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by The오늘

난 줄리아 로버츠를 좋아한다. 화면 속에 가득찬 그녀의 미소를 보면 나도 덩달아 같이 웃게 된다. 나이가 들어도 그녀의 얼굴에 변하지 않는건 그 눈부신 웃음일 것이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그녀의 영화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작스레 잠자리에 누워 있다가 삶에서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녀의 삶 속 모든 결정, 그 결정의 종착지인 현재에서 멀리 떠나기로 결정하고 예고도 없이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한다.


만약…. 만약에 말이다. 만약에…. 주인공이 치열한 삶에 지친 남편과 두돌이 안된 쌍둥이와 갓난 젖먹이까지 있었다면. 그랬다면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떠날 수 있었을까?


얼마전 셋째를 낳고, 퇴근하고 지쳐 돌아오자마자 울고 있는 갓난 셋째를 달래며 안고 있는 남편을 붙잡고 울었다.


온몸은 종이학을 접었다가 다시 펼쳐 놓은 것처럼 조각조각 너덜거리게 아프고, 당장 눈앞에 있는 세딸을 보자니 현타가 왔다. 현실의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도망이 아닌 현재의 삶에 더 깊숙이 내려오는 것 외에 없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내가 선택한 삶 속에서 도망칠 수 없기에 더 깊숙히 내려가야했고 그러기위해선 울어야 했다.


운다고 해결되는 건, 갓난아이 시절 뿐이다. 두돌도 안된 우리 쌍둥이도 운다고 다 해결 되진 않는다. (난 안되는 건 안된다는 엄마다. 정작 나도 그렇게 못하면서…) 다만 내 삶에 대한 강렬한 저항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내 눈물은 무엇을 위한 저항이었을까? 힘겨운 하루하루에 대한 저항이었을까? 잃어버린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을까? 지금도 그건 모르겠지만, 정확한 것 하나는 너무 힘들어서 였으며, 이 모든 선택은 결국 내가 내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매일 쌍둥이 둘과 세시간마다 한 번씩 젖을 물려야하눈 막내까지 셋을 먹이고 재우고 씨름하며 배우는 건, 인생은 영화같지 않다는 것이다. 기승전결이 있는 게 아니라 여전히 기기기기기기… 그리고 결. 마지막 결을 찍을때까지 나는 승전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매일을 기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이 아가들을 먹이고 기도하고 사랑하기로 결정한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기”의 최선이다. 그리고 안되면 남편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우는 것이다. 셋째를 낳은 짧지만 긴 스토리는 다음에 적기로하며 오늘도 먹이고 기도하고 사랑한 나를 칭찬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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