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구아빠 Feb 16. 2023

오빤 내가 딱이야

번역 : 그냥 받아드려어

난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 20대 후반 느지막이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지명 이름도 잘 몰랐고, 어디가 핫한 곳인지도 몰랐다. 옷은 최대한 안 사거나 묶음으로 된 것을 골라서 샀다. 나 스스로도 촌놈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서울에서 오래 살았고 해외에서도 몇 년 살았다. 이국적인 외모와 세련된 옷맵시로 도회적인 느낌이 물씬 났다(비행기 한번 태워 드리고). 핫플을 챙겨 다녔고, 운동도 여행도 열심이었다.


처음 아내를 알게 되었을 때, 이성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말 잘해야 한다 나 자신..). 언감생심. 나와 아예 결이 다른 사람이라 여겼고, 감히 남녀관계라는 공식에 대입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랬던 아내와 결혼을 했다. 오빠는 그때 결혼을 고민했니 안했니, 너는 그때 사랑이었니 아니었니 가지고 지금까지 옥신각신 하지만(사랑에 대해서는 따로 써 볼 계획이다), 어쨌든 나와 다르다고 여긴 사람과 살고 있다.


"오빤 내가 딱이야"


이런 얘기까지 듣고   몰랐다(아내는 나와 허접하고 쓸데없는 공통점을 발견할 때마다 웃으며 얘기했다). 으으 왠지 모른 반발심이 끓어올랐다. 네가 딱이라고? 네가?? 괜히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  짐짓 마뜩지 않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우린 다른데 무슨 소리냐는 것처럼.


실제로 아내의 인생을 들어보면 나와 많이 달랐다. 아내는 20 전까지 정말 공부만 했다. 나는 학원을 빼먹고 친구들과 축구 농구를 했다. 반면 아내는 20 이후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놀았다. 나는 20 이후부터 어설프게 공부만 했다.




굳이 비슷한 것들을 찾는다면,, 아내와 나는 각자 가족에게 심각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쓴다는 점이다. 나는 부모님께 하루  번은  전화나 영상통화를 드린다. 주위 동성 친구들과 비교하면 빈도수가 잦은 편이다.


아내는 장모님께 하루 6 정도 전화나 영상통화를 드린다. 휴직하고 나서야  사실을 알았다. 출근할 , 회사 도착해서, 점심 먹을 , 오후에  , 퇴근할 , 집에 도착해서, 그리고 자기 전에(7번이구나.. 그럼 전화 말고 카톡은 대체 얼마나 많이 하는걸까)


각자의 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무리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너무  좋았고, 연락이  되면 발을 동동 거렸다. 해외에서   있는 일이 많지 않으니, 도움도 안되는 전화만 수십  . 정작 우리가 그들의 진짜 걱정거리인  모르고.




아내와 나는 '체쓰' 점도 비슷하다. 체력쓰레기이고 다른 말로 저질체력이다. 아내는 조금만 긴장하면 바로 체하고 진이 빠진다. 목티를 입어도 체한다. 저녁에는 9 전에 잠이 들었다. 짱구는 자고 있는 엄마의 등을 타고 놀았다.


나도 체쓰로는 어디 꿀리지 않는다. 아버지가 운동선수 출신인 점이 무색하리만큼 잔병치레가 많다. 금방 두통이 오고 뒷목이 땡기며 눈이 침침하다. 아내 말로는 얼굴이 노랬다가 검했다가 한단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자마자 야심차게 인근 헬스장에서 PT 등록했는데, PT 첫날 15 만에 토했다. 트레이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Did you throw up?"

 동양인 남자는 대체  했다고 토한 거지? 트레이너는 서둘러 수업을 종료했다. 아내는 친절하게도  사실을 이웃들에게 전파하여  빼고 모두가 웃음꽃 피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린 약한 포인트가 비슷했다. 가족에게 약했고, 체력이 약했다. 서로의 약한 고리를 진심으로 이해했고, 그걸 보완해 줘서 고마웠다. 가족에게 아무리 많이 전화해도, 갑자기 피곤해서 쉬겠다고 해도 눈치 받지 않았다.


상황이 좋거나 여유가 있을 때는 누구와도 쉽게 맞출 수 있지만, 상황이 힘들거나 여유가 없으면 금세 바닥이 드러나버린다. 그럴 때 이해해 주고 도와주면, 고마운 감정의 차원이 달랐다.


오늘도  스케줄 없었는데 몸살기가  올라오더니 저녁이 되니 머리가 너무 무거웠. 간만에 수영장 25미터 레인을 왕복 2번씩이나 해서 그런가? 설거지, 아이 씻기기   일이 많은데, 이유 없이 몸이 처진다.


"후훗 체쓰의 삶이란,, 오빤 내가 딱이야!"


아내가 와서 설거지도 아이 씻기기도 대신해 준다. 고마움을 넘어 듬직하다. 덕분에  일찍 들어와 잠을 청한다. 오빤 내가 딱이라는 말이 여전히 탐탁지 않다. 다만 진짜로 네가 나에게 딱인건 아닐까 라는 불길한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이웃들과 배를 타러 갔는데, 거짓말처럼 우리만 배멀미 때문에 중간에 내렸다. 축 늘어뜨린 아내의 손목이 당시 우리의 상태를 보여준다. 체쓰의 삶이란.
매거진의 이전글 다 알고 결혼한 거 아니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