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

by 규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한때 그 문장은 나를 이끌었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되뇌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처럼 여겨졌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 문장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나답게 살고 싶다는 바람, 일상을 좋아하고 싶다는 소망, 그 모든 것이 그 짧은 문장 안에 담겨 있으니까.

하지만 살아보니, 그 말은 다정하지만 허술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해질까? 계속 좋아할 수 있을까?

언젠가 지쳐버린 내가 깨달은 건, 좋아한다는 감정은 생각보다 쉽게 흐릿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좋아서 시작했지만, 영원하진 않았다


예전에 정말 좋아했던 가수가 있었다

앨범이 나오면 밤을 새워 듣고,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던 노래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노래가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았다

한때 가사를 외울 만큼 좋아했던 곡이, 이제는 익숙한 배경음처럼 흘러갔다.

사람과의 관계도 비슷했다

처음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편했다

시간이 지나며 서로의 다름이 뚜렷해지고, 작은 오해들이 켜켜이 쌓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누구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매번 내 마음을 설명하고 해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쓴다

모든 관계가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인연은 자연스럽게 간격이 생기고,

조금씩 변해간다는 걸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도 그랬다

처음엔 정말 좋아서 시작했다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고, 밤을 새우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반복이 쌓이고 책임이 늘어났다

그렇게 그 일은 점점 '견디는 것'이 되어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좋아한다고 믿었던 일이 버거워졌고, 가끔은 피하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힘들지?’라는 질문을 수없이 되뇌며,

처음 느꼈던 열정이 서서히 희미해지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똑같이 유지되지 않는다

흐려지고,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

감정 하나에만 기대어 오래가기 어렵다는 걸, 나는 그 일을 계속하면서 배워야 했다.





열정은 무기가 아니라, 오래 타지 않는 연료였다


열정은 분명 있었다

불꽃처럼 나를 밀어붙였고, 방향 없이도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반복 앞에서 쉽게 식었고, 그 이후의 삶은 열정 없이도 계속되어야 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열정은 무기가 아니라 연료라는 걸.

자주 꺼지고, 다시 붙여야 하는 불안정한 감정.

나는 그 불안정함을 조금씩 다루는 법을 배워야 했다.



좋아하지 않아도 계속하는 이유


“우리가 돈을 받는 건, 그 일이 모두가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야.”

“일이 정말 재밌고 쉬운 거라면, 누가 굳이 돈을 주며 시키겠어?”

처음엔 냉소처럼 들렸지만, 점점 현실처럼 느껴졌다

물론 모두가 기피하는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에겐 꿈 같은 일이 누군가에겐 책임이고, 생계이고, 반복일 수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이상적이지 않더라도,

그 안에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버틸 이유는 충분하다

일을 통해 내가 소중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감각

그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조용한 선택일 수 있다

삶의 절반 이상을 우리는 실제로 '일'을 하며 보낸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보람과 기쁨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너무 많은 시간을 잃게 되는 셈이다

억지로 밀어붙이기보다는,

가끔은 멈춰 서서 ‘지금 이 방향이 맞는가’를 묻는 용기가 필요하다.



특별함보다 반복의 힘


이 글을 쓰게 된 건 이동진 영화 평론가님의 한 인터뷰 때문이었다.

그는 일과 삶의 균형, 반복의 가치를 담담하게 이야기했는데, 그중 몇 문장이 유독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워라밸이라는 말엔 일이 삶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요.

하지만 일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퇴근 후의 시간만으로는 삶 전체를 지탱할 수 없죠.”

그의 말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익숙한 표현에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일과 삶을 나누기보단, 일하는 시간 속에서도 삶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나는 그 말이 꽤 현실적이고도 따뜻하다고 느꼈다.

“행복은 습관입니다. 일을 할 때도, 쉴 때도, 매일의 작은 순간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사람—그런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말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무언가를 끝낸 후에야 비로소 찾아오는 안도나 성취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 과정에서도 기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가 남긴 또 다른 문장도 기억에 깊이 남았다.

“여행은 잠시 내가 누구였는지를 잊게 해주지만, 돌아오면 내가 누구인지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도 의미 있지만, 결국 중요한 건 돌아온 이후에도 나를 잃지 않는 힘이라는 걸 그 문장이 조용히 알려주었다.

예전엔 특별한 일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금세 사라졌고, 다시 돌아오는 건 언제나 같은 하루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문득 마주치는 평온한 순간들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지켜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출근길에 스며드는 햇살, 예상치 못한 위로, 가족들과의 통화, 지인들의 안부문자, 우연히 찾은 맛집 등

그런 작고 소소한 순간들이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요즘 나는 루틴의 힘을 믿는다.

거창한 버킷리스트보다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감각, 강렬한 감정보다 자주 찾아오는 잔잔한 기쁨이 훨씬 오래간다.

짧고 큰 행복보다 작고 자주 오는 기쁨이, 결국 나를 지탱해주는 진짜 힘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요즘 나는, 하루 대부분을 일에 쏟고 있다. 눈을 감고 있을 때를 빼면, 거의 모든 생각이 일로 채워져 있다.

예전엔 ‘일은 일’이라며 퇴근 후 취미나 자기계발에서 삶의 균형을 찾으려 했다.

주말 계획으로 평일을 견디고, 그 여운으로 다시 버텼다. 그 무게를 참아내고 나머지 시간에서 보상을 얻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일하는 과정 자체가 싫지 않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하기보다는, 내 쓸모를 증명하려 하기보다는,

조금 더 초연한 마음으로 나의 속도를 지키며 일하고 있다.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환경도 만족스럽고, 배울 것도 많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편안해서, 예전처럼 하루가 버겁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이 열정도, 물론 언젠가는 식겠지만 지금은 그 감정마저 소중하다.(모든 것이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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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문득 20대 초반, 신입사원이던 시절의 마음이 떠오른다.


그때처럼 지금도 다시 성실하게,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중이다.


이 일이 처음엔 그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좋아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잘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익숙해졌고, 익숙함은 성과를 낳았고, 성과는 나에게 잠시 자존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다 성장의 벽을 느꼈다. 빠른 승진에 스스로를 과신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실력이 아닌 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체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능력의 얕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 순간 겸손을 배웠고, 그럼에도 계속해봤다. 그러다 어느 날, 조용히 그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불꽃처럼 타오르진 않았지만, 오래가는 감정이었다.


지금 나는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완벽히 좋아하지 않아도, 아주 잘하지 않아도,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마주할 때


가끔은 모든 걸 내려놓고 멀리 떠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조금은 가벼워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결국 어디를 가든 나 자신을 데리고 가는 법이니까.

환경이 달라진다고

내 안의 혼란까지 사라지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도망치기보다,

버티기보다,

덜 지치게 천천히 걷는 쪽을 택했다.

잠깐 멈추고 숨을 고르면서.

그렇게 지금도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고 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그 사이에서 찾은 결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좋아하는 감정은 유한하다는 걸 알게 됐다.

반대로, 잘하는 일은 반복할수록 더 능숙해지고,

성과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애정이 생기기도 했다.

하나만 고르자면,

나는 잘하는 일이 더 오래 간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마음은 식을 수 있지만,

잘하는 일은 결국 좋아지기도 하니까.

그래도 나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하지 않으려 한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그 사이 어딘가에서 지치지 않고 오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

그게 나다운 삶이고,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현실적인 방향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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