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역사하기, 네 번째

손기정과 스포츠 민족주의를 말하다

by 은열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평소에 축구라고는 제대로 챙겨보지도 않던 나도 월드컵 기간이 되면 TV에서 나오는 축구 중계를 보면서, 짝꿍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곤 한다. 저 사람은 누군지, 왜 저런 룰이 있는 건지, 그래서 이 경기에서 누가 이기면 이후 리그에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는 건지. 심지어 우리나라가 나오는 경기를 보면 손에 땀을 쥐고 응원을 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가끔은, 이런 감정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이것은 공동체와 소속감을 갖고자 하는 인간 특유의 어떤 감정인 걸까 싶어서.


얼마 전에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를 읽으면서, 그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기도 했었다. 저자는 인간이 친화력을 증대시키면서 스스로 가축화를 진행했는데(요걸 자기 가축화 가설이라고 부르더라),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피엔스가 다른 인류종보다 집단을 지키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특히 친화력이 집단 내 타인(내가 모르지만, 같은 집단이라고 여겨지는 이들. 예컨대 동향인을 말할 수 있겠다)에게도 발휘되면서 이것이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한다고 했다. 멋졌다. 이런 감정을 이렇게 과학적으로 설명해 내다니. 아마도 메가스포츠대회들에서 내가 느끼는 어떤 감정이 이런 류의 것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 역사적으로 형성된 민족주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겠지. 역시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건, 스포츠 대회를 보면서 우리는 참으로 민족적인 주체가 되어 애국심이 들끓는 감정을 느낀다. 뇌과학적인 작용이건, 민족주의적 작용이건. 마침 월드컵이라는 시의성에 맞추어 우리 학교에서도 이번 모듈의 수업 주제를 '스포츠'로 정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스포츠 민족주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보기로 했다. 스포츠는 어떻게 민족주의와 결합을 하는 걸까, 시선을 좁혀서 식민지 조선으로 들어간다면, 스포츠는 조선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의 스포츠 스타, 민족주의의 열기를 들끓게 했던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 '손기정'을 꼽을 수 있다.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동아일보에서 일장기를 지워서 내보냈다더라, 손기정의 승리가 조선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더라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친구들에게 이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 더 자세하게 읽고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눌 시간을 마련해야지 싶었다. 마침 훌륭한 책도 찾았다. 천정환 선생님께서 쓰신 "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뽈을 차라"는 너무 좋은 자료여서 주말 내내 읽으면서 수업의 방향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너무 감사합니다!)


민족주의적 관점,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손기정의 승리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자본주의적으로 손기정의 승리 또는 스포츠 스타들은 어떻게 상징으로서 활용되었나.

언론에서 손기정의 승리를 다루는 과정에서 식민지 조선 속 언론은 어떻게 위상이 변화하였나. 일장기 말소사건이 언론의 위상 변화에 어떤 국면을 가져왔는가.


클래식한 직소의 모형을 사용해서 모둠원들이 각각 전문가 모둠에서 함께 책에서 관련 챕터를 읽고 또 자료를 웹에서 검색하고 내용을 정리한 후 원래 모둠으로 돌아와 모든 관점에서 손기정의 승리를 함께 보는 과정을 거쳤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고, 생각보다 시간이 훌훌 지나가 버려서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스크린샷 2022-12-01 오전 11.22.10.png 내용을 정리한 결과_ 완벽하진 않지만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한 명의 인물을 다각도로 바라보면서 역사적 국면을 바라보는 일은 재미있다. 단순히 인물사적 측면을 넘어서서 역사의 흐름을 읽고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역사라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가깝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립운동이나 일제강점기의 저항적 활동과 같은 내용은 거시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었는지 또는 우리의 삶에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파악하기가 너무 힘들다.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와 너무 먼 일, 그냥 옛날 일. 대단했구나. 에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인물사 탐구는 좋은 역사학습의 방식일 수 있겠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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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원페이퍼 과제를 통해서 내용을 정리하고 피드백을 해 주는데, 학생들이 스포츠와 민족주의의 관계에 대해 묻는 질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자 노력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연이은 다음 수업에서 손기정 기념관을 함께 다녀온 것도 좋은 선택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자, 이제 다음은 조금 더 다른 시각으로. 스포츠와 공동체를 엮어보기, 준비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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