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과 회사를 다니면서 우리는 수많은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본다. 그때의 공부는 성적을 잘 받아서 세속적인 기준의 상위권에 있는 학교에 진학하거나 좀 더 좋고 큰 회사에 취업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공부를 해 왔다. 진도를 따라잡고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하여 주먹구구식으로 정보와 지식들을 읽고 외우는데 급급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잖아요'라고 했지만 그 시절에는 좋은 성적을 받아서 학교에서 경쟁하는 동료들을 석차로 나의 밑으로 만들어 버릴 때 가장 많은 도파민이 분출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과연 학창 시절동안에 내가 배운 것은 이치, 원리를 이해했던 내용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대부분의 우리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요령을 가르쳐서 공부기술자를 양성하는 학교와 거대 자본주의 교육시스템하에서 그런 기술과 요령만을 터득해 온 가엽고 불쌍한 청춘들이 아니었을까?
또 다른 아쉬운 대목은 학창 시절, 나의 미래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나의 꿈은 무엇이고 장차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 진심으로 대화를 나눈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고3 담임선생님은 모의고사점수나 내신성적표에 기반하여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전공을 반강제로 추천하여 주었고, 부모님도 생계가 바쁘니 아들의 진로에 대해서 코칭을 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오히려 대학을 합격하면 등록금과 하숙비를 어떻게 지원해줘야 하는지에 더 고민을 많이 하시는 듯했다. 그렇게 내 의지와 무관하게 선택한 길이 그냥 나의 인생이 돼버린 것이다. 그 시절의 선생님이나 부모님을 원망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중요한 결정을 그렇게 기계적으로 해버렸다는 상황이 너무 슬프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전공에 관계없이 중간에 인생진로를 틀어도 되었겠으나 그 정도의 용감함은 속세에 파 묻혀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나는 방송국의 PD나 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냥 평범한 대기업의 부장...)
그 당시에는 서울대를 얼마나 많이 보내느냐가 학교와 선생님의 중요역량으로 평가되던 시절이라 고등학교 학우들 중에는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을 반강제로 권유당하여 입학하였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재수/반수하여 인생괘도를 수정한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그 얼마나 아까운 젊은이의 시간과 비용의 매몰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적 풍습에 따라서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내심 학창 시절동안에 겪었던 도장 깨기 식의 공부가 이제는 좀 없어지겠지 생각을 하였으나, 웬걸, 기업이라는 곳이 총성 없는 전쟁터 아니던가? 내부경쟁에서 살아남아야 다른 경쟁기업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명분하에 실무교육, 기술교육, 재무교육, 마케팅교육 등등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온라인, 오프라인 교육과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시험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직속상사에게 송부되었고 인사평가, 진급, 연봉책정등에 영향을 미쳤다. 학창 시절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시험 스트레스는 지속되었다.
지금까지 생존하기 위하여 때로는 성장하기 위하여 공부를 해왔던 것과 다르게 조만간 은퇴를 앞두고 있는 50대 중반의 나이에 해야 하는 공부는 과연 어떠해야 할까? 무엇을 배우고 왜 배우고 무엇을 느끼고 얻어야 하나?
나의 전공이나 회사에서 배운 실무능력과 은퇴 후의 제2의 직업까지 잘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얼개는 맞추어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과 다르게 공부에 대해서 내 몸과 정신이 반응하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한번 봐서는 기억이 잘 안 나고 서너 번 이상 봐야 한다. 반면, 이전에는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공식에 대입하여 시험 보기에만 급급했다면, 이제는 경험치가 쌓이면서 왜 저런 공식이 나왔으며 그 공식을 왜 이 상황에 적용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기도 하고 관련된 서적이나 유튜브 등을 찾아보면서 개념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동안 회사에서 경험했던 사례와 비교하여 이론을 살펴보기도 한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야 학창 시절에 접했던 그 내용이 이해가 되면서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이 더러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공부하라는 소리도 안 하고, 아무도 내 성적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오직 100% 자발적 동기로 하다 보니 깊이가 더 해진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지식의 습득에 그치지 않고 지식을 습득을 통한 지혜의 발견이다.
지금은 어떤 목표점수 얻기 위하여 공부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내가 학습한 내용에 대해서 평가를 받아보고 싶어서 최근에 국가자격시험에 종종 도전장을 내밀곤 한다. 시험장에 가면 20, 30대 젊은이가 대부분인데 같은 공간에서 같이 시험을 본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이 순간이 매우 경이롭기까지 하다. 2~3시간 집중하여 꾸역꾸역 100문제를 다 풀고 저장/제출 버튼에 마우스를 클릭하고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모니터에 떠는 순간 그 성취감은 말할 수 없고 진정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 도전은 나의 체력과 정신이 건강하게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왜냐면 배움에는 끝이 없고 , 건강한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소중한 시간들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