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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Jun 21. 2016

이토록 유쾌한 괴물

영화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

 내 어린 시절 무한한 호기심의 대상은 신화와 전설의 존재들이었다. 미스터리한 동물들, 온통 비밀 속에 휩싸인 그 존재들을 열렬히 애호했다. 흡혈귀, 늑대인간, 츄파카브라, 도깨비, 네시, 예티, 좀비 등등 지금은 많이 잊었지만 한때는 그 이름들을 아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관심이 덜한 편이다. 어쩌면 이는 내가 수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재활용된 그들의 모습에 질려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정돈되지 않은 날 것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그들은 이제 냉동식품처럼 사용되곤 한다. 날 것이었던 캐릭터들은 언제든지 이야기가 막힐 때에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의 것으로 변모했다. '신비함'이 무기였던 그들은 게임, 영화, 소설 등으로 활용되면서 그들의 무기를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금방 그 미지의 존재들에 익숙해졌고 적응했다. 주인공과 대적하기에 인지도가 있으면서 수 세기 간 공포의 상징으로 일해왔던 존재들이기 때문에 되풀이되고 또 재활용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식상해졌다. 그런 문제로 캐릭터의 차별화를 위해서 작가들은 점점 설정을 더했다. 이런 현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캐릭터가 바로 뱀파이어다. 거대한 팬덤을 양산한 '트와일라잇'시리즈를 비롯해서, '언더월드' 등 다양한 영화와 게임에서 뱀파이어는 새롭게 추가된 설정들을 통해서 쿨하고 멋있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인간의 입장에서 공포의 대상이던 그 미지의 생물은 현재 죽지 않고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로 표현된다. 덤으로 아름다운 외면 또한 추가된다. 흡혈귀라는 존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생존이나 흡혈의 문제는 비중이 줄어들었고, 사람과 어울리며 겪는 문제들을 부각한 작품들이 많아졌다. 사람들과 대립하던 존재였던 그들은 이제는 어울리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으로 더 자주 그려진다.


 이 영화 속의 뱀파이어들 또한 마찬가지다. 수 세기 전에 뱀파이어가 된 이들은 사람들 속에 숨어 사는 법을 터득했고, 조용한 생활을 영유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다큐멘터리'라는 제목처럼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는 시종일관 흡혈귀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때문에 이 이야기는 흔한 뱀파이어 이야기지만 다른 영화나 게임에서 그들이 등장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본 이들의 삶은 이상하고 어색하다기보다는 한 편의 재밌는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한 저택 안에서 동거하고 있는 네 명의 뱀파이어. 각기 다른 시대에 뱀파이어가 된 이후로 긴 세월을 살아온 이들의 생각과 성격은 그들이 뱀파이어가 된 시대의 것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는 어쩌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되, 인간들과 섞일 수 없다는 딜레마에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었을까.


 물론, 단순하게 그냥 뱀파이어에 대한 이야기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먹이, 혹은 하수인, 또는 사냥꾼의 역할을 하는 인간들에 대한 인터뷰도 있었다. 과거 수탈의 주체였던 뱀파이어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이 행동하지 못한다. 적어도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바라 본 현대의 뱀파이어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우월함을 그들의 무기로 갖지 못한다. 그들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오히려 뱀파이어의 불로불사의 능력을 두고 그들과 거래를 맺어 행동한다. 낮에 돌아다니지 못하는 뱀파이어는 낮에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인간에게 의존하게 된다. 피에 젖은 옷들을 세탁소에 맡기는 일이나, 희생자를 물색해 데려오는 일들이 그렇다. 현대 사회에서 대놓고 사람을 길거리에서 포착해서 흡혈의 행위를 하는 것은 뱀파이어의 입장에서 훨씬 위험한 일이다. 오히려 인간들에게 사냥당해 죽기 딱 좋은 행위이다. 영화에서 '사역마'처럼 등장했던 인간들이 잡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뱀파이어와의 밀당이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은 그 부분 덕분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보고 나서, 현실적으로 저들과 살게 될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을 할 당시에는 그런 것들이 실제로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호기심에 이들과 공존하게 될 삶의 모습이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까 언젠가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인간의 틀이 보다 다양한 형태의 변화를 통해서 그 외연을 넓히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인간의 범주는 우리와 어느 정도 유사함을 가진 존재들까지 포함하는 것일까. 인간을 묘사하는 작품들은 날이 갈수록 그들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고, 비인간을 묘사하는 작품들은 날이 갈수록 그들의 인간성을 강조하고 있다. 더 이상 인간이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재미가 없고 식상하다고 여긴 것일까? 이 다큐멘터리는 한참을 웃으며 보다가도, 인간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만든다. 나는 사람들이 괴물이라 규정했던 수많은 존재들은 인간의 공포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모르는 것에서 기인한 공포, 관습에 따라 불길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응축되어 상상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 흡혈귀와 여타 다른 미지의 존재들이 아닐까.


 인간은 항상 미지의 공포를 해석하려 노력해왔다. 한때, 신의 분노라 여겨졌던 자연현상들은 관측과 실험을 통해 해석 가능한 일들이 되었다. 그런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래도 민담과 설화, 전설과 신화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이토록 매력적이다. 어떤 형태로 감상하든, 그 결과와(더불어 화면에 낭자한 피와) 상관없이 이 영화는 유쾌하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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