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러브 미‘ 늦은 감상평
고등학교 시절, KBS에서 겨울연가 라는 드라마를 했다. 동시간대에 ‘상도’와 ‘여인천하’를 했다. 빡빡머리 거친 남고생들 대부분 상도를 보았고, 방영하는 날에는 누군가 칠판 가운데 크게 적어놓았다.
그러면 내가 칠판 오른쪽 귀퉁이에 조그맣게 적어놓았다.
KBS 겨울연가
00시 00분 방영
그리고는 몇몇 에겐남끼리 구석에 모여서 겨울연가 얘기를 했다.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입시에 지쳐 로맨스에 목말라있는 나와 에겐남들에게 더할 나위 없었다.
드라마 '러브미'도 1화 예고편으로 보고 비슷한 느낌이 들어 꼭 보려고 체크해놓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트렁크’에서 서현진 배우를 왜 칭송하는지 알았고(오해영을 보지 못했다), ‘은중과 상연’을 인상깊게 보고 연출이 누군지 궁금했는데, 그 연출과 배우가 ‘러브미’를 만든다니. 나의 인생드라마였던 연애시대(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와 나의 아저씨(편안함에 이르렀나..)의 뒤를 이을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몰래 첫회부터 마지막회까지 보았고, 뒤늦게 넷플릭스 시청 내역을 확인한 와이프에게 걸려 1화부터 다시 정주행 중이다..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는 많다. 하지만 외로움은 사랑을 시작하기 전단계를 보여주는데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외로우니까 사랑을 찾고, 사랑을 찾으면 외로움은 사라진다. 드라마에는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성공했대요 까지만 나온다. 사랑을 찾았으니 외로움은 해결된걸까?
‘러브미’에서는 사랑을 하고 있든(남동생 준서), 하고 있지 않든(여주인공 준경) 외로움을 느낀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직업(의사)을 가져도 외롭다. 여느 드라마처럼 가족이 끈끈하게 위로가 되는것도 아니다. 사랑, 가족, 직업이 외로움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극중에서 사별한 아빠를 제외하고는, 대놓고 외롭다고 소리치던가(준서) 편의점 알바생도 알아차릴만큼 얼굴에 외롭다고 쓰고 다닌다(준경). 더구나 엄마를 잃은 상실감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흘러가는대로 산다. 다행히 남동생 준서는 오랜 여사친이 내민 손을 잡는다. 그러나 남동생보다 덜 적극적이던 준경은 외로움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와, 엄청난 스텝이다”
준경이 옆집 남자 집 앞에 찾아가는 장면에서, 같이 보던 와이프가 말했다. 준경은 외로움에 헤메일때 습관적으로 친구 집을 찾아가곤 했다. 이번에도 오래된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옆집 남자에게 벽을 치고 친구 집에 가려다가, 본인의 오래된 관성을 깨닫는다. 언제나 친구 집으로 도망쳤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을거라며.
그리곤 옆집 남자 앞에서 솔직하지 못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녀의 외로움을 진즉에 알아챘던 옆집 남자는 그 외로움을 메꿔준다. 그녀의 용기있는 다가감이, 나중에 그녀가 잘못을 저질렀을때 다가옴이 된다.
완벽한 나 라는 가면 뒤에 숨었던 지질한 나를 고백하는건, 수십년 몸에 각인된 DNA와 다른 행동을 하는 것. 엄청난 스텝이 맞다.
반면에 난 외로움을 느끼는 편이 아니다. 살면서 그런 감정을 느껴본적이 크게 없다. 그렇다고 틈 없이 누군가 곁에 있지도 않았다. 손에 꼽는 연애사에서 평균 200일을 넘지 못하였으니(늘 기가 막히게 200일이 되기 전 헤어졌다) 나머지 유구한 시간은 혼자였다. 그 시간에 운동하고 영화보고 명소를 돌아다녔다 혼자서.
스스로 괜찮다 그게 멋있는거다. 라고 생각했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약한 모습 보이지 않는게 성숙함의 척도라고 여겼다. 힘들때에도 혼자 삭이는 편이었다.
드라마 속 아빠는 늘 괜찮다고 한다. 평생을 그랬다. 하지만 7년의 간병기간동안 속이 문드러져 곪아있었다.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홀로 울고, 사람들과 같이 있는척 통화하고는 텅 빈 정류장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다.
인간은 나약한지라, 나혼자 감당하겠다는 허울도 어떻게든 벗겨지고 티가 난다. 정류장에 홀로 있는 모습을 들켜버리자, 괜찮은 줄만 알았던 상대방은 큰 상처를 받고 도망친다.
묘하게 내 모습이 비치는 거 같았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내가 이 드라마에 공감한 것은, 나도 사실 남들만큼 외로움을 느낀다는 반증이겠지. 외로움인줄 몰랐던 감정이 바로 외로움이었고, 성숙함을 빙자하여 외로움에 솔직해질 용기가 없었다.
결국 외로움은 디폴트값인가 보다. 혼자 잘있는 척 하는 사람도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러브미’에서 외로움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요령껏 잘 적응해가야 하는 대상이라 말하는듯 하다. 외로운 사람들이 그 외로움을 인정하고 서로 만나 잠시 잊는 찰나의 행복을 통해 외로움을 유예시킬 뿐이다(마지막회에서 외로움과 행복이 닮아있다고 한다).
아니면 외로움을 함께 나눌 존재가 있음을 인지하고 확신하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가질 수도 있을까. 준경에게 편의점 알바생이나 다니엘, 자영에게 호랑이 처제처럼, 피 한방울 섞이지 않고 연인이 아니라도. 다니엘은 독일로 돌아갔지만 왠지 예전의 독일생활처럼 외로워하진 않을거 같다.
어쩌면 외롭다고 소리치는 남동생 준서가 가장 건강할지 모른다. 외로움을 들키는 것에 서스름 없는 준서는 그 외로움 시그널을 포착한 여사친 혜온의 케어를 받는다. 혜온도 사랑을 쟁취했으니, 가장 나이 어리고 철없어 보이는 남녀가 가장 성숙한 방식으로 서로를 구원하였다.
더이상 괜찮은 척 하지 않고,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도 않아야겠다. 성숙한 처신이라 여기던 것이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주변을 힘들게 할 수 있으니, 솔직하게 들켜버리는게 나을 수 있다. 때론 나의 행복을 위해 이기적인 선택도 하고, 주변의 외로움을 덜어주는게 어렵지 않다면 기꺼이 하며, 필요할땐 관성을 거스르는 작은 한걸음을 내딛기까지. 그렇게 외로움을 당연한 삶의 일부라 여기고 말이다.
그렇다고 결혼해서 외롭다는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줘, 준서 같은 와이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