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무서워하던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것
회사에서 맡은 업무가 참 고단했던 적이 있었다. 쌓여가는 연차에 비해 담당하는 업무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웠다. 일머리가 없었다고 하는 게 보다 적확하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갈피를 못 잡고 헤매던 어느 날, 출근 준비를 미루고 침대에 계속 엎드려 있던 적이 기억난다.
눈은 감고 있지만 자는 것도 자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육체와 정신이 회사 일에 매몰되어 있으나 답은 보이지 않았다. 가슴은 콩닥콩닥, 팔다리는 힘이 없었다. 아내가 옆에서 암만 격려를 해줘도 와닿지 않았다. 누워있는다고 긴장이 풀리는 게 아니었고, 회사를 가도 올타임 긴장 모드였다. 그저 퇴근하고 나면 잠시 마음이 괜찮아질 뿐이었다.
지금 짱구가 바로 그런 상태였다.
2. 유치원 앞에서 한참 동안 꼭 안아주기
짱구는 특히 유치원 문 앞에서 공포감이 극도에 달했다. 심리적 안정감이 필요해 보였다. 이미 등원시간은 지났고, 짱구와 나는 유치원 근처 화단에 한참 쪼그려 앉아있었다. 충분한 대화와 설득의 시간을 거쳐 이 정도면 순순히 들어가겠구나 하고 일어났지만, 짱구가 왕 하고 울어버린다.
그런 짱구를 시간의 구애 없이 또 한참 안아주었다. 육아휴직자에게 출근의 압박은 없지 않은가. 단지 나의 자유시간을 조금 내어주면 그뿐이었다. 아이가 힘들어할 때 원 없이 안아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가, 한국 돌아가면 또 일을 시작할 텐데 이렇게 해줄 수 있을까, 부질없는 생각들이 스쳤다.
생각해 보니 짱구가 미국 어린이집에 다닐 때에도 무척 힘들어하던 시기가 있었다(2년간 한국, 미국, 홍콩,, 짱구가 힘들만하다). 그때 어린이집에서 나이가 가장 많으신 Malta 선생님이 나오셔서 무릎을 꿇고 짱구를 안아주신 게 인상에 깊이 남았다.
'너 마음을 안다. 괜찮다. 마음껏 울어라' 라며 한참을 안고 계셨다. 이 정도면 오래 안아주셨는데, 읭 너무 오래 안아주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런 감정적 깊이를 가진 위로가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질 때까지.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뜨거운 무언가를 주고받은 후, 짱구는 조금 편안해진 얼굴로 유치원을 들어섰다. 그리고 다음날, 또 울면서 학교 아니야를 외쳤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3. 단호하게! 강하게! 세게! 얘기하기
바로 그 자리에서 더 크게 울면서 학교 아니야를 부르짖었다. 이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4. 학교는 너무너무 무서운 곳이라고 오버해서 말해주기
아내에게 간혹(사실은 다양하게, 자쥬) 사용하는 스킬 중 하나이다. 아내는 작고 반짝이며 비싼 걸 좋아한다. 아내와 결혼하고 신기한 것 하나는, 아내가 어떤 게 마음에 든다는 얘기를 하면, 적어도 일주일 내에 실물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어우 그런 걸 왜 사. 꼭 필요해? 하는 식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이런 대응이 그녀의 전투력을 급상승시킨다는 사실을 머지않아 깨달았다. 그래서 반대로 응 사봐 사봐 했더니, 이래도 되나? 하고 멈칫했다. 옛부터 누군가의 결혼을 반대하고 싶거든, 적극적으로 찬성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캐런 선생님 너무너무너무 무섭지”
“마르쿠스는 엄청엄청엄청 무섭지”
“학교 안에 몬스터 살고 있어서 진짜진짜 무섭지”
짱구에게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그 정도로 무서운 건 아닌데? 싶어서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짱구는 학교 안에 진짜 고스트가 있다면서 무섭다고 했다. 짱구가 아내보다 조금 더 영특해보였다. 이 방법도 아니었다.
5. 하원할 때 밝게 웃는 동영상 보여주기
유치원 아이들은 수업이 끝날 때 bye-bye 송을 부른다. 유치원 벽 사이로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는데, 단연 짱구의 목소리가 돋보였다. 하원하는 짱구의 모습은 등원할 때와 전혀 달랐다.
“짱구 오늘 어땠어. 무서웠어?”
“헤헤 안 무셔워써 키득키득”
어른들이 퇴근할 때 발걸음이 가벼운 것처럼, 짱구는 하원할 때 마음이 괜찮았다. 그 모습을 매일 동영상으로 담았다. 그리고 다음날 짱구가 힘들어할 때마다 이 동영상을 보여주며, 너 어제는 하나도 안 무서워하고 잘 지냈노라 말해주었다.
실제로 유치원 들어가면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는 걸 인지한 걸까. 하원할 때는 마음이 가뿐하다는 걸 알게 된 걸까. 동영상을 보는 시간이 하루하루 켜켜이 쌓이다 보니, 짱구도 조금씩 나아졌다. 이제는 유치원 문 앞에서 조금만 울먹거리게 되었다.
아내와 종종 얘기했다. 무서워하고 긴장하고 아파 하는 게 어쩜 우리랑 똑같냐고. 개쫄보인 나와 아내는 늘 회사 일에 마음 졸이고 힘들어했기에, 그럴 때마다 나는 얼굴이 노래지고 아내는 화장실로 직행이기에, 짱구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 DNA를 물려받았으니 당연하겠지 싶으면서도, 이 아이가 내 나이 되서까지 쫄보로 사는 건 끔찍했다. 그렇다고 나는 무서워하면서 아이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진짜 해결 방법은 부모인 내가 직접 보여줘야 하는 것이리라.
복직을 한 달여 앞두고 있다. 거진 2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일이 뭐였지 씹어먹는 건가? 다 까먹은 것만 같다. 다시 그 쫄림의 세상으로 가는 건가 싶지만, 이번엔 다른 마음가짐으로 그 세상을 마주해보려 한다. 같은 상황에 들어가 달라진 나를 발견하고 싶다. 그리고 거침없이 새로운 세상에도 들어가 보련다. 내가 오랫동안 간직했던 어떤 꿈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어서 그냥 흘려보냈다.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면, 짱구도 더 이상 줘쉐이를 무서워하지 않을 거란 믿음으로..
(인사팀에서 복직 날짜 알려달라고 연락왔는데 조금 쫄린 거 같.. 그냥 기분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