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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수 있는 용기

못해요. 라고 말할 수 있는가?

by 김낙낙

요즘 내가 느리다고 낙인 찍혔던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그게 그냥 피드백이면 좋겠는데, 그때는 진짜 사람 자체를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너 그래서 안 돼’, ‘너는 덜 된 사람’ 이런 느낌.

그래서 그 이후로는 어떻게든 빠르게, 어떻게든 완벽하게, 어떻게든 티 안 나게 굴었다.


새벽에 출근하고 집에서도 일하고

일하는 내내 집중해서 집에 오면 탈력감에 넉다운 됐다.


못한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고,

속도 늦는 것도 들키면 안 될 것 같고,

웃어 넘기고 최선을 다하면 언젠간 누가 좀 알아주겠지 싶었는데

아무도 모른다. 그냥 더 시킨다.


게다가 더 무서운 건, 다른 사람은 그걸 해낸다는 거다.

갑자기 지하로 꺼지는 느낌이 온다.

‘나는 왜 안 되지?’

‘진짜 내가 문제인가?’

‘이게 내 한계인가?’

이런 생각이 끝도 없이 돌아간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나랑 출발선이 달랐을 수도 있고,

이미 여러 번 해본 업무일 수도 있고,

그 사람 나름의 루틴과 컨텍스트가 있었을 거다.

나는 처음이고, 갑자기 투입됐고, 지금 일 많은 철이고, 정신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기준은 똑같이 요구된다. 그냥 해내야 한다. 빠르게. 말 없이. 실수 없이.


그러다 문득, 이건 시스템이 이상한 거 아닐까 싶었다.

내가 느린 게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숙련자 속도를 요구하는 구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였다.

그걸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게 이상한 거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무능하지 않다.

그냥 지금의 구조와 내 현재 위치가 안 맞는 거다.

그리고 말도 해보려고 한다.

아직은 어렵지만, 최소한 이 정도는 꺼낼 수 있겠다 싶다.


저는 아직 이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일정 조율이 가능할까요?


무능하단 말도 안 했고, 포기도 안 했고, 책임도 회피 안 했다.

이 한 문장으로 내 에너지가 덜 새어나간다.


예전엔 말 못 하고 속으로만 무너지며

끙끙 최선을 다했다.


용기를 내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젠 말하면서 나를 지켜보는 중이다.


그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IMG_0404.jpeg 매 순간 자기자신에 충실한 고양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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