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브젝티파이드'
'당신이 어느 한 제품을 바라보았을 때, 당신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몇 초 사이에 말이죠. 이것은 무엇이고, 기능은 무엇이고, 얼마나 할까?(하는 생각들을 하겠죠). 사람들의 구상과 사고, 발상으로부터 제작된 하나의 제품, 재료의 수집에서 응용까지 (...) 모든 제품들은 제작자를 대표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너무나 평범해서 '왜 그 모양으로 생겼는지'를 잊어버린 물건들과 디자이너들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에서 디자이너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그 물건들이 왜 그렇게 생겨야만 했는지, 무엇을 고려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제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겉보기에는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제품이라도, 그것의 디자인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와 토론을 통해서 결정된다. 때문에, '당연하게' 그런 모양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디자이너 사전에 존재할 수 없다. 자연의 모양을 보고 모방을 하든, 새로이 편의에 따라 구상을 하든, 제품의 디자인은 필요를 인식한 누군가의 노력 끝에 이뤄지는 과정이다. 물건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은, 그들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작업에 임한다. 물론, 소비자의 입장에서 그 디자인의 쓰임새 하나하나를 신경 쓰면서 살지는 않는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사물의 모양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사물 자체에 대해서 참 '신기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안경을 바꾸고나서 였다.
안경과 함께한 내 생활은 10년이 넘어간다. 몇 년 전에 실수로 안경다리를 부러뜨렸다가, 새로 안경을 맞춘 적이 있다. 그 당시에, 부서진 안경을 두고 한참 동안을 흐릿한 시야로 살다가, 안경을 새로 맞추고 나서 느꼈던 청량감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물건들처럼 안경의 디테일 하나하나를 신경 써서 본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제품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것은 안경이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바뀐 안경으로 세상을 보고 나니까, 별 것 아닌 사실 하나로 시각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경을 쓰고 보는 과정은 안경 개개의 성격에 따라서 달라진다. 사람들은 때로는 알에 색을 넣어 빛을 가리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의 목표에 더 집중하기 위해 높은 배율의 안경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각기 다른 성격들을 가지고 있다 해도 안경의 목적은 '보다 선명하게 보는 것'에 있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객관적으로 깨닫는 것은 한 걸음 뒤로 떨어져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 의도적으로 뒤로 빠져서 상황을 보는 것. 의도를 갖고 보기 위해서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 작품의 감독인 게리 허스트윗은 다큐멘터리 영상들 중에서 '디자인'을 주제로 하는 다큐멘터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 '서체 디자인', '제품 디자인', '도시 디자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3부작을 만든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어떤 제품의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다'라는 결론을 내려주는 영화가 아니고, 질문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 다소 심심할 수도 있다. 항상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 또한 그런 범주에 속하는 영화라 내겐 더없이 유익한 시간이었다. 다큐멘터리는 종종 감독의 의도에 맞춰 결론을 내리곤 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이 적었다. 이미 영화를 위한 소재를 선정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품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에 더불어서 제품의 수명과 관련된 문제 제기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물건을 사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항상 '튼튼하고, 오래가는' 물건만 생각을 해오다가, 그것이 현재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보는 것은 생소하지만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 나는 '환경 파괴'라고 생각하면, 당장 내 주변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것, 혹은 발생해도 사소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물건들이 '반영구적'인 내구성을 갖고 제작이 되어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디자이너들의 고민이 생생하게 와 닿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과거와 비교해서 현재의 제품 디자인은 그것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또한 고려해서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제품의 내구도와 제품의 수명을 고려해서 환경 파괴를 최소로 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 그것이 새로 디자이너들의 딜레마였다.
다큐멘터리에 남겨진 과제에는 무엇이 있을까. 감독이 어느 수준까지 의도를 두고 관객을 설득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있겠고, 재미와 공익성에 대한 문제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다큐멘터리가 '사실 기록'을 다루는 만큼, 수용하는 사람들이나 만드는 사람들이나 보다 신중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다큐멘터리는 기본적으로 제작자의 의도를 갖고 편집된 '사실 기록'인 만큼, 이 기록을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기 위해서는, 때론 거리를 둬야 할 필요가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오브젝티파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