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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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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Nov 05. 2021

자신을 객관적으로 안다는 착각

혼자서 고민을 반복하다 보면 생각에 노이즈가 낀다. 자신을 성찰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주관의 영역이지만 그 사실을 망각하고 ‘꽤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때가 있다. 그렇지만 생각은 착각이고 객관성이라는 함정에 빠져들면 우린 실체 없는 평균과 맞서 싸우며 자신을 깎아내린다. 객관적으로 안다는 가정하에 우리는 자신을 평가절하한다. 겸양을 떠는 문화가 DNA에 깊숙하게 스며들어 그런지는 몰라도 우린 자신을 평하는 일에 가장 야박하다. 분명한 건 내가 나를 아는 방식은 객관적이기 어렵다는 지점이다.


주제를 알아라, 네까짓 게, 깜냥을 알아라 등등. 자신을 깎아내는 일에 관련해선 뭐 그리도 유사한 글자들이 많이 있던지. 내 주제를 알고 영역을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객관적인 판단이라는 가정 아래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주위의 시선보다 낮게 매긴다. 오히려 타인의 냉정한 판단보다 자신의 평가가 더 아프다.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우린 우리를 가장 가혹하게 감독한다. 내가 나를 잘 아니까 그런 소리도 할 수 있는 거다. 잘 알아서 죄책감을 느끼는 지점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내뱉다니 참.


그렇지만 그 평가는 완전하지 않다. 판단을 내리기 전까지의 과정을 아는 건 본인뿐인데 종종 우리는 과정의 서술을 누락한다. 결정을 내린 이유와 사고의 흐름을 빠뜨리고 결과로만 판단한다. 잘되면 좋은 것, 안되면 나쁜 것으로. 하지만,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는 일이 합리적이기만 할까. 갈등을 덮어두는 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도 존재하니까. 판단에 있어 정말 중요한 건 객관적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 자체에 있다. 주관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생각에서 객관적인 조건들을 점쳐보는 일이 필요하다.


나는 나에 대해서 얼마나 더 솔직해질 수 있을까? 잘못이나 실수까지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대면 댈수록 그렇다. 그래도 지금의 삶이 숫자 몇 개에 정의될 정도로 단순하게 살지 않았으니까. 누구나 살아낸 만큼의 평가는 받아야 한다. 외부의 시선이 우리를 평가할 때는 우리의 생각보다 높게 쳐주지는 않을 테니, 자신에겐 좀 더 후하게 쳐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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