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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순 Feb 03. 2022

9. 안녕하십니까?

           당신은 지금



"안녕하십니까? "


 이는 누구나가 아무런 의미 없이 툭툭 던지던 인사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온정과 따듯함과 관심, 위로 그리고 걱정이 함축되어 어우러진, '사랑'이라는 말이 품고 있을 다양한 함축적 의미로 '사랑'이 고결해지듯이, ‘안녕하십니까?’란 말이 오늘은 유독 건조한 대기를 적시는 단비처럼 반갑고도 살갑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 어제 긴긴 포스팅을 올렸다. 아니 그제인 듯하다. 요약하면 긴긴 세월 동안의 ‘병원 순례기’가 될 것이다. 그녀는 그 글을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걸었던 길이 혹시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아마도 내가 그녀를 몰랐다면 ‘저거 다 거짓말일 거야.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아프고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아니 통증이니 뭐 살아남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숱한 전쟁을 치렀으면 적어도 마음은 이미 잡초가 우거진 전쟁터의 폐허가 되어 있어야 맞잖아 "
 

난 그녀에게 말했다.
 "언니, 나였다면 아마도 죄 없는 주변 사람들에게 가시 박힌 말을 하고 히스테리를 부리고 스스로 자학하며 남은 삶을 내팽개쳤을 것 같아. 참 대단하다. 그러고도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고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그녀는 망설이는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나 그 글 다 쓰고 나서 많이 아팠어."
 
 그녀는 20대 후반인가 30대 초반부터 산후병을 앓기 시작하여 머리, 어깨,  팔, 다리 고관절에 이어 안구건조증까지 앓고 있으며, 이어지는 수차례의 수술을 하고도 여전히 고통과의 싸움 중이다. 오장 빼고 나머지는 차례대로 돌아가며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고 그녀는 남의 일처럼 이야기했다. 그녀가 족저근막염과 디스크로 고생할 때쯤 나를 만났다. 너무 힘들어 집에 일하는 사람을 일주일에 세 번씩 부르고 집안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닐 때 그녀가 내게 말했다.

"순이야, 난 몸만 건강하면 뭐든 할 것 같아. 마음은 몸의 지배를 받는 거야. 결국  몸이 먼저지"
 이때 나 역시 강한 공감을 했다
 "언니 맞아, 결국 영혼은 몸이라는 그릇에 담기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무것도 “     

그녀는 거의 머니의 힘으로 살아남았다. 농담처럼 그녀에게 말했다
 " 언니, 언니는 머니한테 매일 아침 절해야 해. 생명의 은인이잖아. "
 긍정 대신 그녀가 낮게 웃었다. 웃음 뒤에 이어지는 말.
 "그래서 난 늘 감사하며 살아. 적당한 고통은 다스려가면서"
 
 그랬던 그녀가 요즘 영어회화의 수렁에 빠졌다. 거짓말처럼 살아나서 사 개월간 유럽 여행을 다녀오더니 쿠바에 이어 돌아오는 봄에는 동남아 자유여행길에 오른단다.  

'풍성한 여행을 위해 자유로운 회화가 가능할 때까지'를 외치며 자신을 닦달하고 있다. 문득 사는 건 마음보다 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의 예찬론자가 되어서 언니는 돌아왔다. 이제부터의 삶은 감사와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젊었을 때는 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죽음이 목전에 보이지 않고 추상적이라는 이유로 죽음조차 깔보던 시기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오만도 그런 오만이 없다. 유행가 가사처럼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정신 승리하듯 그때는 그 말에 기대 스스로를 위로했고, 진리라고 믿고 싶었다. 이제는 그걸 뒤집으면 말이 될까? 억눌리고 비틀리고 평가절하 되어 있던 몸의 가치가 급상승 중이다. 몸의 재발견이다.
 

사실 요즘  몸의 일부도  불편하다. 밑창이 닳은 신발을 신고 나갔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조금 다쳤다. 생명에는 전혀 지장 없는, 하지만 일상생활에는  부담스러운 상태다. 신경 쓰여 죽겠다. 자업자득이라서 말하기도 부끄럽다. 건강을 자부하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점점 '건강' 삶의 화두가 되기 시작했다. 아프고 나서야 깨달아지는, 어쩔  없는 인간의 근시안적 이기심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진다.
 
 아프고 보니  아픈 사람들이 보인다. 본다는 것은 복합적이며 많은 의미를 담는 행위임을 어렴풋이 알게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주인이 투병 중이라 비어 있을 빈집에 들러 ‘다녀갑니다 짧은 글을 남겼다. 구구절절 길지도 않은 짧은 안부 글에 그분이 빨리 회복하시길 하는 마음을 담았다. 다정도 병인 시절이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만큼만 마음이 전달되기를.      


몸은 귀하다. 몸 없이는 우린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고, 눈에 담을 수도 없으며, 포동포동 살이 오른 아가의 볼 살도 만질 수 없고, 도움의 손길도 내밀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삶에 지친 누군가를 포근히 안아 줄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몸이 없다면 우린 온전히 살아갈  혹은 사랑할 방도가 없다. 사랑을 위하여!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18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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