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40

말해지지 않는 삶의 존엄

‘스토너’와 ‘기차의 꿈’

by 짱구아빠

어렸을 때 꿈이 대통령이었다. 초등학생 치고 지나치게 포부가 원대했는데,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이 대개 대통령이나 수상이 많았다.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인지 모르고, 그저 시간이 지나도 책으로 박제되어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게 대단해 보였다.


대학 초년생 시절, 나이 많은 형과 친해졌다. 성이 '고'씨라서 고형이라고 불렀다. 가난한 고시반에 불합리한 처우가 내려지면, 대학 건물 현관에 대자보를 붙이던 형이었다. 나랑 똑같이 쥐뿔 가진 건 없어 보이는데, 어디서 저런 기세가 나오는지 동경하는 마음에 우러러보았다. 그런 형이 결혼하고 자녀가 생기면서 모임에 잘 나오지 않고 소시민적 삶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형을 좋아했지만 사라져 버린 특별함이 조금 아쉬웠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얼마 전에 고등학교 친구를 십여년만에 만났다. 남들과 좀 다르게 러시아에서 한참 공부하고 들어와서 공무원을 하고 있었다. 자녀 나이도 또래여서 금세 말이 통하였다. '맨 마지막에 흑맥주를 먹을거니 처음에는 IPA로 시작하자'. 한 달 만에 나오는 저녁 약속이라며 친구는 식당의 모든 맥주를 마실 요량이었다. 만난 지 1시간 남짓 지났는데, 친구가 전화를 받더니 황급히 짐을 싸서 뛰쳐나갔다. 집에 파이프가 터져서 홍수가 났다는 전화였다. 친구는 연신 미안해했지만, 충분히 이해한다며 걱정 말라고 일렀다. 그럼그럼 당연히 튀어나가야지..




친구와 한참 얘기하던 얘기는 이런거였다. 내가 원하고 생각하는 삶의 방향과 조금 다른데, 맞벌이와 육아의 현실 때문에, 아니면 나태함 또는 관성 때문에 안주하는거 같다는 내용이었다. 현실을 이유로 변명하고 싶지만, 사실은 나의 나태함이 본질임을 부인할 수 없기에 살짝 분위기가 자조적이었다.


삐딱하게 보던 고형의 삶이, 어느덧 나와 친구의 삶이 되어있었다. 고형은 우리 모임에 나오는 대신, 또래 친구들과 만나 비슷한 고민을 공유했으리라. 인생은 다 다르지만 또 참 비슷하다 생각이 들어 위안이 되면서도 씁쓸했다.


씁쓸한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내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의미는 돈, 명예, 성공, 유명세 등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나의 경우는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다. 좀 더 들어가면, 그로 인한 유명세도 기대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에 비한다면 현재의 나는,, 짱구 아빠와 전직 S물산여신 남편이닷..!




스토너는 책으로 읽고, 기차의 꿈은 영화로 보았다.


스토너는 마지막 장을 덮고 인생 책이 될 거라 확신했다. 특히 여운이 길었던 캐서린과의 이별이나 한참 지나 캐서린이 출판한 책의 헌사에서 "W.S. 에게"를 발견했을 때, 그리고 생의 마지막이자 책의 마지막 장면은 수차례 읽었다.


사실 스토너는 미국 미주리 이름 없는 대학교의 유명하지 않는 교수였고, 동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거나 트러블로 인해 조교수 이상 되지 못했다. 사후에도 학계나 학생들에게 전혀 회자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내와도 딸과도, 처음의 강렬했던 감정과는 전혀 다르게 인생이 전개되어 말년에는 따로 살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너가 위대하다고 느껴지는 게 아이러니했다. 평범하더라도 치열하게 살다 간 삶은 실패한 게 아니라는 메시지라는 건 대충 알 거 같았다. 기차의 꿈을 보고 나서야 조금 더 뚜렷하게 다가왔다.




미국 서부 어딘가에서 나무를 베는 벌목꾼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기차가 새로 지나가는 철도 현장에서 일을 한다. 어릴 적 부모를 잃어 혼자였고, 허허벌판에 집을 짓고 가정을 이루지만 산불로 인하여 아내와 어린 딸을 잃는다.


다시 공터가 되어버린 그 자리에서 그레이니어는 몇 년 동안 폐인처럼 눈비를 맞으며 상실감을 버티다가, 다시 집을 짓고 마차를 운전하는 일을 한다. 길강아지들이 가족이 되었고, 간밤에 실제인지 환영인지 모르지만 잠깐 딸이 돌아온 것을 느끼고 약간의 위안을 갖는다.


나이가 들어 딱 한번 경비행기를 타보았고, 그가 사망한 일자는 아무도 몰랐다.




특별할 게 전혀 없는 삶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야기가 있었다. 설령 그 자신은 알아채지 못할지라도, 그걸 일일이 기억해 내거나 기록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우리 대부분 스토너나 그레이니어처럼 살아가고 그런 삶이 이야기로 인정될 거라 생각 못하는데, 이렇게 나열해 보니 그 무엇보다 근사한 소설이나 영화가 된다.

세간에서 얘기하는 영웅, 유명인, 성공한 자선가는 극, 극,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 대, 대다수는 주변 몇 명의 기억 속에 남을 뿐이다. 좀 더 많다고 하면 장례식 복도 한쪽에 근조화환이 가득 채워질 정도가 될테고, 그걸 보며 혹자는 '잘 살았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은 고개 돌리는 순간 휘발될 것이고, 정작 죽은 본인은 잘 살았다고 생각했을지 어떨지 알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스토너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꼈을 때, '넌 무엇을 기대했나'를 여러 번 읊조리면서, 아무 쓸모없다는 사실은 접어둔 채 그저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들어있는' 자신이 쓴 빨간색 표지의 책을 마지막으로 넘겨본다. 마치 책장이 살아 움직이듯 경쾌하게.


그레이니어는 말년에 일생 한번 경비행기를 탔는데,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해지자 지나간 삶을 잠깐 떠올리며 '모든 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미소를 머금는다. 떠오른 장면은 단 몇 컷. 아내와 딸과 함께했던 때, 화재로 모든 걸 잃은 상황에서 찾아온 친구와 길 강아지들, 현장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얘기하던 동료 몇 명의 얼굴, 하룻밤 딸이 돌아왔을 때, 그리고 거대한 나무.



배우 구교환은 한 시상식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모든 단편영화 감독들은 마지막 컷을 향해 달려간다고.


우리도 삶의 과정에서 수많은 변주를 거치겠지만, 결국 마지막 컷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생의 마지막에 나 스스로 위로와 위안이 될 장면 몇 개나 물건 하나 있으면, 적어도 담담하게 내 삶을 관조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록되지 않고, 말해지지 않는 삶이라도 이렇게 존엄할 수 있으니, 스러지지 않고 견디는 것 자체만으로 이 지구별에 잠시 스쳐가는 아름다움을 남기는 것일지 모르니까.


덕분에, 반드시 삶이 의미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으로부터도 조금 탈출한 느낌이다.

내 마지막 컷 중 하나. 내 사랑 알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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