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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May 12. 2016

'우리'의 삶

EBS 다큐프라임 '우리 WE'

 어렸을 때에는 '우리'라는 말이 굉장히 포용적인 단어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묶어주는 그 말의 어감이 참 좋았다. 집단 속에서도 사기를 고양시키기 위해서 '우리 000'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대학부터 군대, 동아리,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집단에서는 항상 그 표현을 강조했었다. 사람들은 '우리'라는 말속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그것에 안도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그 말의 범주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외려 사람들은 누군가와 본인이 속한 집단을 구분 짓고자 할 때에 더 많이 '우리'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나'에서 '우리'로 변화한 집단. 집단의 심리는 어떤 부분에서 개인의 것과 다르고, 집단의 속성은 무엇인가. 여기서는 먼저 '담배 이야기'로 집단에 대한 이야기를 연다.

 군인들이 시가가 아닌, 개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던 것은 전쟁터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였다.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도, 군인이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개비 담배를 애용했다. 당시 담배회사 아메리칸 토바코의 회장인 힐은 '담배가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다'는 홍보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여성 흡연자에게 어필했고, 담배 매출은 상승한다. 이 상승폭에 만족하지 않았던 힐은 에드워드 버네이즈라는 사람에게 홍보 일을 맡긴다. 독특하게도 버네이즈는 '남성들에게는 타당하지만, 여성들에게는 부당한 일이라 여겨지는 행동들'에 대해서 연구했고 그 연구를 바탕으로 하나의 퍼포먼스를 기획한다. 그는 1929년 뉴욕에서 열리는 부활절 퍼레이드에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을 내보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담배는 그렇게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여성 해방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이미지를 어떻게 느끼는가?

 '우리 WE'라는 프로젝트에서 1,2부와 3,4,5부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 3,4,5부에서는 막연한 의미의 '집단'이 아닌 나를 포함하는 내 주변의 사람들, '한국'이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하고 있는 직장 속에 속해있는 '나', 태어난 고향 속에 있는 '나'에 대해서 집중한다. 한국의 직장 문화는 어떠한가, 한국에서 지역감정은 어떤 형태로 표현되고 있는가, 한국 군대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어떻게 문제를 만들었는가 하는 이야기들이다. 사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요약하거나 줄이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직접 보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의 기술적인 측면보다, 이러한 소재를 시도했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과연 우리가 이 영상에 나오는 내용들에 대해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나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도, 이 이야기가 이제야 이런 형태로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게 느껴졌다. 이 영상에 등장하는 문제들은 적어도 이 나라에서 직장을 갖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다. 지연, 혈연, 학연으로 얽히는 조직 문화들은 결국에 우리가 이 공간에 발붙이고 사는 한 언젠가 경험하게 될 일이다.

 군대에 있을 때에는 영상에 등장했던 각종 집단 문화들이(집단의 폐단이) '군대'라는 공간 안에서 한정된다고 생각을 했다. 부조리한 일들이 발생하면 으레 '이곳은(그곳은) 군대니까'하는 말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길어봤자 2년. 남들 다하는 것만큼의 생활만 하고 나오면 기억 속에서 잊힐 곳이었다. 때문에 불합리하다 생각하는 일들이 있어도, 그것을 말하거나 할 이유가 없었다. 그곳에서 '현상 유지'는 최선의 미덕이었으니까. 그 공간에서는 가해자든 피해자든,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 자체를 싫어했다. 군대를 겪어보니 왜 군대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그곳에서는 발생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웃기진 않느냐고, 이게 말이 되는 상황들이냐고. 군대는 특수한 집단이다. 그렇지만, 그 집단에서 내가 경험했던 '집단'이라는 이름의 문화는 울타리 바깥의 다른 집단들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태껏 해왔던 군대 이야기가 유머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집단의 역동성

 집단의 힘. 사람들은 군중에 휩쓸린 채 판결을 내리기도 하지만, 집단지성을 통해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물론 집단의 가능성을 예측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모여 집단을 만들기에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 하나, 어떤 상황이든 집단의 입맛에 맞춰 개인을 바꾸는 형태의 집단은 올바르지 않다. 이제는 집단이 개인을 어떤 형태로 변화시키는 가에 대해 생각해봐야만 한다. '조직이 원하는 인재'라는 틀을 통해 집단이 개인의 개성을 억압하고 일률적인 개인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집단 속에서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에 가해지는 일을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해왔던 행동들에 대해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집단'임을 내세워 개인에게 부조리한 일들을 강요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나 되돌아봐야 한다.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아주 작은 집단이더라도, 그 집단을 이루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다. 집단의 논리에 함몰되어, 내부고발자들을 조직문화를 저해하는 이들이라는 형태로 몰아세우는 행동은 정당하지 않다.

 영상에서 광고를 기획하는 모습을 잠깐 보여준 적이 있다. 광고 제작자들은 사람들이 의도된 광고들에 거부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보다 세밀하게 생활과 습관 속으로 파고들게끔 광고를 제작한다. 잘 팔리게 하는 광고들은 사람들이 쓰게끔 만드는 생활 습관들과 연결된다. 만약에 이것이 단순히 상품 판매 전략이 아니라, 집단의 잘못을 덮기 위해 어젠다를 바꾸는 형태로 간다면 그 소식을 보고 듣는 사람들은 그것을 자각할 수 있을까. 가령, 뉴스에 내부고발자가 등장해서 조직의 비리가 폭로되고 나서, 다른 뉴스들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한 행동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한다면 막대한 정보 속에서 어떤 정보를 골라서 듣고 판단할까. 조직의 비리가 한 사람의 가십에 파묻히지는 않을까? 물론 이 생각 또한 다분히 의도적이고 시청자들이 거부반응을 보일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이 또한 다분히 의도적이고 생각할 수 있는 범주 안에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세밀하게 무의식을 파고드는 형태의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다.

영화 '스틸라이프'

 영화 스틸라이프에서 '존 메이'는 무연고 사망자들의 시신 처리를 담당하는 공무원이었다. 그는 무연고 사망자들의 마지막을 함께하지만, 본인이 마지막을 지키는 사람들처럼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지는 못했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정말로 '사는 게 뭘까?'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 삶이라지만, 오로지 홀로 사는 것이 삶은 아니지 않나. 무인도에 갇힌 사람들이 저마다의 '윌슨'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공생한다. 5부까지 집단에 대해 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6부에서 응축되면서 하나의 물음으로 나아간다. 집단의 생리에 대해 아는 것 이외에, '우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질문을 이 나라에 던진다. 5부까지 보면서 뭘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만 무성했는데, 여기서 '이렇게도 삽니다'하는 이야기를 보다 보니 좋았다. 공동체에 대한 예시를 보여주는 것은 이들이 유일한 대안이라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라는 경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규정짓고,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구분 지어 배척하는 삶이 아닌, 집단의 연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집단에 대한 고민과 시도가 필수적이다.

 우리가 삶에서 밀어내는 것은 많은 것들이 있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가 아니라, 무연고 사망자 시신 처리'라는 말로 정리되는 삶은 우리가 밀어내던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 속하지 못한 채로 번호 '0000번'으로 처리되는 삶은 그동안 수없이 써왔던 '우리'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무엇이 '우리'편을 가를 수 있는지를. 우리는 누구인지, 우리의 삶은 무엇인지를.


사진 출처: EBS 다큐프라임, 다음 영화 '스틸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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