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40

내게 맞는 일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게 아니다

결정과 축적의 문제

by 짱구아빠

10대에 아무 생각 없이 입시 준비를 하고, 20대에 잠깐 대학생활 즐기다가 또 공부를 하고, 30대에 직장을 구해 어버버 일을 하다가, 어느덧 40대가 되자 '이 길이 정말 맞나'라는 질문을 마주한다. 사실 진작 했어야 하는 물음이지만, 정해놓은 루트를 맹목적으로 따라가다가 이제야 맞닥뜨린다.


흰머리 좀 나고 아랫배도 들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고 ‘OO님, 참 동안이었는데..’ 라는 말을 부쩍 듣는 요즘(이거 생각보다 타격이 크다), 자연스럽게 나이듦에 대하여 생각한다. 과연 이 업을 평생 할 수 있나? 또는 빠르게 자리를 움직이는 주위 동기들을 보며, 한곳에 오래 머물러있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여러모로 타의에 의해 나의 현 지점을 점검하는 시기이다.


결론은 평생 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는 거였고, 그렇다면 지금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요며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솔직히 얘기하면, 결론은 이미 예전부터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무런 변화없이 관성적으로 살고있는 내 모습이 그닥 멋져 보이지 않아 우울했다. 아니 지금 상황이 불만이면 바꾸면 되잖아, 왜 생각만 하고 실행은 하지 않는데! 라고 하신다면, 여러 구차한 변명거리가 떠오른다.


실행도 실행이지만, 막상 뭘 하려는건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방송인 노홍철씨가 '여러부운, 하고시픈거, 하고시픙거어 하세여여어'라고 외치는데, 덕업일치여서 좋겠다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고 싶은거 하라는데, 모든 인간은 소명을 타고 태어났다는데, 그건 이제와서 어떻게 찾는거지.




사실 SNS에 보면 '내가 원하는 일 찾는 방법' '자기 소명을 찾는 방법' 등의 콘텐츠는 무수히 올라와있다. 잘하는 일 또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든지, 나 자신을 먼저 탐구하라든지, 이것저것 경험을 많이 해보라든지, 아니면 그런 고민 따위 하지 말고 일단 뭐라도 하라든지.


벤다이어그램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일본의 이키가이(IKIGAI)도 있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장수비결로 꼽히는 이키가이는, '삶의 가치' 정도로 불리는 일본 특유의 문화인데, 1) 잘하는일, 2) 좋아하는 일, 3)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 4) 보수를 받는 일로 나누고, 각각의 요소가 두개씩 교차하는 부분이 열정, 사명, 소명, 직업이며, 이것들의 교집합이 이키가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친절하고 구체적인 솔루션이 넘쳐나는데도, 계속 뭘 찾고있는걸 보면, 좀 편한 방법은 없을지, 빠른 루트는 없을지, 더 쉬운 꼼수를 찾고있는건지 모른다. 아니면 '자, 이게 바로 너가 원하는 소명이란다'라고 하늘에서 뚜욱 떨어질거라 기대하는 것인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자기가 결정하는 일이다'


라고 최진석 교수가 말했다. 자기에게 딱 맞는 일은 찾아지지 않고, 신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랬군, 애초에 찾을 수 없는 것을 찾는다고 시간 쓰는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 일이나 무턱대고 결정할 수 없는 노릇이니, 먼저 내가 '좋아할 만한 일'을 떠올려보았다.

- 공동생활보다는 혼자 사부작 하는게 편함
- 예상치 못한 멋진 문장을 보거나 인생의 진리같은걸 깨달으면 띵 하고 혼자 마구 충만해짐
- 머리가 비상하지 않아 깊게 파지는 못하지만, 얇게 아는바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건 가능함
- 새로운 것에 흥미를 가짐
- 타인에게 도움이 될때 보람을 느낌

이 정도 나열해보니, 결정할 만한 일이 몇 개 추려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나만의 공간이 있으며 글을 남길 수 있는 무언가. 그게 어떤 형태이든지. 설령 남들이 보기에는 재미없어 보이더라도(실제로 '너는 무슨 재미로 살아?' 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내게 의미가 있고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결정할 수 있겠다’.


분명 이 책에서 본 문구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최진석 교수의 강의나 영상에서 들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한번 더 읽었다.




결정했으면, 그 다음 단계는? 얼마전 흑백요리사 2에 나왔던 김희은 셰프가 했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좋아하는 일은 발견이 아니라 '축적'에 가까워요. 처음부터 심장이 뛰는 일은 드물어요. 생각보다 덜 싫다, 남들보다 덜 지친다. 이런 작은 신호들이 쌓여서 어느 순간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네 라고 될수도 있답니다"


'좋아할 만한 일'을 '좋아하는 일'로 바꾸는데 마법같은 요령이 있다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때부터는 훈련과 반복을 통하여 쌓고 또 쌓는 지난한 작업이 필요한거 같다. 마치 수능준비, 시험준비, 취업준비한다고 생각 없이 달렸던 그 시절처럼.


물론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무엇보다 체력이 예전같지 않다. 짱구와 와이프를 재운 11시부터 책을 펼치면, 그렇게 잠이 쏟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다 그랜튼이 ‘100세 인생’에서 얘기한 것처럼, 더이상 3단계의 삶(교육-일-은퇴 에서, 정년 은퇴하고도 30여년을 더 산다)이 아니라 다단계의 삶(몇년 배운걸로 몇년 벌어먹기 반복)이 필요하기 때문에, 40 맞춤형 축적은 계속해야 한다.




그리하여 적어도 올해는, 혼자 글 쓰고 남들과 나눌 수 있는 일을 ‘내게 맞는 일’로 결정하여 찬찬히 축적하려 한다. 그리고 바로 어제, 1개를 축적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았고, 거인의 발바닥에도 못닿을 완성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육아 동지의 전폭적인 응원과 약간의 눈치밥은 자연의 이치와도 같이 당연한 거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래도 생각보다 할만했고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으며 노잼 회사 일도 살짝 흥미가 붙었다.


당연히 중간에 멈출수도 있다. 브런치 글 쓰는 일도 꾸준히 쓰기 얼마나 어려운데. 하지만 몇년 쉬더라도 다시 돌아왔지 않은가. 어쨌든 놓지 않고 붙잡고 있는 나를 기특하게 여기자. 결정을 했으니, 이제는 축적의 시간이다.

다음에는 거인의 뒤꿈치 정도에는 다다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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