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아침에 눈을 뜨면 전쟁이 시작된다.
부리나케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신랑이 굳이 ‘열차’라고 부르는 전철에 몸을 싣는다. 하루 종일 업무에 종종걸음 치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이 좋은 날이면 그 전철 안에서 신랑을 만난다. 고작 도보 5분 거리를 우리는 손을 잡고 걷는다. 데이트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집에 돌아와 세 아이들과 티격태격 하루를 마무리하다 어느 순간 잠에 든다.
그렇게 한 주가 간다.
주말은 그나마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적어도 그래야 했다.
그 주말이었다. 종이 몇 장이 날아들었다. 세 아이들과 버텨온 시간을, 꼭 붙잡고 살아온 그 시간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종이 몇 장.
가족이라는 이름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억 소리 나는 카드 빚, 만져보지도 못한 수천만 원. 그것도 모자라 서로의 명의를 빌려주며 돈을 뜯어갔다. 그 수천만 원도 전부 은행 빚이었다. 그래도 그거라도 지키겠다고 소송을 냈다. 그들은 법정에서 서로 아니라며 잡아뗐고, 결국 법은 그들의 손을 들어줬다.
한참을 되뇌었다.
왜 이러는 걸까.
답할 대상도 없는 질문이었다.
일요일에도 법원 등기가 온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법원에 돈이 묶여 있으니 그 마저도 조금 더 빨리 가져가겠다고, 공탁금 해제 등기를 주일 저녁에까지 보내온 것이다.
행실이 악하다.
그 말이 입에서 먼저 튀어나왔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반응했다.
Memento mori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 옆에 요양병원이 있다.
그날도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뛰어놀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 너머로, 건물 문이 열리며 수송 침대 하나가 천천히 빠져나왔다. 침대 위로 노란 봉투가 단단히 씌워져 있었다. 그 안에 사람의 형상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저렇게 허무하게 가는구나.
아이들의 웃음 뒤로, 아무렇지 않게 지나는 사람들 사이로, 그냥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가게 앞을 지나—소리도 없이, 노란 봉투 하나 덮어쓰고 가는구나.
그렇게 지나가는 삶에서,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가는 걸까.
결국 누구나 죽는다. 돈이 많아도 적어도, 선해도 악해도, 그것과 상관없이 호흡은 멈추고 육체는 싸늘히 식어갈 것이다. 예외는 없다.
그 앞에서 수천만 원이 대수랴, 법원 등기가 대수랴 싶으면서도—그래도 억울한 건 억울하다. 솔직히.
그래도 바란다.
그 마지막 순간, 내 몸을 덮는 게 회한이 아니길. 5분짜리 데이트가 행복했던 기억, 세 아이들과 티격태격하던 저녁들, 그런 것들로 꽉 차 있길.
누구의 노래 제목처럼—Good Good-bye 이길.
신나는 작별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