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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Apr 15. 2016

'꼰대'와 '꼰대'사이

EBS 다큐프라임 '우리집 꼰대'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부쩍 말씀이 많아지셨다. 당장에 내가 대학에 갈 때만 해도, 아버지와 나는 하루에 한 마디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원래 아들-아버지 간의 관계가 이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나는 아버지와 살갑게 대화하는 순간이 없었다. 저녁 먹기 전에, 집에 오시면 '다녀오셨어요'하는 인사만 꼬박꼬박 하고 그 흔한 용돈 달라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가끔 아버지는 용돈이 부족하다 싶으면 말하라 하셨지만, 그런 쑥스러운 부탁을 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어렸을 때 용돈이 필요하면 항상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한테 조르고는 했다. 아무래도 자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여서 그랬는지, 내가 '꼰대'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모습이 더 먼저 생각난다. 아버지는 무관심과 방임의 경계에 있었다.

 그 전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 사회에서 '꼰대'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이른바 '꼰대 테스트'라는 것을 보게 보니까, 아버지의 바뀐 모습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최근에 요리프로를 TV로 보다가 아버지가 슬쩍 나한테 '잘 먹고 사냐'고 물어보셨다. 평범한 안부였지만, 새내기 자취생인 내게 있어서 '먹는 문제'는 세상 모든 일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그 때문인지 나는 아버지에게 의욕적으로 잘 먹고살고 있다고 말했었다. 지금이야 좀 다르지만, 그때는 아직 의욕적으로 자취 요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호기롭게 나중에 요리를 한번 해보겠다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독특한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신나서 요리를 만들겠다고 한 것은 그동안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공유할만한 무언가가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대답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가족끼리 같이 응원하는 스포츠 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목욕탕 가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요새는 집에 가면 요리 프로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를 한다. 스쳐 지나가는 인사가 아닌, 정말 대화를 한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정말로 신기한 변화였다.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사이가 자연스럽게 다시 이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부. 아빠 탈출기

 '꼰대'라는 말은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항상 이런 테스트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소심해져서 사소한 행동들을 과하게 해석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다 보면 '에이, 나는 아니지'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문항의 하나하나가 아프게 다가온다. 사실, 테스트의 문항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가혹하게 느껴진다. 뭘 눌러야 꼰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순간에 대놓고 '나 꼰대요'하는 문항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SNS에다가 각종 테스트를 공유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하고 물어보는 테스트들이 정말 나를 위한 테스트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누군가에게 '나 어떤 사람이야'하고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그 때문인지 SNS에서도 '꼰대 테스트'에 대한 결과는 못 본 것 같다. 익숙하게 스스로의 나이를 되새김질하면서, '난 아니야'하고 생각하면서 퉁치고 넘어가지는 않았을까?

 다큐프라임에서 '꼰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웹툰 작가들이 그 이야기들의 중심에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바라볼 때, 아버지가 스스로를 돌아볼 때, 딸이 아버지를 바라볼 때, 이 모든 타이밍들은 어쩌면 늦어버린 것에 대한 순간들일지도 모른다. 꼰대라는 말에는 어느 정도 그런 아쉬움이 남아있는 것 같다. 서로 알아갈 시간이 있었는데, 지나쳐버린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내가 느끼기에 적어도 이 다큐에서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물론 이 다큐멘터리가 여타 '아버지'라는 존재를 그린 드라마나 영화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차이라 한다면 '아버지'를 '꼰대'로 분류하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전개 자체였다. 일방적인 한쪽의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의 생각들을 말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처음 볼 때에는 '꼰대'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이 들다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들이 '꼰대'라는 부류가 되었는가를 이야기하면서 그 거부감은 서서히 희석되었다.

 제목부터가 '우리 집' 꼰대다. '아버지는 어쩌다 꼰대 같은 사람이 되었을까. 아버지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어떤 일일까'하는 질문들을 던지고 대답한다. 물론, 아버지라는 사람을 '꼰대'라 규정짓는 것도 어느 정도 딱딱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적어도 이 영상을 보면서는, 아버지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더 꼰대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세상 모든 아버지가 무뚝뚝하고, 화를 잘 내시고 그런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우리 아빠를 '아버지'라는 틀에 맞춰서 본 것 같았다. 우리 집은 가족 소개란에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근엄하신 아버지와 인자하신 어머니 아래에서~'로 시작하는 집안은 아니었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대중적인 '부모님 상'에 내 생각이 수그러들었던 것 같다.



 아버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자식으로서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 할 때도 있고, 아버지가 스스로의 상황을 돌아보기도 하고,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해해보려고도 한다. 관계를 잇기 위해 묻는 것은 '꿈'이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꿈, 아버지가 몰랐던 자식의 꿈들은 이제는 지난 일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나갔기 때문에 서로에게 말할 수 있었다. 이 영상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부모님의 꿈'이라는 말이 내게 얼마나 생소한 것이었던가 하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마치 나만 홀로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말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부모님은 자식이 자라면서 수없이 다양한 꿈이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걸 보셨을 것이다. 분명, 매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본인이 채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시지 않았을까.


사진 출처: EBS 다큐프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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