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0.
나는 글쓰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 글쓰기 자체를 시작한 지는 이제 4년을 넘었으니 그래도 초심자의 티는 벗어났다고 생각하는데 최근 들어서 슬금슬금 불안이 생각에 스며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글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다기보다는 스스로 만족이 되질 않았다. 내가 만족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기분이 드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어쩌면 지금 시기가 성장 그래프의 정체기에 머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하게 글을 만들어내면서는 나름의 도약 포인트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도약 포인트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상상의 결여를 느끼기 시작했다. 참신한 표현이나 나만의 시선이 실종되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너무나도 본질적인 고민인지라 쉽게 접근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다 마주한 영화가 이 영화였다. 예전에 한번 봤다가 최근 들어서 또 보게 되었는데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보니 굉장히 생경했다. 각별한 느낌이었다. 영화의 분위기와 의미들이 마냥 뜬구름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마음속에 콱 박히는 기분이었다.
1.
월터가 보는 세상은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 혼자만의 세계로 빠지는 그를 두고, 회사 동료들은 놀리기 일쑤다. 멍하니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으니 놀리기에 딱 좋은 대상이었다. 잡지사의 필름 현상 부서에서 일하는 월터는 사진작가 숀 오코넬의 필름 중 한 장을 분실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서 전 세계를 일주하는 그의 발자취를 쫓는다. 자신만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그는 그렇게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그는 끊임없이 상상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할까 상상하고, 통근 기차를 기다리던 중에 들린 개 울음소리를 듣고 액션 영화의 주인공인 본인을 생각해보는 그런 사람이다.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혼자 가만히 있었다. 그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때는 오로지 공상에 빠져들고 있는 본인을 생각하던 순간뿐이었다. 월터는 상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몽상가에 가까웠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의 공상은 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었다. 그는 꿈만 꾸는 사람이었다. 재밌는 상상들이었지만, 현실적인 무언가는 없었다. 그의 일상은 단조로웠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는 순간만 반짝거리고 있었다.
2.
월터가 했던 것처럼 머릿속 이미지의 공백을 풀어내는 힘이 바로 상상력이다. 영화에서 그는 존재 자체로 마치 상상력의 화신처럼 등장한다. 유독 그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이유는 비단 그가 상상하는 장면들이 영화에 자주 나와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영화에서 '월터'라는 인물을 풀어내는 방식이 다분히 상징적이었다.
월터는 끊임없이 상상하는 사람이다. 그는 능동적으로 상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와 서로 진심으로 교감할 수 있다. 셰릴의 아들인 리치와 월터가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면 그렇다. 셰릴이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에, 월터는 리치와 스케이트 보드에 대한 경험을 공유한다. 셰릴은 월터가 스케이트 보드 기술들을 리치에게 보여주는 모습을 확인하지 못한다. 같은 어른이었지만 여전히 상상하기를 즐기는 월터에게 아이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는 그 일이 그저 장난처럼 느껴질 뿐이다. 장난처럼 느껴지니 결국 두 사람의 세계에 끼어들 수가 없는 것이다.
월터는 직장에서 사진을 현상하는 일을 담당한다. 그리고 그는 빌딩 지하에서 일을 한다. 마음을 몇 꺼풀 벗겨내야 상상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깊숙한 지하에서 일을 한다. 의식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자, 고독의 공간에서 상상이 일하는 것처럼 말이다. 빌딩 지하에서의 삶은 단조로웠을지도 모른다. 대화 상대도 한 사람밖에 없었다. 공상과 상상만이 유일한 취미가 된 이유는 너무도 명확했다. 월터는 본질적으로 빌딩의 고층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곳을 바라본다. 그들이 다양한 곳으로 눈을 돌릴 때, 월터는 멈춰 서서 가만히 응시한다. 그는 현상되지 않아 아무 색 없는 필름에 온기를 불어넣는 일을 한다. 선명하게 묘사된 사진은 하지 못한 말이 훨씬 많다. 그는 사진에 이야기를 붙이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야기로 다듬어지지 않은 이미지를 제일 먼저 접하고 가장 많이 접하는 사람이다. 월터 미티는 논리로 풀어지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를 깨웠고, 그는 잠을 자는 듯이 살아가다 현실에 부딪혀 눈을 뜨게 되었다. 그는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다. 월터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결정들 속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도전한다. 거취를 알 수 없는 사람을 찾아서 작은 단서들로 추적해나간다. 그가 현실적인 것들만 보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그 도전 자체를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월터는 몽상가였기 때문에 도전에 성공을 했다. 남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고,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도는 사람이었으니 남들이 볼 수 없었던 길을 혼자만 봤던 것이다.
3.
상상은 '힘'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더욱 명확하게 이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위키백과에서는 '상상력'이라는 단어를 이런 형태로 설명한다. 상상력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귀나 다른 감각기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정신적인 이미지와 감각과 개념을 형성하는 능력이다. 이것을 통해 사람들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과정을 배울 수 있다'라고 한다. 이해는 감각의 관할이다. 듣는 힘으로, 보는 힘으로, 만지고 냄새 맡는 힘으로, 맛보는 힘으로 우리는 세상을 '본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주관을 가지고 있다. 주관은 본인만의 생각이고 살아온 성장배경이 빚어내는 일정한 '틀'이다. 그 틀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을 바라본다. 상상 또한 그 수준에서 한정된다. 상상력은 무한하지 않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만큼, 보고자 하는 만큼만 제 힘을 허용한다.
시선의 차이가 상상을 의미 있게 만든다. 다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거뜬히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이들이다. 이 영화에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LIFE' 잡지사의 모토이자, 영화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이야기 또한 그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것이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라 말하지 않던가. 숀 오코넬이 삶의 정수를 담았다고 말했던 25번째 사진은 바로 그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이들을 향한 헌사다.
나는 이 영화가 단지 '성장 영화'로만 비치지 않았으면 한다. 소극적인 사람이 능동적으로 세상에 맞서 싸워나가는 내용으로만 이야기되는 것이 싫다. 경험과 활동마저 절대적인 기준에 맞춰 평가하는 세태 속에서 이 영화는 그런 환상을 부추기는 내용으로만 비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이 영화가 그런 면만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는 걸 이야기해보고 싶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도전에 대한 개인적인 감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영화는 상상과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다루고 있으니까. 살아가는 방식이 저마다 다른 이유를 한 번씩 생각해볼 수 있게끔 만드는 영화니까. 영화는 당신의 시선은 어느 곳에 머물러 있는지를 묻는다. 당신은 여태 무엇을 보아왔고, 무엇을 보며 살아갈 것인가? 우리가 서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들은 그런 문제들이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