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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순 Jan 04. 2022

1. 너무나 사적인

엄마라는 안식처

꽃배달이 왔다.

내게 꽃을 보낼 사람이 없기에 이건 분명 하마의 생일을 축하하는 꽃배달이라 생각했다. 그때 나는 박완서의 단편 <후남아, 밥 먹어라>를 읽고 있었다.


<후남아, 밥 먹어라>는 치매로 삼 년 고생하다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나게 했다. 치매 걸린 엄마의 이야기여서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참 궁금하다. 책에서도 치매 걸린 노모는 아들 딸을 찾지 않고 이모를 찾았다.


엄마가 치매에 걸려 길거리를 헤매고 다닐  일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치매 걸린 노인들은 한두  경찰서 신세를 지게 마련이다. 떠돌다 집을  찾아 우여곡절 끝에 자식들에게 연락이 오고, 자식들 간의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원점,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우리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길을 잃었고 경찰서의 연락을 자주 받았다. 우리 엄마 역시 끔찍이 여기던 아들을 찾지 않았다. 엄마의 마음 깊은 곳에 ‘딸은 출가외인’이란 딱지가 붙어 있어 딸을 찾지 않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시집간 딸에게 폐가 될까 봐 그랬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그런데 지금도 궁금한 건 ‘왜 엄마는 아들을 찾지 않았을까’이다. 엄마의 아들 사랑은 유별났음에도 말이다.


그 후로도 엄마의 가출은 계속됐고, 70수를 한참 넘긴 엄마는 90수를 한 참 넘긴 엄마네 집, 그러니까 외갓집을 가는 그 도중에 길을 잃고 경찰서의 도움을 받아 매 번 집으로 돌아왔다. 수차례 그러더니 다음부터는 경찰서로부터의 연락이 없었다. 엄마가 외갓집을 제대로 찾아간 것이다. 알고 찾아갔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90수를 한참 넘겨 온통 흰머리인 외할머니는 치매 걸린 나이 든 딸이 불쌍했는지 엄마를 두어 달 가량 외할머니 곁에 머물게 했다. 외사촌 오빠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90 넘긴 외할머니가 70넘은 엄마의 물심부름까지 하고 매일 함께 산책도 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울컥했다.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목언저리가 뻐근했다.


엄마는 둘째 딸이고 아래로 남동생이 셋이나 있다. 엄마 어렸을 때 돌림병에 걸려 줄줄이 열병을 앓을 때 외할머니는 바로 아래 큰 외삼촌에 관심이 쏠려 엄마는 안중에도 없었다고 , 죽어도 그만이라고 했다고 언니한테 들었다. 그런 엄마가 살아서 우리를 낳고 길렀다. 외삼촌은 나날이 성공해서 주변에서 유명한 부자가 되었다. 게다가 대단한 효자였다. 사람들은 다 외할머니 덕이라 했다. 외할머니는 저녁 잘 드시고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외삼촌이 춤을 추던 모습이 아련하다. 사람들 마다 ‘호상’이라고 마치 무슨 축제처럼 여겨졌다. 기이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자손들이 울지 않았다. 조문객들은 크게 웃고 떠들었고 먹고 마셨다. 장례는 병원이 아닌 삼촌네 집에서 치렀다.


그렇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더 이상 외갓집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시름시름 앓다가 더 이상 거동을 못하고 뒤따라 돌아가셨다. 마치 엄마를 따라가듯이.


내겐 궁금한 것이 남았다. 왜 엄마는 아들, 딸을 찾지 않고 정신없음에도 외할머니를 찾아간 것일까. 엄마도 엄마가 그리웠던 것일까. 모든 의무로부터 벗어나 사랑받던 시절이 그리웠을까. 둘째 딸로 태어나 그다지 사랑받고 자라지 않았음에도 엄마의 품이 그리웠을까.


우연이다. 내가 치매 걸린 노인의 이야기 <후남아, 밥 먹어라>를 읽고 있던 것과 우리 엄마가 치매로 돌아가신 것과 하마가 내게 꽃다발을 보낸 것, 그 모든 것이.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정신을 잃고 원초적인 순간이 되었을 때, 그때 생각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본능이 아닐까라는. 박완서의 작품에서도 아들, 딸이 아니라 제 피붙이, 이모네 집을 선택했다. 그리운 것은 , 무의식은 늘 마냥 행복했던 순간을 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기억하는 지상 낙원의 순간들.


“내 생일도 아닌데 웬 꽃?”

했더니 하마가 답했다.

“그냥~”

그냥 일리가 없다. 그날은 하마의 생일이었다.

“고마워서?”

주관식을 오엑스문제로 바꿨더니 바로 답 톡이 왔다.

“웅”

평소답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민망하여 빨리 피해 가고 싶은 눈치였다. 눈빛만으로도 목소리톤만으로도 눈 속 십 리까지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엄마니까.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어쩌면 나도 나이가 들어 정신이 오락가락하면 돌아가신 엄마를 찾을지도 모르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부모는 자식들의 머리에 흰 눈이 내려도 자식들의 베이스캠프가 아닐까라는 생각. 마지막 위안처가 부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들.


그리운 것은 죄다 멀리 있다. 그리워서 멀리 있는 것인지, 멀어서 그리운 것인지 가끔은 헷갈린다. 아름다운 그림을 떠올리며 너무나 사적인 글을 마무리한다


머리가 하얗게 쇤 구순을  한참 넘긴 외할머니가  칠십하고도 몇 년을 더 살고 계시는 엄마와 함께 나선 산책길의 풍경을 ….


아름답다…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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