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한다는 말은 무엇인가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 틀림없음을 가정하는 말이다. 때문에 확신은 직접적이고 강력한 표현의 수단이 된다. 틀린다는 것을 가정하지 않기에 확신에 대한 이런 식의 접근이 가능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세상의 모든 일들은 갖가지 확신을 두고서 그것을 반박-재반박하는 과정의 연속으로 이어져 온 것 같다.
무슨 일이든,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의심을 포기할 때까지 의심하게 된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하여, 그것에 대한 정보가 적은 데에도 '확신'을 하는 것은 차라리 생각하는 것을 그만 두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본능의 판단은 아닐까? 소모적이고 끝이 없는 의심을 그만 두고 확신으로 아이디어를 끝맺음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떤 일을 해야 한다면, 의심을 멈춰야 행동이 시작되니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확신을 하고 살아가는가? 스스로에게 거는 확신은 사실에 대한 확인 보다는 마치 부적처럼 위안받는 효과를 위해서 쓰이는 게 아닐까? 누군가를 혹은 무엇을 쉽사리 확신할 수 없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을 그 한 사람에게 확신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은 마치 부정한 행동처럼 여겨져 왔고, 믿음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로 인정받아 왔다. 하지만, 역사가 알려줬던 것은 그 믿음과 독단의 경계라는 것은 상당히 불분명하고 불안정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역사를 토대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과연 확신에 대한 확신이 가능하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