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불면증
27살과 55살, 우리의 불면의 온도
어른이 되면서 나는 맞서 싸우기보다 도망치는 데 익숙해졌다.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질 나이가 되자마자 찾아온 수많은 실수와 실패들은 내가 살면서 언제든지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교훈을 알려주고 홀연히 떠나갔다. 그럴 때면 나는 실패에 대비하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도, 도망치는 것은 비겁자의 길인 줄로만 알았던 어린 시절의 패기가 때때로 그리워졌다.
그러던 중 엄마에게 갱년기가 찾아오자 나는 어김없이 도망칠 준비를 했다. 엄마는 밤마다 덥다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거실에 나와 맨바닥에 드러눕기도 하고, 달밤에 베란다에 나가 미적지근한 여름 밤공기를 쐬기도 했다. 밤에 제대로 자질 못하니 낮에는 얼굴의 음영마다 피곤이 잔뜩 내려앉은 상태로 작은 일에도 심하게 짜증을 부렸다. 완벽한 악순환이었다. 아빠와 나는 하루 종일 엄마의 눈치를 봤다. 매일 슬금슬금 눈치만 보는 일상이 피곤해진 나는 집에서 아침 일찍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는 방식으로 엄마와 부딪히는 횟수를 줄였다.
그날 밤도 엄마는 깨어있었다. 자기소개서를 쓴다고 늦은 새벽까지 깨어있던 나는 엄마가 거실 바닥에 누워 TV를 켜고 끄기를 반복하며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들었다. 목이 타서 물을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불면의 밤을 보내며 신경이 한껏 날카로워진 엄마와 마주치면 괜한 시비가 붙을까봐 목마름을 참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 때, 엄마가 노크를 했다.
“안 자고 뭐 하니?”
“자기소개서 쓰지. 공채기간이잖아.”
“휴, 이렇게 잠 안 오는 건 너 그 때 시험 떨어진 이후로 처음이네."
좋지 않은 기억은 깊숙이 묻어놓기 어렵기 때문에 다시 꺼내어보기 쉽다. 시험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던 나는 결과 발표 이후 한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고 계속해서 자취방에 머물렀다. 그러던 중 엄마로부터 문자를 한 통 받았다.
<그까짓 시험 좀 떨어지면 엄마 딸 아니라고 집 못 들어오게 하니? 얼른 와라, 맛있는 거 해줄게.>
오랜만에 돌아간 본집은 낯설었다. 엄마는 갈비찜이며, 고기를 듬뿍 넣은 김치찌개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줬다. 하지만 밤이 되면 나는 올해도 간발의 차이로 떨어진 시험이 자꾸만 생각나 한동안 잠을 쉽사리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당시 잠을 청하지 못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다 덮고 누워있다 보면 방문 밖을 서성이던 엄마의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그 기척의 형태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억지로 잠을 청했었다.
"그 해에는 정말로 붙을 줄 알았는데 또 떨어지니까 엄마도 속 쓰려서 못 잤었지?"
"아냐, 물론 내심 기대는 했었지만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마음의 준비도 많이 했었어.“
“…….”
“나는 그 때, 네가 못 자길래 못 잤어."
엄마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 전까지 난 네가 못 자면 내가 뭔가 해줄 수 있을 줄 알았어. 갓난아기 때는 업어주지 않으면 도통 잠을 자지 않아서 매일 업어서 재웠고, 다섯 살 때는 하도 아파서 밤마다 열이 40도까지 끓어오르는 널 데리고 너희 아빠랑 새벽마다 응급실로 달려갔었거든. 그런데 그 때만큼은 네가 못 자는데 내가 해줄 게 없더라.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딸이 어른이 됐다는 걸 실감했어. 그 실패는 다른 누구도 아닌, 너의 일부가 되었으니까. 그 이후로 오랜만에 찾아온 불면이지만 딸 이만큼 키워놨으면 나도 갱년기쯤은 혼자 맞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엄마의 갱년기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고, 그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으려 했다. 그러나 엄마는 나보다 훨씬 먼저 어른이 되었음에도 오롯이 자기 몫으로 남겨진 싸움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내가 어른이 되기까지 겪었던 수없이 많은 진통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면서, 그녀는 진통을 밀어내는 대신 우리의 일부로 천천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27살과 55살, 같은 새벽공기를 들이마시던 우리의 불면의 온도는 그래서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