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와 물_ 물로 세계사를 읽기
새롭고 다른 시각을 가진다는 것은 흥미로우면서도 참 어려운 일이다.
대학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하면서도 정치사 중심에서의 역사 서술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내게, 대안적인 역사 서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천하지는 못하던 내게, 그래서 키워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커리큘럼을 짜는 일은 머리가 쪼개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름방학이 지나면서 새롭게 만들어내야 할 커리큘럼의 주제는 SDGs 6번에 해당하는 '물'.
오, 이런. 물이라니. 물이라니. 물이라니??!!!!!!!
물이랑 역사를 또 어떻게 엮어서 15시간을 짜나???!!
하지만, 물이 문명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분명했다. 이걸 연구하지 않은 역사가는 없을 거라는 나의 실낱같은 희망과 ㅠㅠ 폭풍 같은 검색 속에!!! 다행스럽게도 내 눈앞에 단비같이 나타난 자료가 '물의 세계사(스티븐 솔로몬/ 주경철, 안민석 역. 민음사. 2013)'이다. 실제로 내가 고민하던 부분의 많은 내용을 참고하고 수업 자료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자료를 번역해 주신 두 분께 너무 감사하다.
인류 문명은 물과 떨어질 수 없다. 우리는 깨끗한 물을 필요로 한다. 물을 얼마나 잘 활용했는지에 따라서 도시와 문명의 쇠락이 결정되고, 산업의 발달이 결정된다. 흔히 교과서에서는 가볍게 한 문장으로만 다루고 넘어가는데, 실제로 4대 문명의 발달에서도 '물'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각 문명은 물을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치수 시설(아르키메데스의 나선 펌프, 방아 두레박 등)을 개발하고 적용해 도시민들 모두가 물을 잘 활용할 수 있게 노력했다. 그것이 권력자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했고. '우왕'이 유명한 이유도 '치수' 때문인 것처럼. 이후의 문명에서도 그래서 '치수'는 매우 중요했다. 중국은 대운하를 건설해 경제적 통합을 이끌어냈고, 로마는 공학적인 설계를 바탕으로 훌륭한 공공수도시스템을 마련했다. 영국은 19세기 끔찍한 콜레라와 대악취를 경험한 이후에 상하수도의 설계와 적용을 통해 '위생 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 심지어 '증기기관'은 물을 산업에 이용함으로써 새로운 인류문명의 도약을 만들어냈다.
이렇게나 물이 역사에서 중요한 국면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교과서의 역사 서술에만 매몰되어 있던 나의 안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서, 학생들과도 이런 다양한 국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4대 문명이 어떻게 물을 활용했는지 진짜 알아볼까?
로마가 공공수도시스템을 어떻게 그렇게 잘 만들 수 있었을까? 어디서 어떻게 물을 끌어와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한 거지? 물은 공평하게 배분되었을까?
위생 혁명이 뭐지? 영국에서 콜레라가 왜 그렇게 쉽게 퍼졌을까? 상하수도는 왜 중요하지?
이런 다양한 질문들을 토대로 책(물의 세계사)에서 발췌한 일부 자료들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모둠별로 다른 자료들을 읽고 정리해서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고 서로 설명하게 했는데, 아이들 눈빛이 세상 열정적이어서 감동 그 잡채. ㅠㅠ
하지만 이렇게 내용만 파고 끝날 수는 없지.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치수사업이 공공정책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면 이와 관련해 발생하는 논쟁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질 필요도 있겠다는 판단 하에 바로 이어서 토론도 진행했다.
실제로 로마에서 물 도둑이 있었다더라. 이 사람을 처벌해야 하는 걸까, 수도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걸까?
중국에서는 유가적 관점과 도가적 관점의 치수 사업이 있는데. 지금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물 정책을 시행하는 걸까? 어떤 관점이 더 중요할까?
정말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관개수로가 우선일까, 상하수도가 우선일까?
세 가지 토론 주제를 두고, 월드 카페처럼 진행을 했는데. 생각보다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정책적 관점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나쁘지 않았던 선택인 것 같다. 어떤 토론 주제에서는 정책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두고 격론이 오고 가기도 해서 보는 재미도 아주 쏠쏠!
아이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있다. 역사는 암기의 학문도 아니고, 절대적인 지식의 학문도 아니라고. 다양한 시선과 다양한 해석이 공존할 수 있는 해석의 학문이 역사라는 학문의 성격이라고. 오늘의 평가가 다르고, 내일의 평가가 다른 것이 역사이니 다양한 관점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자신만의 관점을 가져가자고 말이다.
아이들이 정치사 중심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역사의 국면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었다는 점이 나에겐 가장 발전적인 지점이었던 것으로 느껴진다. 나에게도 마찬가지고. 역사적 사고력을 어떻게 증진시킬 것인가. 어떻게 현재 사회를 바라보는 눈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인가는 참 어려운 과제다. 다만,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볼 때 그 맥락 속에서 그들의 결정을 이해하고, 역사적 사례들을 토대로 현재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갖출 수 있길 바란다. 다행히 15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제출한 에세이를 보니, 어느 정도의 목적을 달성은 한 것 같아 실험적인 나의 커리큘럼이 나쁘지 않았음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문제는 이제 막 시작한 새로운 주제. '스포츠'. 머리가 다시 아파온다. 이건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