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와 모욕을 알아채는 감각
오랫동안 모욕을 알아채는 감각이 부족했다. ADHD 특유의 허둥지둥한 성격 때문에 실수도 잦았고, 그 실수가 항상 최악의 타이밍에 사람들의 지적을 받곤 했다. 다른 사람들도 실수는 하는데 왜 유독 나만 이렇게 지적을 받는 걸까? 나는 상대를 봐주는데? 억울할 때가 많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점점 나 스스로를 ‘허둥지둥 어리바리, 당신보다 한참 낮은 단계의 사람’으로 포지셔닝하게 되었다. 즉 바보다. 한국이라는 환경 속에서, 회사라는 구조 속에서 특히나 ‘낮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체감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이 나보다 나아보이면 경계하고 깎아내린다.
그래서 상대방을 참고 견뎌주는 것이 미덕이라 여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상대는 나를 견뎌주지 않는 일이 잦았다. 나도 불편함이 있지만 참고 있는데, 왜 그들은 무례하게 지적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어느 정도 선을 넘는 말을 할 때조차, 무례한건지 아닌지 가늠이 안된다는 것이다.나는 그 모욕을 민감하게 느끼지 못한다는 거였다. 마치 내 감지 센서가 고장 났거나, 무슨 이유로든 역치가 높아진 것처럼, 나 자신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
변화는 약물 치료 이후 찾아왔다. 이제는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서, 나를 방어해야 할 신호를 좀 더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아, 이건 참으면 안 되겠다’거나, ‘이건 내가 좀 과했구나’ 같은 판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야 드디어. 나를 지키는 감각이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한 것 같다.
결국, 무례을 알아차리고 필요하면 말하고. 적절히 거리를 두는 건 나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방어막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은 내 실수를 그저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낮추며 상황을 견뎌왔지만, 이제는 내 잘못이 아닌 부분에서는 선을 긋고 나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아니면 적어도 웃어주진 않게 된 것이다. 억울함 속에서 무딘 감각으로 버티던 시기를 지나, 이제야 비로소 보통 사람들의 감각을 짐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