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팀에 대해
“버티면 돼요”라는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던 이유
나의 버팀에 대해
요즘은 ‘버티는 법’보다 ‘언제 멈춰야 할지’를 고민하는 시대다.
“회사 안은 전쟁터지? 밖은 지옥이야.”
몇 년 전 드라마 미생 속 대사인데,
요즘 퇴사 관련 영상들의 댓글에서 자주 눈에 띈다.
사람들의 고민은 여전히 그 경계,
즉 버티느냐 떠나느냐의 갈림길에 머물러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2024년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신입사원 10명 중 6명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한다고 한다.
입사와 동시에 퇴사를 염두에 두는 것도 이제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퇴사’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수많은 브이로그와 후기가 쏟아진다.
어떤 사람은 “이제야 숨 쉬는 기분”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생각보다 더 막막했다”고 말한다.
퇴사는 이제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는 흐름에 가까워졌다.
그래서일까.
“버티면 돼요” 같은 말은
이제는 다소 낡고 무거운 문장처럼 들릴 때도 있다.
어떤 사람에겐 그 말이 위로가 아니라 죄책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유퀴즈에 출연한 강지영 아나운서의 이야기는
그런 단순한 인내의 강요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신입 시절, 첫 리포팅을 망치고 눈물 흘리던 자신에게
지금의 자신이 문자를 보낸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 “버티면 돼! 버텨! 그것밖엔 답이 없어.
버티면 분명 기회가 올 거야.”
그 말을 들은 유재석은 조용히 덧붙였다.
> “비바람이 몰아쳐도 갈 수밖에 없다.
사방에서 돌을 던져도, 맞고 가야 한다.
돌을 맞고 주저앉는 순간, 그게 끝이다.”
이 말들이 유난히 오래 남았던 건, 그저 막연한 정신론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의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지금의 내 상황과 겹쳐졌다.
요즘 나 역시 생각이 많다. 이게 정말 나에게 맞는 길일까. 지금 멈췄다면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을까. 그런 의문이 자주 고개를 든다.
그럼에도 쉽게 내려놓고 싶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자리는 아니었고, 나 역시 한때 이곳을 간절히 바라던 사람이었다.
지금 내가 버거워하는 오늘이, 누군가에겐 간절히 원하던 내일일지도 모른다. 그걸 생각하면 단순히 지쳤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던질 순 없다.
결국 중요한 건,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버티는 게 늘 정답은 아니다. 때론 건강을 해치고, 마음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포기가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감정이나 충동이 아닌, 조금 더 냉정하게,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음 걸음을 고민하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얻은 것도 분명 있었다. 오히려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쉬는 날에도 뭔가 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강박이었다.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달리려 하다 보니 정작 회복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달리기보다 머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스스로 허락하고, 게으름이 아닌 회복이라 여긴다. 그렇게 나에게 관대해지자 오히려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버티라’는 말이 무조건적으로 통하던 시대는 지나갔지만, 그 말이 단단하고 진심일 때, 어떤 순간엔 마음을 다시 다잡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강지영의 말은 버텨낸 사람의 회상이고, 유재석의 말은 옆에서 지켜본 사람의 공감이며, 나는 지금 그 과정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하나 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그렇게 묵묵히 걸어가던 길 위에 생각지도 못한 기회들이 하나씩 찾아오기도 했다.
어찌 보면 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자리에 내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운이 나에게 닿을 수 있었던 것이라는 점이다.
나처럼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미련해 보일 수도 있는 끈기와 꾸준함이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장점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조용히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