 사실 나는 관광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더욱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무언가를 읽고 이해해야만 하는 유적지나 랜드마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걸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도 있지만 여행이라고 하면 나에게 익숙한 사람들, 그리고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경험하기 위해 떠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낯섦 속에서 익숙한 행동과 패턴을 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평소와 같이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던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면서 매일 아침으로 먹던 뮤즐리를 찾는 것? 그래도 여행을 왔으니 나도 으레 여행객들이 하는 기념품 사기나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고르고 골라 하루에 한 두 개만 하는 정도. 이런 것도 혼자 여행하는 것이니 해볼 수 있는 것 아닐까?(아마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었으면 또 다른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은 걷는 것의 연속이다. 밤이었다면 길 가다가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낮이라 그런지 건물의 벽에 붙어있는 타일들도 색다르게 보인다. 포르투에서 유명한 다리 쪽으로 가다가 발견한 작은 성, 한 번쯤 근처에 가서 들어가지는 않더라도 외부를 구경할 법하지만 유적지는 관심이 별로 없었던 터리 멀리서 구경만 했다. 지금 당장은 내가 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이지?



바로 동 루이스 다리! 19세기에 건설된 이 다리는 포르투 시의 중심부와 빌라노바 드 가이아 사이의 도루 강에 놓여있다. 이곳에 가기 전 다리의 모습을 어느 유튜버가 방문하여 보여준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다리와는 달리 도로가 위아래로 연결된 이층교 구조를 띄고 있는데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브 에펠과 함께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전에 다른 사람이 찍은 영상과 사진으로만 보았던 이 다리를 직접 보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도착하기 전부터 매우 기대했다. 상상한 것보다 꽤 길이가 길었고 폭도 넓어 상상 이상이었다. 그리고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다리가 놓여있는 곳 양쪽으로 주황색 지붕을 한 집들이 빼곡히 있었다는 것. 정돈된 듯한 풍경에 뒤 돌아보면 조금은 어수선하기도 한 풍경에 조금 흠칫 놀라기도 했지만 강 주변이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렇지 않을까 하고 혼자 상상하기도 했다. 다리의 중반쯤까지 다다른 나는 끝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뒤 돌아왔던 방향으로 걸어가야만 했다. 왜냐하면 다리에 발을 내딛기 전부터 가로로 미스트와 같은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다리 중간까지 오니 강바람 때문인지 너무나도 바람이 심하게 불어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산조차 없었던 나는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닐 거 같다는 생각에 1보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숙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나는 길을 되돌아 갔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는 한 건물로 나도 따라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바로 포르투 하면 한 번쯤 가볼만한 곳으로 꼽히는 '상 벤투 기차역'이었다. 포르투의 역사를 약 2만 개나 되는 타일로 표현한 것으로 아줄레주 벽화로 유명한 곳이었다. 사실 나는 타일의 개수에 놀라기도 했지만 기차역이 이렇게 화려하다는 것에 한 번 놀랐고 생각보다 섬세한 표현을 타일 위에 했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왜 이곳의 사람들이 다들 기차는 안 타러 가고 벽과 천장만 목이 빠져라 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왜냐면 내가 똑같이 했기 때문이지?



유럽의 흔한 기차역 안내판. 유럽을 여행하면서 신기하게도 버스(대부분이 플릭스 버스)는 정말 30번이 넘을 만큼 주야장천 탔던 거 같은데 기차를 탄 적은 정말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그래서일까, 이곳처럼 현대식인 모습이 아닌 영화에서만 볼 법한 앤틱 한 풍경의 건물을 보면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곳에서도 순간적으로 해리포터가 호그와트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러 온 기차역이 오버랩되었는데 시계와 기차역 안내판은 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뿐만 아니라 현실세계가 아닌 영화 소품 같아 한참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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