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링클레이터 그리고 영화 '비포 선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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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EIDF를 다녀왔다. 시간문제 때문에, 볼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는 한 작품밖에 없었지만 부족함은 없었다. 그 다큐멘터리가 '리차드 링클레이터: 꿈의 연대기'였기 때문이다. 소재와 기획은 다큐멘터리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유독 빛이 나는 소재로 만든 다큐멘터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차드 링클레이터'라는 사람이 품고 있는 이야기의 힘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내가 본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어떤 틀로 묶기 참 어려운 사람이었다. 때문에 한 편의 다큐에서 그의 세계를 어떻게 조명할지가 굉장히 궁금했다. 스캐너 다클리부터, 스쿨 오브 락, 버니, 에브리바디 원츠 썸, 그리고 '비포 시리즈'까지 내가 봤던 그의 영화들은 어떤 틀로 묶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가 가진 고유한 분위기와 느낌은 대부분의 작품들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지만, 느낌이나 분위기를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난감한 것처럼 그의 영화도 그런 맥락에 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반박이라도 하듯이, 다큐멘터리는 매끄럽게 이어져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빛이 났던 것은 '비포 선라이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저 그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 이야기가 사람을 설레게 만드는 것도 있지만, 내 설렘의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영화는 글을 쓰고 싶게끔 만든다. 끊임없이 생각을 이야기하며, 평소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니까. 작가는 펜을, 화가는 붓을, 누구든 어떤 형태로 감상을 표현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였다.
1.
영화의 줄거리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두 사람의 이름이었다. 제시와 셀린. 비엔나의 이국적인 풍경이나 일련의 해프닝보다도 머릿속에 깊게 박혀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었다. 의식의 흐름들이 모여서 극의 모양새를 이루고 있었는 데에도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흥미로웠다. 제시는 내가 되고 싶었던 작가의 모습이었다. 대화 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의 가짓수나 상상의 방식은 저 둘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닮고 싶었다. 다양한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런 이야기들의 깊이가 얕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비엔나라는 환경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폭이 넓었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모습이 공존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이야기들은 마냥 깊게 빠지지도 얕지도 않았다. 굳이 역사가 있는 유적들을 찾으며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 문화의 맥락이 대화에 담겨있었다. 이 커플의 9년 후 이야기가 파리에서, 그로부터 9년 후의 이야기를 그리스에서 시작한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도시 곳곳에 배어있는 역사의 숨결은 퀴퀴하지 않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논의는 역으로, 현재 지금 이 순간의 청춘들을 빛내고 축복한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맞물리며 착착 연결된다. 그들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었다.
2.
오히려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솔직하게, 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다신 안 볼 사람이라면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더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으니까. 그들은 이야기를 나눴다. SNS와 함께, 내 인맥이 점차 구체화될수록 생각은 아끼고 일상적인 이야기들만 나누게 되는 것 같다. 익명으로 SNS에 올라오는 공감 글은 아주 예리하게 마음을 파고든다. 그런데 정작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본 적은 없다. 그 글에 대한 공감은 함께 나누면서도, 아는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왠지 모르게 어색해한다. '아는' 관계가 되어간다는 것은 그런 느낌일지도 모른다. 낭만과 호기심에서 출발한 하루가, 며칠이 되고, 해가 바뀌면서 시간은 낭만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계산의 대상이 된다. 아이들에겐 하루가 길다. 어른들이 보기에 비슷비슷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의 일상은 언제나 색다른 모험이다. 어른들은 하루의 일과, 일주일의 일정, 한 달 후의 스케줄과 10년 단위의 계획으로 본인의 삶을 채워놓는다. 94년의 청춘에게 시간이 낭만이었다면, 13년의 부부에게 시간은 진한 아쉬움과 책임감으로 자리한다. 이 긴 시간을 함께 보아온 사람이라면, 저들의 이야기가 그저 영화 속 이야기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3.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정말로 지구 어딘가에 살아있을 법한 인상을 준다. 실제로 어딘가에 이런 사람이 살아있을 것 같은 기분. 너무나 선명하고 생생한 꿈이라 현실인 것 같은 느낌을 이 영화에서 받는다. 상황이나 조건은 더없이 비현실적인데도 왠지 모르게 저곳에 가면 저런 상황에 빠질 것만 같은 착각을 만들어낸다.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보여주는 마법은 그런 종류의 것이다. 그는 꿈을 그린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형태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듯한 상상을 풀어내는 일에 선수다. 머릿속으로 한 번쯤 그려봤을 법한 그림을 그는 그려낸다. 사실, 말이 쉽지 머릿속 상상을 남들에게 설득 가능한 수준으로 풀어낸다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세상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영화감독들이 있었을 테니까. 에단 호크도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뉘앙스의 이야기를 한다. 그는 창의적인 이야기를 가져오지 않는다. 대신에, 창의적인 기획을 하고 그것을 영상으로 아주 아주 사랑스럽게 풀어낸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가장 부러운 동시에, 가장 갖고 싶은 재능을 그는 가지고 있다.
4.
꿈을 꾸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다. 기준을 세워 성공과 실패로 구분 짓는 경험이 아닌, 순수한 체험으로써의 경험이 필요하다. 대단한 경험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경력에 쓰일 경험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세상을 좀 더 재미있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만 갖추고 있다면 충분하다. 약간의 소재와 사유의 시간, 거기에 오롯이 본인만의 생각을 품어낼 수 있는 공간이 더해지면 그것으로 우리는 비로소 꿈을 말할 수 있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비포 선라이즈', '리차드 링클레이터: 꿈의 연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