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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순 Jan 14. 2022

2. 술책

관계의 윤활유

술책을 읽으며 앞으로의 술책을 목하 고민 중이다. 도서상품권이 무려 네 장이나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서랍에 넣어두고 잊고 있었는데 곰팡이가 슬기 전에, 그러니까 새 달력이 걸리기 전에 책으로 바꿔놓자고 생각했다. 작은 술책에 스스로 만족하면서 동네 서점에 갔다.


늘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지만 예전 살던 동네에 있던 홍문당이 화장품 가게에 밀려 사라지면서 쏠쏠한 즐거움을 주던 나의 서점 나들이는 거의 끝이 났다. 인터넷 서점이 시간의 제약도 없고 여러모로 편리하다. 한 번 편리함에 맛을 들이면 늪처럼 제 발로 걸어 나오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암튼 그렇게 네 장의 문화상품권을 들고 문예 서점에 갔다. 일반 책보다는 책꽂이의 대부분 책이 참고서인 동네서점이다. 서 있지 않고 누워있는 책들 먼저 훑어보았다. 구면인 책들이 꽤 된다. 누워 있는 책들 중에 따끈따끈한 책들을 고르려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나의 손길이 잠시 스친 책들도 서점 밖 세상을 구경한다고 좀 설렜을까. 그렇담 진심 미안한 일이다. 혼자 설레서 하늘을 날다가 곧장 구렁텅이로 쑤셔 박히는 경험이 많기에 그 마음의 궤적을 너무나 잘 아니까.


좀 괜찮다 싶은 책은 뒷면부터 훑어본다. 가격이 제법 쎄다. 그다지 성능이 좋지 않은 내 몸의 컴퓨터가 위잉 작동을 한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소비자인 나는 늘 그놈의 가성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눈요기만 하고 도로 내려놓은 책도 있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야지.’ ‘ 이 책은 인터넷으로 주문해야겠어.’ 등등 얄팍한 나의 술책들이 좁은 머리를 가득 채웠다.


서점을 나오려는데 주머니에 들어 있던 네 장의 상품권이 나의 발길을  돌려세웠다. 어쨌든 오늘 이 네 장은 책으로 바꿔야 한다. 매의 눈으로 다시 책등에 쓰인 제목들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읽어나갔다. 혹시 빠뜨렸을까 검지 손가락으로 책등에 보이지 않는 선을 삐뚤빼뚤 그으면서.


그러다 내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책들을 발견했다. ‘아무튼 시리즈’ 아무튼이라는 접두어를 단 책들이 주르륵 너무도 많았다. 손에 딱 잡히는 그립감도 편안한 자세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읽기에도 딱 좋을 그런 책이었다. ‘아무튼, 여행’ ‘아무튼, 떡볶이’ ‘아무튼 영화’ 등등…. 그 많은 아무튼 시리즈 중에 나는 두 권을 집어 들었다. 한 권은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제를 달고 있는 ‘아무튼, 술’ 그리고 다른 한 권은 ‘기억도 마음도 신발도 놓고 나오는’이라는 제목의 ‘아무튼 , 술집’이다. 최근에 내가 산 술책은 또 한 권이 있다. 권여선 작가의 ‘오늘 뭐 먹지?’란 책이다. 모든 음식을 안주화한다는 말에 홀려 산 책이다. 잠깐 게임 한판 하고 난 느낌이랄까. 그랬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엔 술책이 제법 많아졌다. 아, 또 한 권이 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이렇게 총 세 권이 우리 집에 왔다.


술! 하면 우선 어두운 조명 아래 모여 앉은 술친구들이 생각나고, 입안에 침이 고이고, 머리가 가벼워지고, 이야기가 생각나고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술은 맥주와 와인. 요즘은 주로 와인을 마신다. 와인 하면 또 많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무튼 그렇다. 술 이야기에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현란하게 춤을 춘다.


술 대신 술책을 앞에 놓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마지막, 지금부터 쓰려는 이야기에 있다. 술 마신 기분으로 쓴다. 혼자 떠들 때는 잘만 떠들다가 주변의 모든 입들은 다물어지고 내 앞에 멍석이 깔리면 내 입은 처음 말을 배우는 사람처럼 두서없어지고 중언부언하다가 횡설수설에 이르곤 한다. 그래서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하다. 이렇게 에둘러 긴 글을 쓰는 이유도 그런 나를 위무하는 하나의 술책이다.


벌써 한 해가 그림자만 길게 남았다. 조만간 2021년도 문을 닫을 시간이다. 블로그 글도 쓰다가 말다가를 반복하면서 그럭저럭 유지해 왔는데, 그나마 멈추지 않고 쓸 수 있었던 건 내 글을 읽어주는 이웃들과 독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혼자 놀기에 익숙하다고 해도 모든 글은 읽혀지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내 글 역시 그렇다. 소소한 개인의 소회를 기다려 주고 읽어준 이웃들과 독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특히 친절한 네이버의 데이터 분석팀이 분석해 준, 가장 많은 좋아요를 눌러, 글 쓰는 나를 응원해준 모든 이웃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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