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감나무

남겨진 것들에 대하여

미리 써본 유언장

by wanderer

끝없는 밤의 시작이 코끝에 걸쳐있다. 어떤 꿈도 꿀 수 없는 칠흑 같은 단잠이라, 오히려 더 안도하게 된다. 적어도 악몽은 꾸지 않겠구나. 누군가가 죽는 꿈으로 깨어나진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마냥 멈춰있을 것만 같던 내 시간의 끝이 피부로 느껴진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단지 문학적인 수사나, TV를 통해 접했던 경험들과는 차원이 다른 체험이다. 이 모든 순간들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싶지만, 이제 내 글을 읽어줄 이는 나 혼자밖에 없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유독 어렸을 적에 '죽음의 공포'를 자주 느꼈다. TV 속 드라마가 막을 내리고, 거실에 불이 꺼지고 나면 왠지 모르게 나에겐 '내일'이 허락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삶이 연속적인 것이라 느끼면서 살아간다. 매번 그래 왔던 삶이고, 누구나 그렇게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제법 어린 나이에 그 두려움을 깨달았다. 중학교 3학년이 가기 전에, 삶이 연속적인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끊기게 된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까. 그때 당시에는 그렇게 삶이 어느 한순간에 멈추고, 끊긴다는 것이 두려웠다. 당장 내일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고, 고민과 생각 끝에 뒤척이다 잠이 들곤 했다. 그때에 미리 생각을 많이 해두어서 그런지, 지금 이 상황이 크게 두렵거나 공포스럽지는 않다. 끝이 있다는 사실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예상보다 이르다는 생각을 해서 조금은 당혹스럽고, 아쉽기도 하다.


이루고자 하는 바가 정말 많았다. 세상을 더 나은 공간으로 바꾸고 싶었다. 정말, 누구 말처럼 먹지 못한 음식이 생각난다기보다는 이루지 못한 꿈들이 머릿속에 맴돈다. 아, 정말 자신 있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적어도 글을 썼던 것에 대해서, 영상을 기획했던 것에 대해서는 이 아이들이 내 손을 타지 못하고 '유고 시집'처럼 세상의 빛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뭐 물론 이것도 이렇게 만들어줄 사람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사실, 그동안 내가 세상을 어떤 형태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명확한 의견을 피력한 적이 많지는 않다. 정확하게 딱 어떤 사람이라고 나를 단정하기도 애매했고, '나'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여러 형태의 층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는 더욱더 상황에 맞춘 내가 되어있었다. 말랑말랑했던 머리가 소신과 신념으로 굳어갈 시간이 조금이나마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해보지만,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이상 그 소망이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알 것이다.


역할에 모두 최선을 다했다거나, 잘했다는 거짓말은 하지 못하겠다. 나는 무뚝뚝한 아들이었고, 변덕스러운 친구였으며, 자주 소심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지기 싫어서 속마음을 감췄고, 꺼내지 않다 보니 무엇이 진짜 내 생각이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에 이렇게 툭 던지고 가듯이 남기는 유언을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단지 죽었다는 이유로 마냥 칭찬하거나, 좋았던 사람이라 기억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낯간지러우니, 그저 본인들이 기억하는 대로의 내 모습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버린 기억도 환영한다. 그렇게 기억하는 내 모습이 아마도 진정한 내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고 싶은 말은 얼추 다 털어놓은 듯하다. 마지막으로 남기는 글이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만은 않네.

그러면 이만.


부디, 치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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