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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Jan 26. 2024

3화. 회한의 눈물

in Iceland


눈물의 종류


우리가 흘리는 눈물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될까?


고통의 눈물, 괴로움의 눈물, 외로움의 눈물, 그리움의 눈물, 기다림의 눈물, 애틋함의 눈물, 애타는 눈물, 애처로움의 눈물, 어이없음의 눈물, 빡침의 눈물, 억울함의 눈물, 분노의 눈물, 기쁨의 눈물, 다짐의 눈물, 승리의 눈물, 포기의 눈물, 참회의 눈물, 사랑의 눈물, 회한의 눈물……한마디로 엄청 많다는 말.


나에게는 아이슬란드 곳곳에 있는 수많은 비밀스러운 온천들이 회한의 눈물처럼 보였다.

그런데, 온천에 들어앉아 있으니, 회한의 눈물 중에서도 또 종류가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느 곳은 거칠게 흐르는 새하얀 눈물이었고, 어느 곳은 맑고 깨끗하게 쉼 없이 흐르는 정갈한 눈물이었고, 또 어느 곳은 부드럽지만 간간히 똑똑 떨어지며, 눈에 한 그득 맺혀 있는 그런 눈물이었다.


그녀's Pick & 눈물의 대서사  


그녀가 뽑은 아이슬란드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겸손한 인생 경력에 어울리지 않게) 온천이었다.


아이슬란드 온천으로 말할 것 같으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느라, 오장육부가 다 문드러져서 창자도 폐도 심장까지도 다 녹아내렸다.

그 시뻘건 것이 저 밑에서 출렁댄다.

아니 울렁댄다. 아니! 꿀렁댄다.

누가 건드리기만 해 봐라!

다 죄다 쏟아내어 녹여버리고 없애 버릴 테니!

내 새카맣게 탄 속을 보고 싶거든 건드려라!



헌데, 저 놈의 (대륙) 판이 와서 왼쪽 어깨를 툭 치고, 이놈의 판이 와서 오른쪽 어깨를 갈긴다.

파국이다!

참지 못하고 끓어올라 벌건 화를 토해내듯 뱉어낸다. 그러나, 인간이 그러하듯 자연에게도 망각이란 게 있나 보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 마음이 가라앉고 화가 잦아들자 이내 회한어린 눈물이 흐른다.

회한의 눈물로 이룬 것이 아이슬란드의 온천이다.


울분을 터트리고, 다시 불덩이가 되어 삼키고, 할퀴고, 엉망으로 만들었던 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아직은 괴롭던 그 감정이 다 식진 않았지만,

다만 아직은, 나 만큼이나 힘들었을 너의 뜨거운 가슴에 머리를 묻고 한 번쯤은 목놓아 울어 볼 만한 그 빌어먹을 용기가 없지마는...






그저 뜨거운 이 회한의 눈물이 나를 타고 흘러 너의 떨리는 차가운 몸을 둘러 감싸 안을 때 너는 알 것이다.


비로소 너는 그것이 나의 두려움과 고통과, 절망과, 후회와.. 그리고 사랑이었다는 것을, 너는 알게 될 것이다.



그윽하여, 신비로움마저 드는 따듯한 온천에 호젓이 앉아 산과 협곡과, 하늘과, 강을 보니 저절로 이것이 자연이 만들어낸 뜨거운 눈물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영웅의 등장은 없지만, 이것이야 말로 중세시대 아이슬란드식 구전 문학이라 불리는 사가( Saga) 스타일의 스토리텔링 아니겠는가!




이렇게 나로 말미암아 눈물의 대서사로 재탄생된 아이슬란드 온천이건데, 어찌 우리가 그 아픔의 눈물을 외면 한단 말인가.

그녀와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 뜨거운 눈물을 찾았다.

여행 중 무려 6 군데의 온천탕 순례를 했다.

하루가 끝나갈 무렵 우리의 몸을 노곤히 풀어주던 그 따뜻하고 포근한 눈물이 지금 이 겨울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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