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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Oct 04. 2017

취향에 대하여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취향'

 좋은 취향을 가졌다는 말은 설명하기가 참 복잡한 말이다. 일단은 취향이라는 용어가 '취미'와 혼용되어 뒤섞여 벌어지는 일이 컸다. 사전은 두 단어를 비슷하지만, 충분히 다르게 설명하고 있었다. 취향의 사전적인 정의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다. 사람들은 여기서 '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점에 집중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취향의 포인트는 '방향'에 있다. 방향은 한순간의 선택을 의미하지 않는다. 방향은 흐름이고, 맥락이다. 취향은 좋아하는 것들의 묶음이다. 취미는 이것과는 달랐다.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는 설명은, 취미를 직업이나 일의 범주와는 다른 결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설명대로라면 취향은 취미보다는 더 많은 것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이는 방향, 그것은 어찌 보면 시선을 또 다르게 부르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사전의 정의를 찾아보고 다시 느껴본 취향의 느낌은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취향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통해 만들어지는 관점이었다. 이렇게 부담스럽게 취향에 대해 생각해볼 예정은 아니었는데, 이 영화가 제기하는 '취향'에 대한 질문은 강력했다.

 취향은 주관이 섞인 목록이다. 당신만의 리스트. 취향을 완성하는 것은 철저하게 '주관적인 경험'이다. 그 맥락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취향'이라는 말을 듣는다. 내가 생각했을 때, 이 영화는 영화감독이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취향'에 대한 교과서였다. 취향을 드러낸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무엇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취향을 잘 설명하는 일은 어렵다. 마음의 방향을 설명하는 일은, 본인을 솔직하게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을 때에나 가능한 것이니까. 취향은 그만큼이나 다양한 어려움이다. 이 영화는 그 어려움을 감당하면서, 기꺼이 그 설득을 해냈다.


 이를테면 이 귀여운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장면이나, 흥이 나는 음악과 상황들만이 '취향'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와 사운드가 엮어지고, 그에 맞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가 영화를 뛰게 만든다. 곡선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직진. 선의 세계는 단순하고 강력했다. 처음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당혹감은, 그 지점에 있었다. 그저 차, 드라이버, 연인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누군가한테 영화를 설명해주면서 이렇게 쉽게 말해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단순하게 말해줄 수 있었다. 영화 소개를 해달라고 부탁을 받으면 항상 무엇을 어디부터 설명해줘야 하는지 항상 고민이 많았는데, 이 영화는 적어도 그런 지점에서 고민은 없었다.

 하지만, 고민이 없다는 것이 깔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다시 한번 더 보고 나니 그제야 비로소 감독의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음악에 대해 좀 더 잘 알았다면 훨씬 더 풍부하게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겠지만 나의 한계는 이 영화를 '취향'이라는 틀에서 설명하는 것뿐이다. 앞서 좋은 취향의 영화라는 설명을 했던 것은, 영화의 전반적인 스타일이 감독의 색이 묻어나는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나, '뜨거운 녀석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 '더 월즈 엔드'까지 그가 만든 대부분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비슷한 맥락을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느꼈다. 기묘하게 사건에 휘말리는 상황들이나, 자르고 붙여지는 장면들, 영화 음악들까지 그랬다. 거기에 더 나아가서 이 영화 자체의 개성도 죽지 않았다. 감독의 전작들과는 확실하게 다른 느낌을 주면서도, 본인만의 세계관을 공고히 하는 모습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항상 '변화'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본인만의 색을 유지하는 것과,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것. 어느 하나 정답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해법을 찾아냈다. 에드가 라이트의 방식 또한, 그만의 것이기에 보고 느낄 수는 있어도 가져올 수는 없다. 슬럼프를 이겨내는 나만의 방식을 만들지 않는다면, 삶의 주기에 매번 휘둘리게 된다. 확실한 취향을 만들어두는 일은 그런 사람들이 본인만의 사이클로 돌아가게끔 도와준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 없이, 영화 이야기를 주야장천 늘어놓은 것 같다. 영화의 특징을 몇 가지 소개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만 확인하고 이 영화를 감상하는 일이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여타 설명을 하지 않았다. 독특한 개개의 스타일이나, 세련된 멋을 말로 풀어 설명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던가. 취향의 설득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 설명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본인만의 스타일이 없다면 마냥 주변에 따라서 휘둘리기 쉬운 것이 또 취향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것은 확실하게 있었지만, 잡다하게 관심사를 두는 탓에 스스로를 색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던 내게 '취향'의 설득은 어렵기만 한 것이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무색무취의 인간은 없더라. 그저 본인 색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뿐이지.

 주관과 확신을 가진 삶의 설득. 취향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도 있지만, 실패하고 이게 뭐냐는 푸념을 들을지도 모른다. 유독 본인만의 색이 강한 영화라서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래도 드라이버는 매 순간 전력으로 액셀을 밟았다. 취향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설득당하고 마는 삶의 방식은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 드라이버는 몇 번씩 좌절할지언정, 결코 액셀 페달에서 발을 떼 지는 않는다. 목표를 향해 질주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좋은 취향을 가지고 있다. 삶의 지향점과 연속성,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이어지는 우리의 일생은 수많은 노래들이 이어지는 MP3 속 플레이리스트다. 플레이리스트의 테마를 결정짓는 삶의 방향성은 오롯이 당신의 결정이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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