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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Apr 08. 2017

결과 아닌 '과정'의 삶

영화 '슬로우 웨스트'

 먼 옛날

 정확히 말하면
 1870년에

 16살짜리가 추운 스코틀랜드에서
 애인을 찾으러 무더운 미국에 왔다.

 그의 이름은 제이. 그녀의 이름은 로즈.

 근래에 서부 영화만큼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장르도 없는 것 같다. '더 브레이브(트루 그릿, 2010)'부터, '더 홈즈맨', '장고: 분노의 추적자'처럼 '전형'에서 벗어난 내용의 영화들이 서부극의 틀을 두고 활용되고 있다. 공식처럼 내려오던 기존 서부극의 모양새를 탈피하고,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도 변화를 주는 등 서부극은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풍성해지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존 서부극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아주 강력하게 박혀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부극의 전형이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이런 변화들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도 그런 변화의 흐름에 있는 영화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제목처럼 소년 제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천천히 서쪽으로 향한다. 철부지 도련님 같은 모습을 하고, 서부의 황량한 평야를 여행한다. 제이는 하루도 안 가서 총 맞아 죽기 딱 좋을 만큼 순진한 청년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평야를 가로지른다. 그 환경에서 살아가는 기술을 터득한 사일러스를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사일러스는 길잡이를 자처하고 나섰고, 제이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이는 세상이 선한 것으로 가득하다 생각하던 소년이었고, 사일러스는 정확하게 그 반대로 믿던 사람이었다. 기묘한 인연에 따른 결과였을까. 두 사람은 서부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서부는 적자생존의 공간이었다. 물자가 풍족하지도, 인심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방인이었던 제이가 그곳의 생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책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책을 벗어난 세상은 생존을 위한 사투가 벌어지던 곳이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남기 위해서 협박을 하고, 물품을 강탈했다. 황량한 서부의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이들만이 이 공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이는 서부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있는 수없이 다양한 선택들을 믿는 소년이었으니까. 제이는 감성적인 소년이었다. 감성적이었으니, 저 먼 스코틀랜드에서 황량한 미국 서부까지 올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사랑하는 소녀를 향해서 이 머나먼 길을 쫓아올 수 있었다. 제이가 만약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는 아예 서부에 관심을 갖지도 않았을 것이다.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시작하지도 않았겠지만, 그런 입장에서 생존이란 말은 실없는 농담일 뿐이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이, 제이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든 환경을 뒤바꿔놓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이는 삶의 과정을 공유했다. 그는 행동을 통해서 '생존'이 아닌, '과정'을 목적으로 둔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죽음만큼 보편적인 '사랑'이야기로.

 서부에서 죽음은 일상이었고, 보편적인 이야기였다. 제이는 그곳에 그만큼 보편적인 사랑이야기를 퍼트렸다. 비록 빠르게 가지는 못했지만, 천천히 서쪽으로. 서쪽으로 나아갔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었으니까. 그는 그저 '그'였다. 소년은 밤이면 누워서 별자리를 읊었다.


 전형성을 뒤틀어 참신한 인물 설정을 내세워 등장했던 영화들과 이 영화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항상 주체적이고 강인한 인물 위주로 거친 서부의 느낌을 내는 것에 주력했던 모습과는 다르다. 연약하고 감성적인 인물이 극을 이끌어간다. 연민과 사랑의 감정으로 그를 만났던 사람들의 삶은 전부 변했다. 스스로의 삶이 최선의 목적이던 곳에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을 나눈다. 개척정신에 입각해서 적극적으로 본인의 주장을 외치고 다니는 인물과는 다르지만, 제이의 이야기는 그 나름대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천천히 가서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바꿨다. 사랑은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랑 이야기는 살고 죽는 이야기만큼 중요한 것이지만, 결국에 가장 큰 차이는 살아가는 '과정'에 대한 관심이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슬로우 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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