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내게 사진은 '추억의 닻'이다. 표류하던 정신이 다시금 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어렸을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클수록 기억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기억'이거나 '추억'일 경우에는 머리를 애써 짜내도 정확한 느낌이나 기분들이 떠오르질 않는다. 기억을 기억하는 일이 내게는 이렇게나 낯설다. 어떻게든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숨을 들이쉬고, 맛을 보고, 곤두선 촉각으로 감각하고, 독특한 소리를 듣고 기억하려 해도 내게 추억은 어려운 벽이다. 그래서 이걸 바꿔보고 싶어서 의식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에 취미 없던 내가 카메라를 드는 입장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기억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찍히던 입장에서 찍는 입장으로 변하고 보니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무슨 생각으로 이 사진을 찍었는지가 기억날 수밖에 없었다. 사진을 찍는 일뿐만 아니라, 그것을 저장하는 일 또한 비슷한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보다 주체적으로 기억을 기억하는 일이 내게는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다이어트를 꿈꾸며 사진첩에 선망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집어넣거나, 가보고 싶은 장소 같은 정보들을 집어넣는 일은 모두 그런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때로는 '이 사진이 왜 저장되어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다. 정말로 기억이 나질 않는 경우도 있고,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잊어먹는 경우도 있다. 내 핸드폰 사진첩 속에는 그런 사진들이 참 많다.
그중에 이 영화의 사진도 있었다. 어쩌다 이 영화 포스터를 저장해뒀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내겐 너무 오래된 영화였고 저장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사진이었다. 그런데 문득 그 사진을 보다 보니 아주 어렴풋하게 영화에서 했던 이야기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알토 세드로에서 마르까네로 가네
쿠에토에 도착하면 마야리로 가야지
클럽을 추억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칼칼한 목소리로 클럽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사람들 대부분 그랬다. 흐릿한 기억 속에 남아있던 클럽의 이미지는 단지 단편적인 조각들로 존재할 뿐이었다. 정확한 주소를 기억하는 이도,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아는 이도 많지 않았다. 오랜만에 이 다큐멘터리를 뒤적거리는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은 숙취엔 치킨 콩소메가 최고라는 이야기였다. 이게 왜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줬는지는 모르겠다. 아주 사소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콕 박혀버린 기분이었다. 다시 영화를 보고 싶게끔 만드는 이유가 내게는 '치킨 콩소메'였던 것 같다.
정말 별 것 아닌 키워드인데도, 그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영화의 멜로디가 기억이 났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정확하지 않은 추억들로 남아있을 뿐인데 향수에 취하는 느낌이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구경꾼들은 전부 그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감정들 위에서 사람들은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고, 현을 튕겼다.
사실, 이전까지는 개인적인 추억들은 정확한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보면서라도 그 정보들을 명확하게 떠올려야 추억이 살아난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때로는 무감각한 기억들 사이로 따스한 빛이 감돈다. 명확하게 알아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내가 느낄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한다. 이 다큐멘터리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공연장과 길거리를 오가면서 이야기가 드러난다. 다양한 음악가들이 저마다의 역사를 풀어놓는다. 저마다의 색깔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조화를 볼 때 사람들은 감탄하고 즐거워한다.
'협연'의 '향연'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전 세계 어디에서건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서 잊힌 연주자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음악 세계는 그 나라, '쿠바'의 분위기와 닮아 있었으니까. 가본 적 없는 나라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기분이 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만들어졌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그들의 목소리에 왠지 모를 회한과 여유가 묻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분 탓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점차 지워져 가는 기억들에 대한 향수가 영화에 묻어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흐름 속에 떠밀려 흩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따스한 위로와 추억의 가락이 영화에 담겨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감상이 어려워진 부분이 있다. 넋 놓고 보는 일도 왠지 경계하게 되고, 객관적인 위치에서 보려고 시도하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참 독특하다. 감상에서 깨어나는데 유독 힘이 들었던 다큐멘터리였다. 오랜만에 다시 영상을 꺼내보았다. 순간순간마다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던 시간 동안만큼의 감정이 마음속에 머물러 있었다. 잔존한 감정은 묵묵히 마음 안을 파고들었다. 노랫소리를 따라 침전하는 감상은 이내 달아올랐다.
서로 간의 호흡을 알아보면서 마음껏 기량을 뽐내는 이 '무대'가 그들에겐 부족했을 터였다. 일일이 이 세션의 한 사람 한 사람을 힘주어 부르는 이 다큐멘터리는 장인의 호흡을 한번 느껴보게끔 관객에게 장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카메라를 따라서 빙빙 도는 쿠바의 정경과 이에 어우러지는 음악들. 기억을 되감아 추억을 회상하듯,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사람들은 공연에서부터 거슬러오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향수의 이름을 가지고 있던 이들을 불러 모은다. 공연, 녹음, 섭외, 기획으로 되돌아오며 이 매력적인 프로젝트는 한번 숨을 고르고 더 큰 빛을 향해 발산한다. 이들의 음악이 만들어내는 빛은 마냥 따스하다. 따스한 음악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품어준다. 이들의 음악을 듣다가 이유 없이 평온해지는 이유는 결국에 그들이 겪어온 세월의 품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그 음악에 담겨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