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어디쯤
어릴 때 학교에서 시험치는 날이면 늘 긴장했다.
고구려인 기상의 호방한 성격인 여동생은 '나 올백 맞고 올게!'라며 집을 나섰고, 초등학교 5학년때 정말 올백을 맞았다. 반면 예민한 성격의 나는 잠도 못자고, 소화가 안되서 밥도 잘 먹지 못했다.
그럴때마다 엄마가 해주신 말씀이 있다.
"꼴찌해도 돼"
물론 천하의 이OO 여사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건, 지금 알고 그때도 알았다(이OO 여사는 40대 접어든 자식들에게 아직도 기대를 갖는다). 그래도 말 자체가 주는 힘이 있어서, 그 순간에는 시험 못쳐도 된다고 안심했다. 그리고 실제 꼴찌를 하지는 않았다.
짱구는 유독 수학 학원에 갈때 긴장한다. "무서울 거 같아"를 계속 되뇌이며 손에 땀이 나고 갑자기 배아프고 어지럽다고 한다. 수업 중 발표와 틀렸을때 혼나는 느낌이 싫은 모양이다. 그러면 내가 들었던 말을 고스란히 전한다.
"짱구야, 꼴찌해도 돼"
"정말 꼴찌해도 돼?"
"그럼, 당연하지"
한달에 한번씩 치는 학원 시험에서 1개 더 맞고 1개 더 틀리는게, 그 녀석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물론 작은 일이 쌓여 큰 성취가 이루어진다고 볼수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건 좌절을 느끼지 않고 흥미를 잃지 않고 오래도록 할 마음을 지켜주는게 아닐까.
여느 업계나 마찬가지로, 내가 일하는 업계도 ‘정답’과 ‘성과’가 중요하다. 한정된 자리를 꿰차기 위하여 수많은 지원자를 걸러내고 걸러낸 사람들이 모인 집단. 그 속에서도 인정받기 위해서는 경쟁을 무서워하지 말고 남들보다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 뒤에서 묵묵히 한다고 알아서 끌어주는 사람은 없다. 승진을 하는 것도 동기간에, 비슷한 연배 간의 경쟁이다.
이제는 AI 와도 경쟁을 해야 한다.
잘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어떻게 저리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위 아래 모두에게 잘하는지 모르겠다. 스스로를 다그치면서 성장하는 캐릭터도 있다. 이들에게는 더 잘할 수 있다고 북돋아주는게 전투력 올리는 길이다.
'잘 할 수 있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자격은 이런 강인한 이들에게만 허용되어 있을지 모른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경쟁을 즐기거나 전투력이 상승되는 류가 아니고, 그냥 틀려도 괜찮다고 말하는게 편한 사람이다. 다만 후배가 틀리면 내가 곤혹스러워지도록 세팅된 조직과 환경이 미울 뿐이다. 내가 혼날거 같은 조급함 때문에 후배에게 건내는 소리가 차가울때 후회한다.
혼나면 안되나, 평판이 안좋아지면 큰일이라도 나는지, 사람 마음보다 중요한게 있을까,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과 그 무엇을 비교할 수 있을까?
결국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게 적을수록, 못해도 되는건 많아진다. 나같은 경우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만 중요하다. 그 외에는 중요하지 않다. 즉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면 중요하지 않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한, 시험 문제를 많이 틀리든, 좋은 학원에 떨어지든 '못해도 된다'.
하지만 간혹 못해도 된다고만 외치는건 누군가에게는 기운 빠지는 일이다. 잘하고 싶은 마음 한가득인데, 못해도 된다고 하는게 도움이 안될지도 모른다. 남에게 크게 관심 없을때 기계적으로 나오는 말일 수도, 장기적으로 보면 다그치는게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말이,
'잘하고 있어'
너를 밀어붙이지도 않을게. 그렇다고 마냥 괜찮다고만 하지도 않을께. 지금 몸으로든 머리로든 아등바등하는거 자체가 잘하고 있는거야. 라고 말하는게 ‘잘 할수 있어’와 ‘못해도 돼’ 사이 어디쯤일 거다.
아직은 짱구에게 '못해도 된다', '꼴찌해도 된다' 라고 말한다. 이 녀석이 좀 커서 맷집이 생기면 '잘하고 있어' 를 남발할 예정이고.
요즘 유독 이런저런 고민 많은 와이프, 원하는 바를 너무 늦지 않게 찾은듯 하여 느릿느릿 걸어가는 나, 그리고 각자의 고민과 불안을 꾸역꾸역 누르며 매일을 버티는 내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가끔 건네고픈 말이 바로 잘하고 있어.
아님 강력하게 다 합쳐보는건 어떨지.
잘 할 수 있어.
그리고 지금도 잘하고 있어.
설령 못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