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기억 공간을 찾아서' 리뷰
<첫 번째 기록>
'기록출판' 불온서적의 첫 번째 인사
출판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 불온서적은 '기록출판'으로 글을 엮어내려 합니다.
기록의 행간에 녹아있는 이야기를 들어 올려 새기려고 합니다.
이 매거진을 통해서는 '기록'에 대한 리뷰를 모아보려고 합니다.
글 만남의 약속을 날짜로 정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인사를 드리러 오겠습니다.
1.
무언가를 기록하려거든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요소가 '이유'라고 생각한다. 물론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는 어떻게 남겼는지, 누가 남겼는지, 언제 남겼는지가 중요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기록의 근간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기록을 남길까? 이유를 고려해야 기록 자체를 오독하지 않을 수 있다.
2.
<이민 박물관>
- '이민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이름의 느낌이 독특했다.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현대인의 특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민자들이 향하는 곳이 과거의 세계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의 출처는 무엇일까. /17p를 읽고
<이민의 이유를 수집하는 행동>
- 문득 고국을 떠나는 이유와 행선지를 수집한 방법이 궁금해졌다. 이민의 이유를 모을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든 대단한 행정가겠거니 싶었다. /23p를 읽고
<이방인의 스탠스로 살아간다>
'... 저마다 다른 사연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는 늘 어디론가 떠나 고향을 그리워하고 어딘가에 도착해 이방인이 된다는 점에서 같은 모습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30p
<어느 조선인의 무덤>
'해가 뜨는 동쪽에서 압록강을 건너온 어느 조선인의 무덤이 있다.' /35p
- 명백하게 객관적인 정보만 나열하는데도 정체모를 감정이 느껴지는 건 글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글자 사이사이에 드러나지 않는 사실들을 통해서도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기록이 재밌는 건 그런 부분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작가, 기록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점이 기록의 묘미다.
<세종의 이야기>
- 나는 출판사를 만들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사는 지역과 연결 지어 출판사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지역에 남아서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고자 마음먹었으니까 세종의 이야기에 끌린 건 당연했다. 여러 일화 중에서도 한글 창제의 배경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았다. 책에 나오는 것처럼 '지배계급이자 소수였던 지식인들은 오히려 글을 독점하고자 했다.' 한글 창제는 물음표가 많이 남는 일이었다. 독점을 통해 권력은 더욱 강화된다. 그런 점에서 세종의 행동은 권력자의 입장에서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의 행동이 오히려 불온하다는 건방진 생각을 했다. 미디어에서 재현된 세종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희미하게 느꼈던 건 일말의 저항 정신 비슷한 생각이었다. /63p를 읽고
<슬픔보다는 아픔>
'기억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살아남은 자의 통렬한 슬픔, 애도다.' /95p
- 무엇이든 떠나보내는 일에 적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쉬움은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에 멍울져 남는다.
<물속에 묻어두는 것>
'대개 수몰 지역의 공공기록물들은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별, 갈등, 투쟁을 서술하는데 인색하다.' /142p
3.
기억해야 하는 공간들, 기억을 담아놓은 공간들을 보면 슬퍼진다. 서문에도 나와있듯이 '간절히 기억하려고' 하는 행동이거나 '통렬히 잊으려고' 하는 일이기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선별된 기억에서는 결의가 느껴진다. 잊으려고 기록한다는 말은 한편으로는 모순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글을 써보면 어렴풋하게나마 그 심정이 어떤 건지 이해가 된다. 글을 쓰면서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감정과 정보로 분리가 된다. 상세하게 기록하면 감정은 쉽게 휘발된다. 머릿속에서 복합적으로 감각하는 기억의 덩어리와 시각적인 단서만 제공하는 기록은 부피의 차이가 있다. 기록된 글에서 시각적인 단서는 여타의 감정을 소거한다.
책에는 한국의 기억 공간들도 여럿 나온다. 개인의 기억, 주민들의 기억이 담긴 공간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오갔다. 개인적으로는 구술 작업이 세대 별, 지역 별로 꾸준하게 진행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디어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이야기는 지극히 한정적이라 우린 그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타인의 세계를 상상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 갈등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구술 작업은 쓰지 않는 말, 관계가 끊긴 사람들, 더는 가볼 수 없는 공간에 연결고리를 만든다. 개인의 위치에선 일기를 쓰든 브이로그를 찍든 할 수 있다. 다만, 집단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일은 공공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중요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가 생겨나는 게 아니라 정보가 많아지니까 중요해진다.
기억 공간의 이야기를 통해 지난 기억에 대한 위로와 앞으로 만들 기록에 대한 힘을 함께 얻어가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