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을 다 마츄면 아빠가 돈을 줄때
지렁이같은 흰머리와 광활해지는 이마 그리고 보톡스로도 지워지지 않는 깊은 주름들까지..
이런 신체 변화를 감수하고 에너지와 시간을 갈아넣어 온전히 너와 놀아주고 있는데,, 유치원에서 '사랑' 하면 떠오르는 경험이라는게,, 숙제 끝나고 아빠가 돈을 줄 때라니?
(심지어 숙제 끝난다고 돈을 주지도 않는다. 거스름돈 수학 공부할때 남은 동전을 준 적이 있을 뿐)
‘아빠랑 종이비행기나 풍선 놀이할때’ 이런게 아니라서 조금 충격이고 허탈한데, 유치원 선생님이 짱구 아빠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고 할건 둘째치고, 아이가 느끼는 '받는 사랑'과 내가 느끼는 '주는 사랑'의 간극이 거의 요세미티 엘 캐피탄 급이다.
내가 그동안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을 주었던 것일까? 앞으로는 짱구가 바라는 방식대로(숙제 마칠때마다 돈을 주는) 사랑을 해야 할까? 아니면 짱구는..천재인가?
이 사유의 근원이 어디서부터일까 거슬러올라가보니, 짱구가 장난감 가게에서 뭘 사달라고 할때마다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빠 이거 갖고싶어, 사줘"
"너 돈 있어?"
"없어. 아빠 카드 있잖아"
"아빠 돈 없어. 하아아아아하아안 푼도 없어"
설령 아빠를 그지(거지)로 보더라도 어쩔수가 없다. 어차피 머리 굵어지면 아빠가 재테크 젬병인걸 알게될터, 요즘 그 나이에 유행하는 선행학습하듯 미리 알아도 달라질거 없지 않은가.
아무리 사달라고 조르더라도 (어떤 이유든) 거절하는게 낫다는 판단이었는데, 그것이 짱구에게 돈의 위대함, 자본주의의 힘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사랑의 정의,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이가 또 있다. 연애 초반, 시큰둥한 반응이 못내 서운하여 왜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냐고 묻자,
“오빠, 우리 나이에 연애한다고 심장이 뛰면 그건 병이야”
라고 대차게 내지르던 와이프.
나는 사랑을 “자기희생”이라 생각하고, 그녀는 사랑을 “함께하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기희생 없는 함께하기는 이기적이라 생각하고, 그녀는 자기희생만으로 관계가 오래 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사랑을 그나마 머리로 이해하는데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짱구의 탄생으로 인하여 생겨난 ‘육아’라는 것은 실로 “자기희생”과 “함께하기”의 최고봉으로 서로의 사랑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만들었으며, 육아 동지를 바라보는 “짠함”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랑을 탄생시켰다.
존경, 동경, 연민, 박애, 전우애, 열정, 희생 등 사랑의 형태는 실로 다양할 것이다(조금 기괴하지만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2017)’도 비슷한 맥락이니 추천). 고로, 서로가 기대하는 사랑이 다르다고 하여,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순 없겠다.
때로는 내가 기대하는 사랑의 모습과 달라서 아쉬울때도 있으나, 상대는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으며 때론 내가 기대하는대로 표현하고자 최대한 애쓰는 모습도 보이니, 서로의 영혼을 갉아먹는 방식이 아닌 한, 그 모든 행태를 사랑으로 인정하려 한다.
그리하여 심장 뛴다고 어린애 취급하던 그녀가 결혼 후에는 갈수록 껌딱지가 되어 일말의 자유시간을 용납하지 않더라도.. 그것 또한 사랑의.. 다른 형태라 여기며 감.. 사하게 살으리.. 랐다. 쿨럭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제 하면 돈 주는게 사랑이라고 하는건 (얼마면 돼, 얼마면 될까)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겠다 짱구야.
아마도 이 글이 2025년의 마무리 글이라 생각하며, 올해를 돌아봤을때 잘한 일 중 하나는 브런치에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것. 나의 집중력을 방해하는 수많은 정보와 SNS, 영상 속에서 그나마 양질의 완결성 있는 글들을 읽으며 울고 웃고 응원하는 과정이 뇌를 맑게 해주었다. 내년에도 여러 브런치 글로 더 정화되길 고대하며, 해피 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