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랑이 아니라 자기 자비인 이유
나에게는 스스로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자주 찍는 습관이 있다. 남들을 찍어주는 것도 좋아하지만 내가 찍히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남을 찍어주는 버릇이 없기 때문에(너무 당연함) 나를 내가 찍는 편이다. 모닝페이지를 쓰거나 집안일을 하는 모습, 운동을 하는 모습 등을 찍어서 남긴다. 그리고 인스타 스토리에 기록용으로 자주 올리는 편이다. 마치 내가 인플루언서인 것처럼.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다. 내 어려운 사정과 내 힘든 상황은 나만 안다. 그래서 좀 안쓰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내 매력과 재미와 포인트는 내가 알고 있다. 나는 피부가 좋고(이건 진짜임) 성격이 꽤 유머러스하며 낙천적인 편이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고 재미추구형 인간이라 에피소드도 많고 남의 이야기 듣기도 좋아한다. 그런 나의 매력 덕분에 나는 나를 꽤 좋아하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남들도 그렇게 말하고. 아 맞다, 나 스스로가 내 최고 팬이었다.
근데… 나를 좋아하긴 하는데… 싫어하는 것도 아주 큰 것이었다. 나를 향한 사랑인 줄 알았는데 사실 애증이었던 거지. 아니, 이게 무슨 막장드라마냐. 그래서 자아도취에 빠져 있어 보이고 스스로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은 나는 사실 스스로를 좋아하면서도 엄청나게 싫어하고 혐오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못난 점, 못한 거, 부끄러운 점 역시 나만 알고. 나의 게으름, 무기력, 외면과 비겁함, 무능함마저도 너무 스스로이기 때문에 속속들이 알고 있고. 그것을 속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사실 자아도취는 재수 없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재수 없어 보였던 나였다. 미안하다. 나놈아. 하지만 그것이 팩트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나를 좋아하는것만큼 나를 싫어하는것도 나구나. 스스로를 싫어하기도 하면서 썩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최근 심리학에서, 그리고 불교에서 왜 자기 사랑이라고 안 하고 자기 자비라고 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나를 그대로 사랑하기엔 못난 점도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런 자기까지 그렇구나. 하고 안아주고 미워하지 않는 게 포인트다. 중요한 것이다. 나를 좋아하긴 하되, 못난 부분까지 도닥일 수 있어야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아 몇십 년을 얘랑 살아왔는데. 쉽지 않은 상대다. 그치만 얘랑 몇십 년 더 살아야 한다. 헤어질 수도 없고. 그리고 짠하지 않은가. 살기 위해 이렇게 퍼덕거리며 살아간다는 걸. 그러니까 이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삶이란 녹록치 않아서. 세상이 나에게 뭐라고 하는 말을 그대로 내재화해서 나 역시 뭐라고 나에게 꾸짖는다. 일갈하며 너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뭐라고 하고 하나하나 미워한다. 그러다 보면 무기력해진다. 뭘 해도 미움받는데 힘을 내서 뭐해?
그러지 말자. 정말 그러지 말자. 내가 나인 것만으로. 우리 고양이는 나를 좋아해준다. 그냥 있는 그대로. 그렇게 체온을 나누고 만나면 반갑다고 이마를 부빈다. 그렇게 하자. 존재만으로 가치 있는 동물들처럼. 나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오구오구 해주자.
곧 내 생일이다. 아이고 나이를 먹네. 하고 생각하다가. 그래서 이 사람을 위해 무얼 해줄까… 무얼 해주면 기뻐할까. 하고 좀 더 건설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는 나와 함께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