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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순 Jan 29. 2022

8. 빨래 삶는 냄새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요즘 무슨 변덕인지 살림의 고수 흉내를 내고 있다. 소창이라는 것을 사서 손바느질로 행주를 만들었다. 그동안은 빨아 쓰는 일회용 행주를 썼었는데, 한두 번 쓰고 버리기 아까워서 몇 번 사용하다 보면 먼지가 묻어나서 신경이 쓰였다. 그에 비해 소창 행주는 먼지가 없어서 좋은데 자주 삶아줘야 하는 게 좀 번거롭다. 그 번거로움조차 생활의 멋이라 한껏 부풀리며 즐기고 있다.


큰맘 먹고 그동안 만들었던 행주를 모두 들통에 넣고 푹푹 삶았다. 어렸을 적 무던히도 맡았던 빨래 삶는 냄새, 비눗물 끓는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공기까지 삶아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냄새는 내 기억의 여기저기를 탐험하게 만들었고 고요히 잠들어 있는 엄마를 불러냈다. 세탁기가 없던 어린 시절, 엄마는 연탄불에 속이 깊은 냄비를 올려놓고 빨래를 삶았다. 주로 속옷과 수건, 누렇게 변한 아버지의 러닝셔츠였다. 빨래 삶다가 엄마는 나에게 빨랫물이 넘치는지 지켜보라고 하곤 했다. 비누거품이 넘치지 않도록 구멍을 낸 빨래들 안으로 사골국물 같은 뽀얀 비누거품이 온천수처럼 솟아올랐다. 그러다 가끔은 태워서 하얀 러닝 셔츠에 그을음이 묻은 동그란 구멍이 생기기도 했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빨래를 삶았기에 속옷은 늘 삶아 빨아 입는 건 줄 알았다. 삶아 빤 옷들은 높이 걸린 빨랫줄에서 눈이 부시게 흰 빛을 발산했다.       


행주가 삶아지는 동안 냄새를 타고 이리저리 시간 여행을 떠났다. 미이라처럼 납작하게 눌려있던 과거의 시간들이 나른한 오후의 공중으로 연기처럼 풀어져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늘거렸다.


기저귀 삶는 냄새도 딸려왔다. 그때는 소창으로 기저귀를 만들어서 썼다. 결혼 전날, 함진 아비가 어깨에 메고 왔던 소창을 적당히 끊어 삶아 엄마는 아기 기저귀를 만들었다. 아기 대소변을 받아 낸 기저귀는 얼룩이 남아 자주 삶아 줘야 했다. 육아 시절 떠올리면 젖병 삶던 일과 기저귀 삶아 널던 때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살림이 손에 익지 않아서 젖병 삶는 것과 기저귀 삶아 빠는 일이 가장 큰 일이었다. 탁탁 공중에 빨래를 털어 건조대에 나란히 널었다. 빨래 걸이에 널린 하얀 기저귀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얼마나 눈부시던지… 바람결에 날리던 기저귀를 보고 있으면 마음도 맑게 헹궈지곤 했다. 요즘은 다들 일회용 기저귀를 쓰니 옛이야기처럼 들리겠지.


지난 주말에는 하마네 집에 가서 행주를 샀다. 자주 삶아줘야 한다고 말해주면서도 영 미덥지가 않았다. 그랬더니 하마 왈!

‘세탁기에 뜨거운 물을 쓰면 되는 거지?’했다. 하마네 세탁기는 삶기 기능이 없으니 그러라고 했다. 세탁기가 다 그렇지. 물만 뜨거우면 삶아 빨기지 뭐, 별게 있을라구. 하마가 냄비에 행주를 삶아 쓰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요구 같아서 짧게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세탁기에 아무리 뜨거운 물을 쏟아부어도 들통에 넣고 푹푹 삶아 빠는 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걸….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마도 오래도록 내 말을 기억할지 모른다. 말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조용하고 그래서 조금은 외로운 것도 좋은 것 같다. 밖으로의 일상이 집 안으로 들어오고, 일상을 돌보는 아날로그적인 삶에서 마음의 안정과 고요를 찾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즐겁다가도 어느 순간 집으로 도망쳐 오고 싶던 순간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변덕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삶을 나눈다는 것! 그게 가능할까? 나란히 같이 각자의 짐을 오롯이 지고 가는 건 아닐까. 서로 외롭지 않을 만큼의 거리가 절실한 요즘이다.  


혼자여도 좋고, 둘이여도 좋고, 여럿이어도 좋다.


홀로 보내는 시간들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지난 주말에 혼자 운전하여 판교에 다녀왔다. 혼자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유의 맛은 달콤했다.

운전석에 앉는 내게 하마가 말했다.

“엄마! 혼자 괜찮겠어?”

웃으며 응했다.

“그럼 괜찮지. 오히려 편해. 널 태우면 사고 나면 둘이 다치지만 나 혼자 운전하면 나만 다치잖아.”

맞는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혼자 운전할 때의 장점이 바로 그거니까.


권태가 찾아오고 일상이 온통 슬픔과 분노로 얼룩이 지면 푹푹 빨래를 삶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같다. 물기 머금은 빨래가 물기를 버리고 하늘거리듯이 나날이 마음도 비우고, 물건도 비우고, 욕망도 비워서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비효율적이라 여기던 일들이 감정을 빨아버리기에는  없는 도구 인지도 모른다.  가끔 내 마음 속 시계는 거꾸로 간다.


(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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