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나 학교를 아시나요
짱구가 우리에게 왔을때, 감사한 마음을 어디든 표현하자고 아내와 얘기했다. 어디서 알았는지 아기를 가진 여성 청소년들을 돕는 수녀원 산하 대안학교를 찾아냈다. 성북구 지대가 높은 곳을 무작정 찾아가서 원장님을 만나뵙고 쥐뿔 안되는 후원을 했다. 조그만 메모지에 내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어놓고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 후 짱구가 태어나고 미국, 홍콩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아예 잊고 살다가, 가끔식 문자로 오는 소식에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여기 잘 있나? 잘 있구나. 조금씩 소식을 챙겨보기 시작했고, 후원미사 연락을 받고는 충동적으로 다시 찾아갔다.
의식한 건 아니지만 클레어 키건의 소설이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겠다. 물론 그 당시 아일랜드 수녀회처럼 이면이 있을거라 의심한건 전!혀! 아니었다(난 아직까지도 길에서 신부님이나 수녀님을 뵈면 저절로 고개를 숙여진다. 경외심 그리고 미사 안 나가는 날라리 신자라는 부끄러움 때문에). 단지 빌 펄롱만큼은 아니라도, 그들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인간 몸뚱이 하나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다.
토요일 오후 2시, 짱구 학원 라이드가 피크인 시간에, 아내는 흔쾌히 다녀오라 했다. 가는 길이 친절하진 않았다. 지하철을 몇번 갈아타고 안국역에서 택시로 갈아타는 계획이었는데, 토요일 오후 안국역이 내외국인으로 발디딜틈이 없다는걸 생각못했다. 택시만 10분 넘게 기다리며 주변 구경이나 하자 싶었다. 한복으로 이쁘게 차려입은 청춘들과 만면에 비치는 미소들, 소위 핫한 풍경을 오랜만에 보면서 '조흘 때다'라고 속으로 외쳤다.
한참을 기다려 택시를 타고 우리가 결혼했던 가회동 성당과 헌재, 감사원을 지나자 낯선 길로 이어졌다. 점점 인적도 차도 드문 길을 달렸다. 기사님은 두 번이나 길을 놓칠 만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주 잠깐, 괜히 안하던 짓을 하는건가 생각했다. 어렵사리 성북구 시내가 훤히 보이던 기억 속 그곳을 찾았다. 세찬 바람에 엎어져있던 ‘환영합니다’ 입구 간판을 제대로 세워놓고 지하 강당으로 들어갔다.
한창 원장 수녀님 말씀 중이었고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방금 전까지 안국역에서 붐비는 인파들을 보다가, 전혀 다른 조용하고 따듯한 세계에 들어온 듯 했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적당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중간에 쭈뼛쭈뼛 끼어앉았다.
새벽녘에도 학생들이 자기 아기를 스스로 챙긴다는 수녀님 말씀에 학생들이 기특하다 생각되었고,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실 때에는 그간 관심갖지 못한게 좀 찔렸다.
원장수녀님 말씀이 끝나고 곧 학생들의 축하공연 준비가 이어졌다. 난타를 준비했다고 했다. 오른쪽 앞에서 학생들이 걸어들어오는데, 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참 어렸다. 아니, 사실 생각해본 적도 없다. 생각해본적 없다가 이렇게 직접 마주하니 놀랐다. 아이가 아기를 키우고 있구나.
아이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더러 웃으며 북소리를 울렸다. 관객석에 있는 사람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웃는 아이들과 우는 어른들 사이에서 여러 감정이 들었지만, 마음 속에 피어오른 가장 큰 생각은 '대견하다'. 그리고 너희 용기에 비하면 우리 어른들은 그저 ‘부끄럽다'.
마지막에는 학생들과 그들을 도와주는 선생님, 담당자분, 수녀님의 합창이 있었다. 그나마 용기있고 선하다 할 수 있는 극소수의 어른들이 거기 있었다. 과연 본인들이 얼마나 기적같은 일을 행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고 계실까. 빚진 기분으로 노래를 감상하였다.
행사가 끝나고 단체사진을 찍으러 밖으러 나갔다.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나누는 통에 바로 나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수녀님들은 갓난 아기들을 얼굴에 부비대셨고, 어른들은 서로간의 안부를 물었다. 행사 중에는 주의깊게 보지 못했는데, 젊은 여자 어른과 의젓한 어린이 둘이서 온 케이스가 제법 있었다. 알고보니 홈커밍데이에 찾아온 졸업생들이었다. 어느새 졸업하고는 살아내기 결코 쉽지 않은 사회에 뛰어든 이들. 하지만 엄마와 아이가 서로 두손 꼭 잡고 있는 모습이 돌처럼 단단해보여서 감히 안심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역시 여러번의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야 했지만, 멀게 느껴지진 않았다. 집에서는 아내와 짱구가 바닥을 뒹굴며 놀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있고, 학생들에게는 수녀님과 도와주는 어른들, 졸업생들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라도 옆에 있으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나 역시 좋든 싫든 옆이 있던 누군가에 기대어 그 시기를 건너왔다. 일찍 어른이 되버린 아이들과 그 아가들아, 계속 지켜봐줄테니 너희도 무사히 그 시기를 건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