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한 그루가 많은 이야기를 하는 이유
그림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나무를 한 그루 그리라길래, 나는 예쁘게, 열심히 그렸다.
결과는?
모든 것을 괜찮다고 말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지는 거기서 끝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표출할 것인가, 그 문제는 오롯이 나의 몫으로 남겨진 채.
결과지를 받아 들고 나는 속으로 되물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모든 것이 괜찮지 않을 때, 불평이 아닌 제대로 된 ‘말’로 그것을 꺼낼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나이가 들며 그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동시에, 마냥 감정을 눌러 내리기만 했던 지난 날의 나를 돌아보게 됐다.
형부의 매일같은 야근과 끊이지 않는 출장 속에 아이 둘을 혼자 키우던 언니는 밤낮없이 엄마 아빠를 불러들였고, 두 분은 온갖 트집을 잡다가 결국 나를 쫓아냈다. 그리고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던 대궐 같은 넓은 집으로 옮겨갔다.
나는 단돈 500만 원을 손에 쥐고, 봉천동 지하 셋방으로 쫓겨나듯 나왔다. 늦게 들어간 대학원 탓에 취업도 조금 늦었던 나는 엄마에게 애걸복걸했다. 1년만 기다려 달라고. 취업해서 돈 모아 나가겠다고. 그 날 야멸차게 끊어낸 엄마의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 날의 생채기는 여전히 남아, 눈을 감으면 지하 셋방의 퀴퀴한 냄새가 올라오는 듯하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내쳐지고 버려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나는 그 일들을 그냥 묻어두었다. 인정하는 순간, 내가 진짜 그런 사람이 될 것만 같아서.
그래서 내 나무는 흉도 없고 벌레도 없는, 그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나무를 정말 열심히, 예쁘게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