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젊은 시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nderer Oct 30. 2021

세 바퀴를 살았다

 바이러스는 모두의 삶을 갉아먹고 있고 불행은 디폴트 값이다. 재난이 일상이 된 시기에 사소한 슬픔 몇 가지를 내 감정에 더하고 싶진 않다. 사소한 슬픔이란 건 자잘하게 들어오는 이자 같다. 이율이 몇 퍼센트가 되려나. 들어왔다는 티는 안 나는데 자잘하게 쌓이긴 한다. 그렇지만 보통 복리의 기쁨을 느끼기보다 복리로 슬픔을 느끼는 일이 더 많다. 살아 보니 기쁜 일은 한꺼번에 쏟아져야 제맛이고 슬픈 일은 잘게 잘게 나누어 받으면 좋더라. 그리고 감정을 받아들일 때는 누가 되었든 사람들과 함께해야 좋다.


 코로나19로 부쩍 홀로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삶이 단출해졌다. 일상이 단순해지면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진 않다. 희로애락의 감정 기복이 일정한 상태에서는 호기심도 쉽게 생기지 않았다. 바쁠 때는 ‘내게 쓰기’로 수없이 묻어두었던 찰나의 조각들은 쓸 때만 해도 세상을 바꿀 것만 같았다. 그런 호기심은 한참 지나고 나서 뒤적거려봤자 아이디어로 연결할 수 없다. 그러니 오래간만에 찾아온 이 평온한 순간을 만끽할 뿐이다. 감정의 동요 없는 고요함. 자유인으로써 행복은 명확하다.


 서른 살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내 시간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20대의 대부분은 항상 어딘가에 속해있었다. 혼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동기, 선·후배들, 고향 친구들과도 그랬다. 지역이 달라도 비슷한 생활상을 공유하다 보니 굳이 혼자 남아있을 필요가 없었다. 안부 인사는 아침이나 점심이나 저녁이나 ‘밥 먹었냐’는 질문으로 시작하니까. 같이 먹고자 한다면 어렵지 않게 식탁에 둘러앉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20대는 관계 속에서 관계 자체를 사유해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를 저버린 건 아니지만 올해는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을 많이 줄였다. 초여름까지만 해도 돌아다니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덕분에 잘되었다 싶었다. 그러다 홀로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이 정신 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코로나19의 확진자 양상에 따라 내 정신 건강도 오르락내리락 날뛰었다. 막연하게 불안하니까 눈에 보이는 물건들이 집에 채워져 있어야 만족했다. 물건들이 알맞게 들어차 있는 모습을 보면 편안해졌다. 혹시나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더라도 며칠간은 버티겠다는 생각으로 물건을 샀다.


 이렇게 유난을 부리면서 서른을 보내고 보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정말 뭔가 달라져야만 할 거 같은데 스물아홉에서 겨우 한 살 더 먹어놓고 어마어마한 성장을 바란 것 자체가 모순이긴 했다. 그럼에도 이런 경험담은 이 나이를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도 겪게 될 거 같단 생각을 했다. 아마 다들 그런 줄로 알았다면 불안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문득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날까 두려워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